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이세신궁(伊勢神宮)은 단군을 신봉하던 곳이었다. 에도시대부터 일본 국수주의자들은 이를 완전히 은폐시키고자 만든 것이 바로 ‘황국신도’였다”

▲ 홍윤기 석좌교수
홍윤기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는 14일 국학원 109회 국민강좌에서 일본 국수주의자의 역사왜곡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이날 홍 교수는 ‘단군신앙이 뿌리내린 일본역사의 현장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일본 국수주의자들에 의하여 조작된 황국신도라는 발자취는 10세기 경부터 그들이 조선 상고 역사에 대한 일인들의 열등의식을 극복하기 위한 ‘단군 조선’ 역사와 신앙 말살책에서 비롯되었던 것이었다”고 발표했다.

그는 일본 국수주의자들이 그들의 성지라고 내세운 미에현 이세시의 이세신궁(伊勢神宮)은 본래 신라 천일창(天日槍) 왕자가 한민족이 상고시대부터 조상신으로 섬겨온 곰신(熊神)의 곰신단(熊の神籬)을 일본땅에 모셔다가 세운 터전이었다고 주장했다.

18세기 고증학자 도데이칸(藤貞幹, 1732∼97)은 그의 저서에서 '곰신단(熊の神籬)의 신리(神籬, 히모로기)는 후세의 신사(神社, 사당)이니라.’라고 밝혔다고 한다.

또한 곰신단의 신리는 ‘히모로기’(比毛呂岐)라고 새겨서 읽는 것에 대해서도 “본래 신라말(新羅語)이며, 신라어를 그 당시 일본에서 빌려서 쓰게 된 것이로다. 천일창이 가지고 온 곰신리도 천일창이 조상을 신주로 모신 것임을 알아둘 것이다.”라고 홍 교수는 설명했다.

이세신궁(伊勢神宮)의 ‘신궁(神宮)’이라는 사당 호칭조차 일본에서 최초로 발상된 것은 아니다.

『삼국사기』에 '일찍이 신라에서는 소지왕(479∼500) 9년(487), 박혁거세 탄생지인 나을(奈乙, 경주 나정)에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를 제사 모시는 사당으로서 처음 신궁(神宮)을 세웠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이세신궁의 신궁 명칭은 신라에서 호칭하던 당시의 사당 명칭을 답습한 것이다.

▲ 홍윤기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는 14일 국학원 국민강좌에 참석해 일본의 국수주의자들이 단군을 모시던 이세신궁을 은폐하려는 것에서 황국신도가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홍윤기 교수는 나라땅 사쿠라이시의 성산인 미와산(三輪山) 남쪽 기슭에 대국주신을 모신 오미와진자(大神神社)를 방문한 일화를 소개했다.

참배객들은 이곳을 뱀신 삼나무 제사터(巳の神杉)로 부르며 삶은 달걀을 사서 머리숙여 뱀신에게 정성껏 바친다고 한다.

그는 올해 1월 15일 오미와진자의 신관 스즈키 칸지(鈴木寬治) 궁사를 만나 대국주신의 실체가 신라신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궁사는 드높게 솟구친 삼나무 고목을 손짓하면서 '지금도 뱀신이 이 신성한 삼나무에 살고 계십니다'고 말했다. 필자가 '그 뱀신이란 이쿠타마요리히메와 사랑했다는 오쿠니누시노카미(대국주신)의 실체입니까?'고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고 대답하는 궁사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오쿠니누시노카미가 신라신이라는 것은 인정하십니까?'하고 필자가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론입니다. 오쿠니누시노카미는 신라신 스사노오노미코토의 아드님입니다'고 확실히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