#코리안스피릿 특별연재-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고조선을 찾아서[1]
기사 바로 보러 가기 ☞ [1] 반세기가 걸린 국사교과서 개정…문제는 밖이 아니라 ‘안’!

대한민국 우표로 부활한 단군왕검

▲ 단군왕검 특별우표(=우정사업본부)
지난 2007년 2월 국정 국사교과서가 나온 이후 처음으로 ‘고조선을 건국하였다고 한다’에서 ‘고조선을 건국하였다’라고 바뀌었다. 이 3단어가 바뀌는 데 무려 반세기가 걸렸다. 그러나 단군과 고조선에 대한 변화는 예전보다 빨라지기 시작했다.

2008년 7월 지식경제부 우정사업본부가 고조선의 건국이야기를 담은 '단군왕검 특별우표'를 총 4종 135만 장을 발행했다.

특별우표에는 고조선을 건국한 단군왕검의 이야기를 담았다.

또한, 고조선을 대표하는 유물 중 하나인 비파형동검을 강조하기 위해 특별우표와 일부인(日附印: 서류 따위에 그날그날의 날짜를 찍게 만든 도장)에 비파형 동검을 넣어 고조선은 실제로 존재했던 국가라는 사실을 강조한 점이 눈에 띈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4종의 우표마다 설명글을 달아 청소년들이 <삼국유사>에 나오는 국조 단군왕검과 고조선의 건국이야기를 역사교육의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고 밝혔다.

300만 명이 관람하는 국립중앙박물관…최초로 ‘고조선실’ 개관

그로부터 1년 후, 2009년 11월 2일에는 연간 300만 명 이상 관람하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고조선실이 처음으로 개관됐다. 이날은 한국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식 행사도 열려 대내외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가 고조선실을 관람하며 “우리나라 최초 국가인 고조선실을 처음으로 개관한 오늘은 정말 뜻깊은 날”이라며 “(한국식 동검 전시물에 대해) 한국만의 미적 감각과 손재주가 잘 느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조선실은 ▲고조선의 형성, ▲기원전 5세기 무렵 고조선의 변화, ▲기원전 4세기 이후 고조선의 발전, ▲고조선의 멸망과 문화의 파급 등 네 부분으로 나누어 유물을 전시했다.

여기서 잠깐, 국립중앙박물관 고조선실은 갑자기 생겨난 것일까? 지난 2005년 11월 16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당시 국학운동시민연합 등 5개 시민단체는 서울 종로구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립중앙박물관과 경기도 박물관, 그리고 부산박물관 등 전국 10개 국공립 박물관 연표에서 고조선에 대한 기록이 빠져있거나 부실하게 기록됐다"고 밝혔다.

이들은 "중국과 서양의 경우에는 진한이나 로마 등 국가명을 그대로 표기하면서 우리 역사에서는 고조선이란 국가 명을 생략한 채 청동기, 철기 등으로만 시대를 구분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일부 박물관의 경우는 연대표가 일본의 후쇼사 역사교과서나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의 연표와 똑같다고 하여 충격을 주었다. 이는 삼국의 건국시기를 기원후 300년으로 기록해 일본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을 우리 스스로가 인정하는 결과였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들은 박물관의 관리책임을 맡은 문화관광부 등에 오류의 수정을 촉구하는 한편 식민잔재국민고발센터 등을 운영해 박물관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 퍼져있는 식민사관의 폐습을 청산하는 작업을 진행해나갔다.

당시 고조선을 연대표에서 누락시켰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고조선실을 개관한 것을 두고 시민단체들은 ‘4년 만에 거둔 쾌거’라고 표현한 것은 바로 이러한 역사가 있었던 것이다.

고조선 유물 첫 번째, ‘비파형동검과 잔무늬거울’

▲ 고조선의 대표적인 유물은 ‘비파형 동검’이다.  ‘고조선식 동검’으로도 불린다. 비파형 동검은 중국 요령지역을 중심으로 길림과 한반도 등에 걸쳐 출토되고 있다. 특히 동검의 분포지대가 요동지역의 고인돌(탁자식) 문화와 일치해 고조선의 세력 범위로 나타낸다.[=국립중앙박물관]

다시 국립중앙박물관 고조선실로 들어가 보자.

고조선의 대표적인 유물은 몸체가 악기 비파를 닮았다는 ‘비파형 동검’이 있다. ‘고조선식 동검’으로도 불린다. 1930년대에 최초 발굴되었으며 현재까지 한반도에서 80여점, 요령지방에서 60-80점이 출토되었다.

비파형 동검은 중국 요령지역을 중심으로 길림과 한반도 등에 걸쳐 출토되고 있다. 특히 동검의 분포지대가 요동지역의 고인돌(탁자식) 문화와 일치해 고조선의 세력 범위를 나타낸다는 점에 주목한다.

동검의 가장 큰 특징은 비파형으로 생긴 칼날과 손잡이가 따로 주조된 조립식이라는 점이다. 고조선과 같은 시기의 중국 검은 통주식으로 칼 몸체와 손잡이가 하나로 되어 있다.

이에 대해 고고학계는 "고조선이 비파형 동검을 통해 민족적· 인종적 정체성의 차이를 드러낸 것"이라고 보고 있다.

▲ 평양 신성동 유적에서 출토된 잔무늬거울. ‘다뉴세문경(多鈕細文鏡)’이라고도 한다. 청동기시대 전기에 사용되었던 거친무늬거울〔粗文鏡의 무늬에 비해 기하학적인 무늬가 다양해지고 무늬가 섬세해지므로 잔무늬거울이라고 하게 된 것이다.[=국립중앙박물관]

이어 평양 신성동 유적에서 발굴된 잔무늬 거울이다. ‘다뉴세문경(多鈕細文鏡)’이라고도 한다. 거울면이 약간 오목하며 뒷면에는 기하학적인 무늬가 새겨져 있고 주연(周緣)에는 단면 반원형의 테두리가 돌고 있다. 가운데에서 약간 치우쳐 허리가 오목한 리본모양의 고리가 2, 3개 붙어 있다.

청동기시대 전기에 사용되었던 거친무늬거울의 무늬에 비해 기하학적인 무늬가 다양해지고 무늬가 섬세해지므로 잔무늬거울이라고 하게 된 것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유물은 약 20점에 달한다. 한반도에서는 평안북도와 함경도지방에서는 보이지 않고, 대동강유역·강원도지방·금강유역·전라남도지역·경주지역에서 많이 출토되었다.

동질은 은백색이 나는 백동(白銅)으로서 양호하며, 크기는 지름이 8∼21㎝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나 대개 12∼13㎝ 내외가 대부분이다.

특히 1960년대 충남 논산에서 발견된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잔무늬거울)은 지금까지 발견된 100여 점의 다뉴세문경 중 가장 크고 정교하게 만든 것이다.

지름이 21.1㎝에 불과한 공간에 13,300개의 정밀한 직선, 100개 넘는 크고 작은 동심원, 그 원들을 등분해 만든 직사각형·정사각형·삼각형을 정교하게 배열되어 있다. 이러한 청동거울은 중국은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이제까지 발굴된 적이 없다. 

3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