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청소년논술대회 최우수② / "우리는 아직 배우지 않았다."
한민족청소년논술대회 최우수② / "우리는 아직 배우지 않았다."
  • 강륜금 기자
  • sierra@ikoreanspirit.com
  • 승인 2010.10.27 21: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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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은솔 학생 (대전송촌고 2) 작품

 아래 글은 제6회 한민족 역사·문화 청소년 글짓기 논술대회에서 고등부 최우수상을 받은 조은솔 학생(대전송촌고 2)의 글. 국학운동시민연합과 동북아역사재단,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공동 주최한 이번 논술대회에는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전국 초·중·고등학교에서 총 816명이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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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많은 것을 보고 그것들이 움켜쥐고 있는 무수한 가치들을 느낀다. 그리고 그러한 가치들을 내 옆 사람에게 혹은 세상에 알리기 위해 입술을 열고 연필을 잡는다. 그 결과 오롯한 입술과 먹에 흠뻑 취한 붓이 만나 한 편의 시조가 되고 가사가 되어 부채를 펄럭이게 만들고 얼쑤장단과 무릎장단을 자아낸다 한 편의 연애편지를 보는 느낌을 주는 동동은 요즘처럼 재고 따지는 사랑과 쉽게 끓지만 쉽게 식어버리는 심장 박동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며 나라와 임금에 대한 굳은 믿음을 노래한 정몽주의 하여가는 믿음이 사라지고 뒷골목에 웅크린 진실이 많아지는 우리들의 세상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비록 이러한 작품들 중에 우리나라 고유의 언어가 없었던 시기에 만들어진 작품도 많지만 21세기를 달리고 있는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이름 글이라는 우수한 글자를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한글이 사용되기 이전에 쓴 다른 우수한 작품들도 모두 한글로 풀이가 되어 오늘 날 작품집에, 우리의 교과서에 그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당당하게 실렸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 조상들의 생활 모습과 그 당시 지녔던 가치관을 보다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한글의 덕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한글의 탄생기원은 훈민정음이라 알고 있다. 하지만 모든 문서를 지배하던 한자가 만연했던 시절에 한글은 언문, 반글 등으로 불리며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그래서 한글은 한자를 알지 못하는 부녀자와 어린이들에게 널리 퍼지게 되었다. 후에 중국과의 사대관계를 공식으로 단절한 뒤에야 조선문 혹은 국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고 1907년에는 국문연구소가 설치되기도 하였으나 일본의 식민지 시대를 겪으면서 한글은 다시 어린 국민들을 위한 반글이 되었다.

 훈민정음과 한글을 동일시하게 여기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대다수의 생각들과는 달리 훈민정음은 한글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한글은 대한민국의 국문을 지칭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고 이는 어디까지나 훈민정음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말이 된다. 서울대병원 병원역사연구센터 전우용 연구 교수는 "가갸날은 1920년대 중반까지도 한글이란 뜻을 일반화 하지 못한 점을 위해 만들어진 제 1회 훈민정음 반포일이었다. 하지만 조선어연구회가 한글을 창간함과 동시에 한글을 훈민정음의 새 이름으로 정했기 때문에 1926년 11월 4일 서울의 음식점 식도원을 끝으로 사라졌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세종대왕이 창제한 것은 한글이 아니라 훈민정음이라 덧붙였다. 그러므로 훈민정음을 만든 세종대왕과 집현전의 학자들은 한글만을 고려하여 만든 것이 아니라 중국어, 몽골어, 만주어, 일본어와 같은 주변의 다른 언어를 소리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최종 목표에 두고 만들었던 것이다. 모든 언어의 발음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발음체계인 훈민정음의 한 일부분으로 등장한 한글. 그렇다면 한글이라는 말의 기원은 어디서부터 나온 것일까? 그것은 맨 처음으로 주시경이 사용하였다. 큰 글과 온전한 글을 뜻하는 한글은 한자를 우선시했던 우리의 과거를 반성하자는 태도에서 나오는 말이기도 했지만 이 말이 보편화가 되지 못하여 가갸날의 탄생을 만들었던 것이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공문서에 한글 전용 원칙이 확정된 뒤에야 비로소 우리 고유의 언어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일 년 전에 나라 말씀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맞지 않으니 어리석은 백성들을 구원하고자 만든 글자를 낑낑대며 외웠던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중에서 읽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던 작은 점 하나. 나는 그것을 아래아(·)로 배웠다. 정진홍 논설위원은 이 아래아가 하늘아로 불러야 함이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그 글자는 본래 하늘을 뜻했지만 과거 일본의 식민통치 속으로 파고들어가 보면 일본은 민족의 자긍심과 자아를 소멸시키기 위해 하늘의 뜻을 가진 그 글자를 임의대로 바꾸어 버렸다. 때문에 천지인에 바탕으로 만들어진 훈민정음의 창제원리를 상실했다고 말했다. 단일 민족의 정신을 흔들어 놓으려 그들의 언어에 파고든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지만 세종대왕님의 숨이 살아있도록 하기 위해 지금에라도 글자의 뜻을 분명히 하고 되살려야 한다는 입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사실들, 그리고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을 잊지 않고 마음속에 간직하자. 그리고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입술을 오롯하게 모으고 붓 대신 펜과 연필을 집어 들자. 종이 위에 써 내려가는 사각거림과 너에게로 전하고, 나에게로 전해지는 속삭임이 울려 퍼지게 되면 훈민정음과 한글은 알을 깨고 나왔던 어느 신화에 나온 영웅처럼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난 날 아픔 속에 지워진 하늘을 되살려 천지인의 정신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그 누구보다도 한국인이라는 날개를 달고 힘차게 질주할 것이다.

 언어라는 것은 사회성을 가진 인간에게 꼭 필요한 도구이다. 하지만 이러한 도구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사용한다면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상황을 초래하게 된다. 그러니 처음으로 돌아가서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 마지막으로 주시경의 마음을 느껴보자. 찬란했던 그들의 붓과 끊임없는 연구에 이끼가 되고 쇠고랑이 되는 언행은 여기서 과감히 선을 긋자. 기본부터 튼튼하게 다지어 단일 민족의 홍익인간 이념을 이제 우리의 손으로 펼칠 때가 다가왔다. 백지의 지도를 펴고, 잃어버렸던 나침반을 쥐어라! 우리는 아직 배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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