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제6회 한민족 역사·문화 청소년 글짓기 논술대회에서 고등부 최우수상을 받은 박정현 학생(인천 연수여고 2)의 글. 국학운동시민연합과 동북아역사재단,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공동 주최한 이번 논술대회에는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전국 초·중·고등학교에서 총 816명이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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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리 작가의 ‘토지’ 속에는 구한말부터 광복 까지 수십 년의 세월이 있다. 정말 방대한 분량의 책이어서 읽는 동안 지칠 때도 많았지만 고생고생 다 읽고 난 후에는 예상했던 홀가분하고 뿌듯한 기분보다 착잡하고 답답한 마음이 더 많이 들었다. 그것은 왜일까?

 이 책에서 나온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가족과 고향을 등지고 사랑도 버리고 자신의 기반도 포기하면서까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지만, 결국 그들이 금의환향하는 결말은 보여 지지 않았다. 그래서 결말까지 읽고 난 뒤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비단 소설 속에서만이 아니라 실제 치열하게 그 시대를 살고 일제의 폭정에 희생되던 조선인들,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하던 이름 없는 투사들, 일제의 밀정과 친일파들……. 이후 그들의 미래는 어떻게 되었나. 모두가 알다시피 광복 후의 우리의 발자취들은 광복이 해피엔딩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해방 후의 혼란과 한국전쟁, 이후 이어진 독재정치 하에서 이름 없는 독립투사들은 사라지고 당시 친일하던 사람들이 지금의 지배계층을 이루고 있다. 친일파 청산은 실패했고 수많은 투사들이 우리에게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또한 해외의 조선인들과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거의 버림받다시피 했다. 이후 독재정권의 경제 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민족의 역사는 관심 밖으로 내몰려 왔다.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는 눈부신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룩했다고 자부하지만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역사와 조상들 앞에서 여전히 부끄럽다. 그것이 이 소설의 결말 이후의 현재 우리나라의 모습이다.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간도와 만주와 연해주에서 피를 흘리며 사라졌지만 우리는 그들의 흔적과 발자취에 너무할 정도로 무관심하다. 해방 이후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곤욕을 치렀고 납북을 했으며 해외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또한 그들의 후손들은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조상의 독립운동사실을 인정받기가 매우 어렵다. 사실상 후손들이 스스로 증거를 찾고 서류를 준비하여야 하고 그마저도 제대로 인정받기가 쉽지 않은 것이 그들이 처한 현실이다.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건너와 수많은 노력 끝에 어렵사리 국가유공자 후손이라는 인증을 받고도, 그들의 후손에 대해 실질적인 보상과 지원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서 그들이 조국 땅의 빈민층으로 전락하고 있는 상황이다. 묘지도 비석도 없이 이국땅에 묻힌 한 많은 삶들을 우리는 잊고 살아 왔고 우리의 무관심 속에서 그들의 흔적은 역사 속에 묻혀가고 있다.

 올해는 안중근 의사의 순국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는 권총을 손에 들 결심을 했을 때부터 자신이 살아서 고국으로 돌아 갈 수 없을 거란 걸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토 히로부미를 쏘았고 사형을 당했다. 그러나 이후 그는 어떻게 되었나. 사형 후 이국땅에 매장되었던 그는 현재 시신조차 찾을 수 없다. 우리 정부는 1993년부터 수차례 일본에 자료 요청을 해 왔지만 일본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발굴조사는 실패했고 그가 묻혔다고 추정되는 중국 뤼순감옥 터에는 현재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비극은 우리 정부가 관심과 의지를 갖고 먼저 중국 정부와 협의를 하고 시간을 들여 발굴조사를 했다면 막을 수도 있었던 일이었다.

 올해가 경술국치 100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또한 조선인 강제이주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사할린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조차 모르는 고교생들이 태반이다.

 누군들 자신의 가족과 고향을 버리고 싶었겠는가. 또 누군들 안락한 삶을 떠나 죽고 싶었겠는가. 그들은 국가를 위해 모든 것들을 바쳐 헌신했지만 국가는 그들에게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대부분의 독립운동 유적지들은 전쟁과 산업화와 개발의 소용돌이 아래서 훼손되어 왔다. 국가와 국민의 무관심 속에서 수많은 우리 역사의 숭고한 발자취들은 사라져 가고 있다.

 우선, 우리는 우리가 걸어온 발자취들을 지켜내야 한다. 철저한 실태조사를 하여 우리가 잃었던, 또 잃어가고 있는 우리의 발자취들을 지켜야 한다. 체계적인 관리대책을 마련한 후에 유적지는 현재를 사는 국민들에게 양심을 일깨우는 장으로 활용해야 한다. 중국 영토 내에 있는 수많은 독립 유적지들은 중국과 한국 모두의 무관심 아래에 놓인 채 사라져 가고 있다. 우리 정부가 중국 정부와 협의하여 더 이상의 훼손을 막고, 편리한 관광을 할 수 있도록 시설물들을 관리하고 주변을 개발한다면, 또 역사 관광 등의 체계적이고 알찬 여행 경로를 만들어 홍보를 한다면 한국 국민들의 관심과 애정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가난과 냉대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독립투사들의 후손들에 대한 좀 더 실질적인 지원도 이루어 져야 한다. 정착 지원금뿐만 아니라 보상 차원의 꾸준한 지원을 해야 한다. 학계 추산 약 300만 명의 조선인들이 항일독립운동에 가담했다. 이들의 활동에 대한 조사의 책임을 후손에게 떠넘기지 말고 정부가 책임져서 그들의 행적에 대해 제도와 예산에 얽매이지 않고 체계적으로 조사를 해야 한다.

 최근 시민단체들과 학자들이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있다. 직접 일본으로 가서 지자체의 협력을 받아 강제노역 발굴 작업을 하고, 국내외 청소년들이 참여하는 역사캠프를 열어 서로의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이해하는 장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청소년들은 역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되고, 현재의 문제점과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고민해 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러한 활동을 정부와 학계가 관심을 갖고 주관해서 열성적으로 계획하고 추진해야 한다.

 비록 국가가 주도하여 이 모든 것을 하려면 예산과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고 당시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지금 당장이 아니면 영영 못할 수도 있는 일들이다. 시기를 놓치면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나는 진정 우리나라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았으면 좋겠다. 개인의 안위보다 더 큰 가치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그들이 존경을 받아야만 대한민국 국민들 모두가 훗날 나라의 위기가 닥쳤을 때 진정 나라를 위해 행동할 것이다. 비록 오십년이 지난 지금 과거 친일 행적을 보인 이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그들을 처단하기에는 시간이 너무나 많이 흘러가 버렸지만, 해외의 독립운동 유적들을 보존하고 국내의 국가유공자 후손들에 대한 좀 더 많은 지원을 하고 미래 세대의 올바른 역사 인식을 위한 장을 마련한다면 우리는 최소한 더 이상 우리의 가치를 잃어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소설은 그 시대를 반영한다. 소설 속 열린 결말은 아직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현재 진행형임을 보여준다. 만일 우리의 역사가 정상적인 방향으로 흘러갔었다면 ‘토지’도 모두에게 행복한 감동을 주는 결말로 마무리 되었을 것이다. 과거의 흘러간 일들만이 역사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하는 행동과 발자취 하나하나가 곧 역사다. 우리가 과거 조상들의 비겁하고 어리석은 행동들을 비난하고 부끄러워하듯이 우리의 후손들도 지금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물러나 있기만 한다면 훗날 우리를 부끄럽게 생각 할 것이다. 일제의 불의 앞에서 눈 감아버린 친일파들의 행동과 지금 우리가 현실을 외면하는 행동의 본질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 자신들을 역사 앞에서 부끄럽게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상처 많은 역사를 해피엔딩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