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재해 안동대 교수는 9일 국학원 주최로 열린 한․몽․일 국제학술대회에 참석, ‘고조선본풀이와 게세르 신화 비교로 본 한몽 고대사의 접점 인식’을 주제로 발표했다.

국학원은 창립 10주년을 기념해 9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동북아 고대사의 공통분모 발굴을 통한 국제네트워크 구축’이라는 주제로 한․몽․일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이번 대회는 동북아역사재단의 시민협력사업으로 선정되었으며, 문화체육관광부의 후원을 받았다.

이날 임재해 안동대 교수는 9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한․몽․일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해 ‘고조선본풀이와 게세르 신화 비교로 본 한몽 고대사의 접점 인식’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임 교수는 한국의 문화가 유목문화에서 비롯되었거나 혈연적 동질성을 가졌다는 것에 대해 비판했다.

그는 “단군조선시대부터 이미 농경문화의 역사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가장 오랜 볍씨의 출현과 경작지의 발견으로 유목문화 기원설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혈연적 동질성을 지녔다는 근거로 제시하는 ‘몽골반점’은 몽골인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여러 민족에 두루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한국과 몽골은 종속주의적 전래설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중요하며 문화적 동질성과 이질성을 상대적으로 이해해야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한편 임 교수는 한국의 고조본풀이와 몽골의 게세르신화에 대해 전자가 문학작품이라면 후자는 사료적 성격이 강하다는 점이 다르다고 밝혔다.

“고조선본풀이가 건국시조의 행적과 국가의 기원을 서술하여 사료적 성격이 아주 두드러진 반면에, 게세르는 구비전승되는 영웅서사시로서 문학작품의 성격이 훨씬 더 두드러져 있다.”

이러한 이유는 고조선본풀이가 사료로서 <삼국유사>에 수록되었으나, 게세르는 문학작품이기 때문에 <몽골비사>나 <원사(元史)> 어디에도 수록되지 않았다는 것에서 찾을 수가 있다.

다시 말해 게세르는 사료가 아니기 때문에 사서에 수록되지 않은 것이다.

[전문]

고조선본풀이와 게세르신화 비교로 본 한몽 고대사의 접점 인식

             
1. 한국과 터키 및 몽골의 친연성 재인식

   한국과 몽골 고대사의 접점을 이해하는 데에는 터키가 중요한 매개 구실을 한다. 고대에는 한국과 몽골, 터키의 조상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한몽’관계는 곧 ‘한터키’ 관계 또는 ‘몽골과 터키’ 관계 속에서 상대적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몽골과 터키는 지금 어떤 관계에 있는지 모르지만, 한국과 몽골 또는 한국과 터키의 관계는 정부보다 국민들 사이의 관계가 상당히 우호적이다. 한국인의 정서로 볼 때, 흥미롭게도 가까운 이웃인 일본인나 중국인들보다 오히려 몽골인과 터키인들에 대해 더 친밀한 감정을 지니고 있다.    
 
   한국인과 몽골인들이 상호 우호적이라면 한국인과 터키인들의 관계는 터키인들이 더 적극적이다. 한국인들은 터키에서 특별한 친밀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반면에 터키인들은 한국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친밀감을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인들은 터키인들의 우호적 태도에 대해 놀라면서 반갑게 여기는 반면에, 상대적으로 터키인들은 한국인의 무관심에 대해 매우 섭섭하게 생각하며 충격적으로 받아들인다. 터키에는 한국 참전 기념 묘역이 있는데, 한국에는 특별히 터키를 기억하는 어떤 유무형적 문화현상이 없다. 그러므로 한국과 터키의 관계는 몽골과 다른 특수성이 있다.    

   역사를 보더라도 중세사나 근대사에 한국과 터키선린 관계를 맺은 사실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전승지식으로서 문화적 유전자 구실을 할 수 있는 현상이 없는 까닭이다. 따라서 한·터키 관계, 특히 터키인들이 한국을 우호적으로 여기는 까닭은 고대사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밖에 없다. 고대 한민족의 한 갈래였던 돌궐족이 터키인들의 조상이라는 설이 건국시조 신화와 언어학적 자료, 지명 등으로 추론되고 있는 것이 중요한 단서이다.

   돌궐은 흉노의 별종으로 성은 아사나(阿史那)이다. 적들이 침략하여 종족들을 모두 죽이고 10살짜리 사내아이만 살려두었다. 암늑대가 고기를 물어다 양육하고 나중에 교합하여 아기를 배었다. 다시 적들이 죽이려 하자 고창국 북쪽 평탄한 초원에 숨어서 10명의 아들을 출산했는데, 아사나족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금산(金山)의 남쪽에 살았는데, 산의 형상이 투구와 닮아서 투구 곧 돌궐이라고 했다.  
 
   돌궐(Türk)족의 시조신화이다. 최근에 신용하는 이러한 자료들을 근거로 고조선과 터키의 연관성을 밝혔는데, 고조선 시기의 원돌궐은 단군조선의 후국이었다. 통치자 두만(頭曼)은 ‘아사나(阿史那)’씨로 고조선에서 파견한 지방관이었다. 󰡔수서󰡕는 돌궐의 선조가 평량(平凉)에 살았으며 성을 ‘아사나’라고 밝혀두었다. 평량을 일컫는 지명의 발음과 뜻이 단군조선의 도읍지인 평양(平壤) 및 ‘아사달’과 상당히 일치한다.

   더군다나 돌궐족 개국신화에 등장하는 성지 위투캔(Ütukan)산의 이름은 한국어 발음으로 ‘우뚝한’산이자, 돌궐(突厥)의 돌(突)과 같은 뜻이다. 이 산은 투구 모양으로 평지에서 돌출한 것처럼 우뚝 솟아 있으므로 한국어로 우뚝한 산이라 할 만하다. 위투캔산은 몽골인들이 현재 ‘오토콘·텡그리’ 산이라 일컬으며, 그 지역 사람들은 ‘박다’(달)산이라고 일컫는다.

이 산은 현재 몽골 올리야스테시 주변에 있는데, 한자로 어도근산(於都斤山)이라 표기되며, 몽골어 발음으로 ‘오트공 텐게리(Отгон тэнгэр)’산으로 일컬어진다. 몽골어로도 역시 우뚝한 산을 나타내며 천산(天山)으로서 신성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게다가 박달산이라는 명칭은 신단수(神檀樹)나 단군(檀君)처럼 ‘박달’ 곧 ‘밝다’의 뜻을 지닌 배달민족 문화권의 산이다. 그러므로 ‘돌궐족은 고조선 아사나족과 아사달족의 피를 이은 민족이라고 할 수 있다.’

   터키인들은 고대사와 민족신화를 공부하면서 한국과 혈연적 동질성을 포착할 수 있으나 한국인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거나 알고 있어도 전문가에 한정될 뿐이다. 따라서 터키인과 한국인의 혈연적 친연성을 알지 못한 까닭에 한국인들은 터키인들과 달리 터키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과 몽골의 관계에 대해서는 몽골인들 못지않게 한국인들도 몽골인을 우호적으로 인식한다. 혈연적으로 한국인과 몽골인은 동질적이라고 여길 뿐 아니라 한국의 문화적 기원도 몽골의 유목문화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유목문화 기원설이 몽골이나 시베리아와 친밀한 관계 속에서 문화적 동질성을 읽는 한 과정으로 제기되었다면 퍽 다행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북방문화 기원설은 일제강점기 이후 식민사학의 유산으로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적인 논의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북방문화 기원설은 한민족의 문화적 독창성을 부정하기 위해 식민지배에 봉사하던 일본사학자들과 친일사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주장이기 때문이다. 그 영향을 받은 우리시대 학자들조차 그런 식민사학의 논리에 갇혀서 역사 연구와 교육을 하고 있는 까닭에 이러한 전파론적 종속주의 기원론은 우리 학계에 강고한 뿌리를 내리고 후속세대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한몽수교가 이루어지자, 발빠른 한국학자들은 몽골 현지답사를 하며 민족문화의 기원을 몽골문화에서 찾으려고 힘쓴 나머지, 일부 유사성을 근거로 몽골문화 기원설을 펼치기도 했다. 학술적 근거나 논리적 해명보다 인상적 근거나 감성적 해명이 앞섰다. 이런 성급한 주장들은 학문적 행위라기보다 자기 역량을 과시하기 위해 세태에 영합하는 선정적 행위이자, 기정사실의 학문적 선점을 위한 기득권 확보 행위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는 너도나도 몽골 답사는 물론 시베리아 답사와 현지 유학까지 가능한 상황이 되자, 그러한 선정적 기득권 활동이 얼마나 천박한 일인가 하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여행자 수준의 답사로 들뜬 주장을 하던 학자들의 기정사실화 작업이 진행된 이후 장기체류 조사와 학술적 연구활동으로 몽골문화 기원설에 대한 반성적 고찰이 비판적으로 제기되었으며, 지금은 몽골 유학 출신 학자들이 배출되면서 상당히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몽골반점이나 몽골리언(Mongolian), 샤머니즘 기원설 등 일제강점기 이후에 제기되었던 시베리아 기원설이나 유목문화 원류설이 일방적으로 통용되지 않고 있다. 물론 여전히 시베리아 기원설을 비롯한 유목문화 원류설, 북방문화 영향설 등이 북방민족 이동설과 알타이어족설, 샤머니즘설을 근거로 전래설을 펴는 전파주의자들이 적지 않지만, 적어도 이러한 낡은 주장이 일방적으로 관철되는 상황은 극복되고 있다.     

   그러한 학문적 흐름이 분과학문 전반으로 확대되어 식민사학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논저들이 간행되기 이전부터 식민사학의 편견을 극복하는 학술적 연구가 고대사 연구를 비롯하여 고고학 및 언어학, 사회사학, 복식학, 분야에서 두루 이루어졌다. 최근에는 비교연구 방법에 의하여 굿문화와 금관, 신화 등의 비교로 전파주의적 전래설에 대한 비판적 연구가 이루어졌다. 비교연구의 방법론도 신비교주의로 나아가는가 하면, 북방문화 전래설을 극복하는 자생설에서 더 나아가, 우리 민족문화가 오히려 북방문화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어떤 국가나 민족이든 이웃과 서로 교류하지 않고 영향을 주고받지 않은 공동체는 없다. 그러므로 종속주의적 전래설에서 해방되어 상호교류 가능성을 열어두고 문화적 동질성과 이질성을 상대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화의 동질성을 중심으로 지역적 연대와 민족적 유대를 공유하고, 이질성을 중심으로 생태학적 특성과 민족적 독창성을 인정하며, 화이부동(和而不同)의 논리로 상생적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긴요하다. 따라서 전래설을 전제로 한 맹목적 동질성의 주장은 양국관계 어느 쪽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근거 없는 친연성은 오래 갈 수도 없다. 서로 다른 민족적 개성과 문화적 독창성이 오히려 양국관계를 긴밀하게 발전시키는 데 기능적이다. 그러므로 일정한 전제나 선입견 없이 양국의 역사와 문화적 관계를 밝힐 필요가 있다.

   그러자면 진부한 전제나 상투적 고정관념부터 극복해야 한다. 한국과 몽골의 문화가 유목문화에서 비롯되었거나 혈연적 동질성을 지녀서 서로 친밀감을 가진다는 견해야말로 그러한 전제이자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편견이다. 한국문화는 단군조선시대부터 이미 농경문화의 역사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가장 오랜 볍씨의 출현과 경작지의 발견으로 유목문화 기원설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 더군다나 한국이 오랜 농경문화의 전통을 지속하고 있는데, 몽골은 여전히 유목문화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어, 생태학적 차이는 물론 의식주 생활의 차이가 현저하다. 더군다나 한중일은 오랫동안 불교문화와 유교문화를 공유하고 있는데, 몽골은 티베트의 라마교문화를 공유하고 있다. 몽골과 티베트는 유목문화와 함께 종교문화를 공유하고 있지만, 한국과 공유하는 문화는 구체적으로 제기할 만한 것이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혈연적 동질성을 지녔다는 근거도 확실하지 않다. ‘몽골리언’이라거나 ‘몽골반점’ 수준의 동질성은 착각이다. ‘몽골반점’은 몽골인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여러 민족에 두루 나타나는 현상이며, ‘몽골리언’이라는 말은 좁게는 몽골인을 뜻하지만 일반적으로는 황색인종을 나타내는 말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과학적 연구로 유전자 관련 분석을 시도했지만 그 결과가 상반되게 나타나기도 해서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어느 쪽으로 결론이 모아져도 설득력이 없다. 왜냐하면 중요한 것은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 역사적 인식이며 정서적 동질감이기 때문이다.

   과학적 사실은 국민적 정서를 공유하게 하는 근거 구실을 하지 못한다. 일반 국민들은 그러한 전문적 연구를 알지도 못할 뿐 아니라, 알아도 공감하기 어렵다. 실제로 한국과 일본은 원래 같은 민족이라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밝혀졌다고 하여 동질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사실과 상관없이 정서적 적대감이 한일양국 국민들을 사로잡고 있는 까닭이다. 따라서 일본인들과 동일민족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와 반대로 중국과 한국은 서로 다른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한국인들 가운데 스스로 중국과 같은 혈연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혈연적 계보인 족보에 자신들의 시조를 중국인으로 삼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스스로 중국인들의 후손으로 여기는 족보를 만들고 가문의 긍지로 삼는 것이다. 과학적 근거가 뒷받침되지 않은 상상으로 빚어진 현상이다.

   한몽관계도 상상에 따른 몽골반점과 몽골리언이 정서적 공감대 형성에 더 기능적이다. 상상된 사실이 실제 사실을 결정하는 까닭이다. 민족의식도 혈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민족이라는 생각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혈연적으로 동일민족이 아니라도 동일민족으로 상상하는 사람들은 민족의식이 형성된다. 혈연적 동질성보다 관념적 동질성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이다. 과학적 사실의 힘 못지않게 관념적 상상의 힘이 더 크다. 그러므로 혈연적 동질성도 상상 속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민족의식을 형성하는 데 무기력할 따름이다. 

   이러한 상상력의 뿌리에 역사의 기억과 역사적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실제 사실의 관계보다 역사적 공동체라는 동류 인식의 기억이 더 중요하다. 이러한 인식은 근대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 터키가 한국인을 인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대부터 지속된 전승지식에서 터를 잡고 있다. 문헌지식은 개별적인 독서자에 한정되어 인지되는 것이지만 전승지식은 공동체가 공유하고 공감하는 지식이다. 그러므로 전승지식으로서 역사적 사료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2. 한몽관계를 읽는 자료로서 고조선본풀이와 ‘게세르’

  고대 전승지식으로서 가장 중요한 자료가 흔히 말하는 건국시조신화이다. 흔히 단군신화로 일컫는 고조선 건국시조본풀이가 그러한 사료로서 가장 중요한 구실을 한다. 고조선본풀이는 구체적으로 환웅의 ‘신시본풀이’나 단군의 ‘조선본풀이’로 이루어져 있다. 이 두 본풀이를 아울러 고조선본풀이라고 일컫는다. 게세르신화와 더불어 한몽관계를 읽는 고대 전승지식으로서 고조선본풀이를 끌어오는 것은, 몽골을 비롯한 초원지대 유목문화 지역에서 전승되는 게세르신화와 같은 범주로 귀속시켜 논의되고 있는 까닭이다. 

   본풀이 또는 건국시조신화는 구비전승의 역사 구실을 한다. 일종의 구술사료라 할 수 있다. 구술사료 가운데 건국시조 본풀이의 경우는 한결같이 고대사를 증언하는 자료이다. 그리고 고대사에 관한 구술사료들은 그 자체로 전승되는 경우는 드물고 흔히 역사시대라고 하는 ‘기술사시대’로 오게 되면 문헌에 기록되게 마련이다. 고조선본풀이는 오래 전인 13세기 이전부터 문헌에 기록되어 전승되는 반면에, 몽골의 게세르 신화는 18세기에 비로소 문헌기록에 일부 정착되었으며 여전히 다수의 자료들은 현장에서 구전되고 있다. 따라서 두 자료의 시대적 배경은 물론, 두 민족의 문화적 향유의 차이가 상당히 크다. 그러므로 게세르 이전에 문헌에 정착되었을 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더 이른 시기의 몽골신화를 먼저 살피는 것이 양국관계의 고대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몽골의 역사는 한민족과 견주어 논하기 어려울 만큼 후대에 형성되었다. 상대적으로 역사 서술의 시기도 상당히 늦다. 따라서 고대사 서술은 칭기스한(成吉思汗, Genghis Khan)이 몽골제국을 건설하기 1세기 전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박원길은 몽골고대사의 제1장을 11·12세기의 몽골부 및 주변의 분석에서부터 서술한다. 그러나 구전되어오던 시조신화는 상대적으로 고대의 역사를 어느 정도 반영한 것이라 인식할 때, 이 시기 구전시조신화들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삼국유사>의 1권 1장에 ‘고조선본풀이’가 수록되어 있는 것처럼, 󰡔몽골비사󰡕 1권 1장에도 칭기스한의 조상 신화가 서술되어 있다. ‘칭기스한의 조상은 하늘이 점지하여 태어난 잿빛 푸른 이리(부르테 치노)이다. 그의 아내는 흰 암사슴(코아이 마랄)이었다. (그들은) 텡기스를 건너왔다. 오난강의 발원인 부르칸 칼둔에 터를 잡으면서 태어난 것이 바타치칸이다.’ 이처럼 칭기스한의 시조이자 몽골의 조상은 이리와 사슴으로서 모두 짐승이다. 이리나 사슴은 몽골 특유의 조상 개념이 아니라 북방 유목민들의 신화에서 자주 등장하며 돌궐 신화와도 관련이 있다. 그러나 하늘에서 점지했다는 점에서 예사 짐승이 아니라 신성한 종족이다.

   고조선본풀이의 곰네[熊女]가 곰족인 것처럼, 푸른 이리와 흰 암사슴도 이리족과 사슴족이라 할 수 있다. 이 두 종족이 부부를 이루어 불칸(Burqan)산에 정착하여 바타치칸이라는 아들을 낳으면서 시작되었다. 시조의 모계를 나타내는 흰 사슴은 고조선 계열의 부여족을 뜻하는 것이며 ‘불칸산’은 밝산으로서 한자로 표시하면 백산(白山)을 뜻하는 것이다. 이처럼 원몽골족은 흉노와 친족관계를 맺은 부족으로서 고조선계 부여족의 하나와 혼인동맹에 의해 불칸산 기슭에 정착한 민족이다. 그러므로 고조선과 몽골은 지리적 영역과 시조의 혈연은 물론, 언어와 생업, 문화가 어느 정도 동질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

   이러한 동질성은 여러 유형의 사료에 두루 나타난다. 문헌기록과 발굴유물을 자료로 단군조선의 강역을 설정해 보면 현재 몽골의 동남부 지역이 단군조선의 영역에 포함된다.

 비파형동검의 분포나 복식 및 고인돌분포를 고려한 강역의 설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 고구려의 강역 또한 고조선처럼 지금의 몽골 및 내몽골 일부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몽골지역이 단군조선이나 고구려의 영역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은 몽골의 역사에서도 드러난다.
 
   몽골은 8세기에 흑룡강 상류인 에르군네(Ergüne)강 유역에서 몽올실위(蒙兀室韋)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하였다. 위구르와 당, 토번이 붕괴되는 틈을 타고 서쪽으로 이동하여 11∼12세기 무렵에 오난(Onan)강 일대까지 진출해서 여러 부족들과 항쟁하면서 성장하다가 1206년 칭기스한을 중심으로 몽골제국을 건설하였다. 흉노의 모두루 단군이 동호(東胡)를 제압하자 살아남은 사람들이 동쪽으로 와서 일부는 ‘선비(鮮卑)’가 되고 일부는 오환(烏桓)이 되었다가 뒤에 다시 실위(室韋, 몽골)와 ·거란(契丹)이 되었다. 이들은 당나라 때에 이르러 지금의 흑룡강 부근에 거주했는데 몽골이나 모골, 머골(蒙兀)이라는 이름은 이때 나타났다.

   중국 사서에서 몽골은 실위로 기록되어 있다. 실위는 물길(勿吉)의 북쪽 1천리 떨어진 곳에 있는데, 북쪽으로 흐르는 ‘눈강’이 있고, 국토는 저지대여서 습하며 언어는 고마해(庫莫奚)와 계단(契丹), 두막루(豆莫婁) 등과 동일하며, 조와 보리, 피가 많았으나 사람들은 멧돼지나 물고기를 먹고 소와 말을 기르되, 양은 치지 않았다. 이처럼 원몽골은 단군조선에 속해 있었던 만큼 잡곡농사를 지으며 가축을 기르되 본격적인 유목생활을 하지 않았던 셈이다.

   따라서 ‘눈강’ 유역 저지대는 고조선의 북변 영토였으며, 부여가 건국되었을 때에는 부여의 북쪽 영토였다. 처음에는 양을 치지 않고 조와 보리, 피를 풍부하게 생산할 만큼 일정한 수준의 농경문화를 누렸다. 더군다나 실위의 언어 곧 몽골어는 ‘고마해’라고 하는 해(奚)족의 언어와 같고 고조선 조어(祖語)의 한 갈래를 나타낸다. 실위족이 서쪽으로 이동하여 몽골고원에 가기 전에는 사실상 단군조선 또는 부여의 영역에 귀속되어 있었으며 언어와 생업도 어느 정도 공유했다. 그러므로 ‘단군조선 시기의 실위(proto-Mongols, 원몽골)는 조선의 북방 후국족으로서, 부여와 이웃하여 생활하는 동안 고조선의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동질적 관계는 역사가 진전될수록 서로 이질화되었다. 부여와 고구려는 계속 농경국가로 발전하는 반면에 서쪽의 몽골고원 지대로 이동한 원몽골족은 초원의 생태계에 맞게 유목국가로 발전하게 되었다. 칭기스한의 통일 이후 몽골제국 원(元)은 마침내 세계제패의 일환으로 고려를 지배했지만 그들이 정복한 유라시아 여러 국가들과 달리, 공주를 보내 부마국가로 삼았을 뿐 아니라, 독립국가로서 주권을 인정하는 특수한 관계를 이루었다. 고려는 몽골이 지배한 다른 국가들과 달리 왕권을 상당히 누렸던 것이다. 세계 모든 나라가 몽골제국의 깃발 아래 복속되었는데, 오직 고려만이 주권국가로서 국체를 존속할 수 있었다. 쉽게 납득할 수 없는 한몽 우호관계는 몽골이 고려인을 같은 민족으로 인식하는 동질성에서 찾는다.

   이처럼 비록 역사적 뿌리가 같았다고 하더라도 원과 고려는 이미 유목문화와 농경문화로 서로 다른 문화적 정체성을 지닌 국가이다. 이 시기는 농경문화 우위의 세계를 뒤집고 유목문화가 유라시아를 제패하던 유목제국 시대이다. 그러나 유목제국 시대는 다시 농경문화에 의해 극복되었고, 지금은 농경문화도 밀려나서 기업제국 시대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요동 속에 한몽관계는 민족 형성기의 동질성이 역사발전과 민족이동으로 점차 이질화되는 관계로 변화되어 지금에 이른다. 생태학적 환경의 특수성에 따라 두 문화의 이질성은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다.

   한몽관계의 변화과정 가운데 그 이질성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문화유산이 한국의 고조선본풀이와 몽골의 게세르신화이다. 고조선본풀이는 환웅의 신시고국과 단군의 조선 건국시기를 이야기하는 것으로서 한민족의 건국시조본풀이인 반면에, 몽골의 게세르신화는 몽골 지역에 한정되지 않고 러시아와 티베트 등 아시아와 시베리아 초원지역 유목문화권에서 두루 전승되는 것이다. 따라서 게세르신화는 유목문화를 상징하는 대표성을 지니고 있으며 최근까지 구전되는 반면에, 고조선본풀이는 한국사 속에 한정된 것일 뿐 농경문화를 상징하는 대표성을 인정할 수 없으며 구전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넓은 의미의 게세르신화 범주 속에 고조선본풀이가 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비교할 만한 대상이다. 

   3. 게세르의 범주에 포함될 수 없는 고조선본풀이

   일반적으로 게세르신화는 ‘게세르’라는 명칭을 공유하고 동일한 서사구조를 갖춘 유형으로 좁게 범주화된다. 그런데 게세르의 기원을 연구한 차그두로푸(S.Sh. Chardurov)에 따르면 넓은 의미의 게세르신화로 알타이의 ‘마아다이카라’, 칼묵인의 ‘장가르’, 티베트와 몽골의 ‘게세르’, 부리야트의 ‘(아바이)게세르’, 한반도의 ‘단군신화’까지 포괄하는 대규모 범주를 설정하고 있다. 따라서 넓은 의미로 볼 때, 고조선본풀이도 게세르신화와 같은 서사구조를 갖춘 것처럼 인식된다. 이러한 논리로 보면 일본의 천손강림형 신화들도 같은 범주에 귀속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차그두로푸의 주장을 의심 없이 따라가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 좁은 의미의 게세르는 두 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는데 비하여 넓은 의미의 게세르는 특별한 조건의 제한이 없다. 좁은 의미든 넓은 의미든 게세르신화와 같은 유형으로 묶으려면 일정한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이야기들을 게세르 유형으로 묶을 수 있다. 서사적인 이야기는 고대에나 현대에나 추상화하면 실제 이야기의 사건 전개 내용이나 세계관적 의미와 상관없이 민족과 국경 및 시대를 초월해서 하나의 유형으로 묶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전기적 유형’ 또는 ‘영웅의 일생’ 7개 단락이다.

   이러한 유형구조는 동서고금의 서로 다른 유형의 서사문학들을 하나로 묶을 만한 보편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현대적인 방송드라마나, 판타지 소설, 애니메이션의 서사구조나 등장인물도 일정한 틀을 이루고 있다. 흔히 삼각관계의 불륜을 다룬 드라마나, 마법의 힘을 지닌 주술물을 차지하기 위한 쟁투, 버려진 소녀의 시련과 성공 등 이러한 진부한 틀을 흔히 클리세(Cliché)라고 한다. 흥미를 끌게 하는 전형화된 작품구조가 ‘클리세’이다. 고대신화의 전형도 으레 주인공이 천손강림인 경우 하늘나라와 지상세계, 왕국의 건설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일본의 나라 또는 이즈모 지역의 천손강림신화의 경우도 으레 이와 같은 구조를 이루고 있다. 특히 이즈모의 ‘스사노오’의 천손강림신화는 고조선본풀이보다 오히려 더 게세르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넓은 의미의 게세르신화 범주라는 것은 특정한 유형적 조건조차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스란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럼에도 넓은 의미의 게세르신화라는 관점에서 고조선본풀이를 이와 비교연구한 성과가 있어 주목된다. 양민종은 게세르의 서사구조와 맞추기 위해 고조선본풀이를 아래와 같이 크게 네 단락으로 나누었다.

   가) 서 시 : 하늘 신의 세계, 환웅의 지상으로 강림 사유
   나) 제1부 : 신시 시대의 형성 - 홍익인간과 재세이화의 실현
   다) 제2부 : 아사달에서 지상의 개국과 단군왕검의 통치기
   라) 제3부 : 제국의 쇠퇴. 제국 부활의 가능성과 신화-이야기의 시작

   우리가 흔히 말하는 단군신화는 󰡔삼국유사󰡕 ‘고조선’조에 수록된 󰡔고기(古記)󰡕의 인용부분을 말한다. 이 부분은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一然)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따라서 일본인들이 고조선본풀이를 두고 중의 망설(妄說)이니 일연의 조작이라고 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 실제로 일연은 󰡔고기󰡕의 기록이 미진하여 설명을 덧붙이거나 잘못을 발견하여 바로잡는 내용, 그리고 납득이 되지 않아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모두 원문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협주로 표시했다. 일연이 󰡔고기󰡕의 기록을 옮겨 놓으면서 자의적으로 첨삭하거나 수정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일연은 이 자료를 하나의 문학작품이 아니라 고조선 시대를 서술하는 사료로 인용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조선본풀이는 단군이 ‘조선’을 건국하고 1500년을 다스렸으며, 1908세를 살다가 아사달에 돌아와 산신이 되는 것에서 마무리된다. 󰡔고기󰡕는 이처럼 사료답게 마무리한 것이다. 그런데 양민종은 사료로서 보는 데 비판적 입장을 취하고 하나의 문학작품인 서사시로 주목하여 그 전체적인 구조를 위와 같이 분석했다. 그러므로 ‘특정 종족의 건국신화로 해석하는 것보다 오히려 다양한 종족들의 보편적인 세계의 건설’, 곧 “다민족-다문화를 포괄하는 고대의 이상적인 제국의 모습”이라고 추론한다. 마치 고조선의 역사와 무관한 상상의 제국에 관한 서사처럼 해석했다.

   이러한 해석은 고조선본풀이가 게세르와 서사구조가 같은 문학작품으로 분석하기 위한 긴요한 전제이다. 만일 고조선본풀이를 하나의 서사시로 보지 않고 단군조선의 건국사로 보게 되면, 게세르와 비교연구할 만한 동질성을 거의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의 네 단락의 분석도 게세르와 같은 신화의 범주로 묶기 위한 것이다. 게세르를 염두하지 않고 고조선본풀이의 서사단락을 분석하거나, 또는 고조선본풀이를 염두하지 않고 게세르신화의 서사단락을 분석하면 서로 친연성을 주장할 만한 서사구조를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위의 고조선본풀이를 분석한 서사단락의 구분은 아래와 같이 게세르와 상당히 일치한다.
                       

 

   이렇게 두 신화를 4부로 나눈 뒤에 같은 틀에 집어넣어서 같은 유형인 것처럼 범주화하였다. 그렇다고 같은 구조의 서사라고 할 수 없다. 서두인 프롤로그만 하더라도 고조선본풀이는 아주 간략한다. ‘하늘세계 신들의 등장’이라고 할 만한 과정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배경인 태초의 우주 모습이나 구조, 그리고 하늘세계의 구성 관한 어떤 내용도 없다.

그런데 󰡔게세르 신화󰡕에서는 마치 창세가로 노래되는 천지개벽본풀이처럼 태초의 우주를 하늘의 세계와 땅의 세계, 지하의 세계로 분별하고 그 가운데 동서남북의 하늘신들 수백 명이 탄생하여 형제와 자손이 번성한 가운데 제각기 자기 직능을 수행하며 서로 조화롭게 살아가는 과정을 장편의 영웅서사시처럼 서술해 가고 있다.

   이를테면, ‘후헤 문헤 텡그리’는 사람들의 머리 위에 푸른 하늘 모습을 한 채 다른 신들의 소원을 들어주었고, 그 아들인 ‘에세게 말라안 텡그리’는 아버지와 다른 신들 사이의 의사소통을 도와주는 중계자 역할을 했으며, 말라안의 장자 ‘에레 유렌’과 그 아우 9명은 지상의 정령과 하늘신들 사이의 소통을 도와주었을 뿐 아니라 지상의 사람들에게 행복과 기쁨을 전해 주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말라안 자손 가운데 ‘만잔 구르메’ 할멈은 하늘세계의 혼인을 주관하고 태어나는 아기들에게 축복을 내리는 일을 담당했다. 따라서 하늘과 지상의 ‘부르한’ 가운데 이 할멈의 도움 없이 세상에 태어난 자는 아무도 없다. 이처럼 여러 신들의 출생과 가계 및 직능이 구체적으로 서술되며 지상의 인간들과 관계도 밝혀진다.

   서쪽 하늘의 텡그리들이 선한 반면에 동쪽 하늘의 텡그리들은 사악하여 지상의 인간들에게 불행을 준다. ‘아타이 울란’ 텡그리가 동쪽 하늘의 우두머리이자 사악한 신들의 조상이며, ‘하라 만잔’ 할망구는 인간 세상에 수 많은 눈물과 한숨을 자아내도록 하는 신이다. 그리고 ‘아타이 울란’의 세 아들은 모두 천리마와 준마를 타고 다녔으며, 막내 ‘하라 하사르’는 특별히 적토마를 타고 다니며 금방이라도 전쟁터에 달려갈 것 같이 행동했다. 그러나 동서 하늘 사이의 한가운데 중재와 화평의 신인 ‘세겐 세브덱’이 자신의 역할을 엄중하게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동서의 하늘 신들 사이에 전쟁이 없었으며 사소한 언쟁조차 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게세르의 서사는 프롤로그 곧 서두 가운데서도 서두를 이루는 극히 일부일 따름이다. 이런 상황에서 ‘만잔 구르메’ 할멈이 중병이 든 이를 신통하게 치유한 소문이 나자, 동서 두 진영에서 제각기 밀사를 ‘만잔 구르메’에게 보내서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이려고 하여, 두 진영의 갈등이 다툼으로 발전하고 마침내 하늘신들 사이에 대전쟁이 일어난다. 그 과정은 사건의 서사적 전개가 인과관계에 따라 묘사되고 인물의 성격과 지리적 배경 등이 자세하고 복잡하게 그려지고 있어, 영웅서사시다운 장엄함을 갖추고 있다.

   그렇지만 고조선본풀이 어디에도 이러한 서사가 보이지 않는다. 하늘신들의 출생과정과 혈연계보, 선악의 관계, 질병과 치유, 술수와 전쟁 등에 얽힌 사건의 서사적 전개 등을 그린 대목이 없다. 따라서 나는 고조선본풀이를 게세르신화와 같은 유형으로 묶어서 넓은 의미의 게세르 분포 지역으로 한반도를 설정하는 차그두로프의 견해는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위에서 서두 부분만 대비해 봐도 이야기의 내용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차그두로프의 견해를 받아들인 양민종도 “두 이야기의 내용이 완전히 일치를 보인다고 말하기도 곤란”하다고 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일치하기는커녕 서사적인 내용을 근거로 볼 때, 완전히 딴판의 이야기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두 자료의 다양한 차이를 더 구체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5. 고조선본풀이와 게세르신화의 서사적 차이  

   두 자료를 같은 문학작품으로 다룬다고 하더라도 갈래가 다르다. 갈래의 차이는 곧 형식과 내용의 차이를 말한다. 고조선본풀이가 건국시조신화에 해당된다면, 게세르는 영웅신화에 해당된다. ‘몽골 <1716 베이징 판본>에서는 게세르가 9개 나라의 지배자가 되었다고 하지만 ‘왕검조선’과 같은 구체적인 국가를 세운 건국시조의 이야기가 아니며, ‘부리야트 판본’에서는 아예 역사적인 국가를 세운 일과 아무런 관련성이 없이 마무리된다. 따라서 고조선본풀이가 건국시조의 행적과 국가의 기원을 서술하여 사료적 성격이 아주 두드러진 반면에, 게세르는 구비전승되는 영웅서사시로서 문학작품의 성격이 훨씬 더 두드러져 있다. 그러므로 고조선본풀이는 사료로서 󰡔삼국유사󰡕에 수록되었으나, 게세르는 문학작품이기 때문에 󰡔몽골비사󰡕나 󰡔원사(元史)󰡕 어디에도 수록되지 않았다. 사료가 아니기 때문에 사서에 수록되지 않은 것이다.
  
내용상으로 볼 때에도 두 가지 큰 차이가 있다. 하나는 적대세력끼리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는 이야기이자 선악의 투쟁으로 전개되는 것인데 비하여, 다른 하나는 적대세력 없이 주인공이 숭고한 뜻을 이루고 다른 세력들이 스스로 찾아와서 하나가 되는 상생적 화합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게세르는 하늘세계에서나 지상세계에서 신들과 전쟁하고 괴물과 전쟁하며 지배자들과 전쟁하는 등 처음부터 끝까지 전쟁의 이야기인데 견주어, 고조선본풀이는 어디에도 그러한 전쟁이 없으며 사소한 다툼조차 없을 뿐 아니라 아예 적대세력이 등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적대세력끼리 갈등이 조성될 일이 없다. 오히려 다른 종족들이 찾아와 합류하여 하나의 세계를 이룰 뿐이다.

   고조선본풀이에서는 처음부터 홍익인간 이념과 재세이화(在世理化)의 통치이념이 제기된다. 실제로 그러한 이념에 맞게 곰과 범이 인간이 되고자 환웅을 찾아왔을 때도 모두 받아들일 뿐 아니라 그들의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가르침과 도움을 주어 재세이화한다. 그런데 환웅의 가르침을 곰은 따르고 범은 따르지 않고 일탈해 버린다. 그렇다고 하여 범을 적대세력으로 간주하여 응징하거나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제각기 자유로운 선택에 맡긴 것이다. 그러므로 게세르에는 술수와 음모, 변신, 마법, 전투와 살육 등이 있으나, 고조선본풀이는 갈등이나 징벌, 투쟁, 음모와 같은 것이 전혀 없다.

   조동일의 서사문학 이론에 따라 자아와 세계의 대결 관계 양상으로 문학의 갈래를 나누어보면 두 작품은 상당히 이질적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고조선본풀이는 자아와 세계가 같은 비중을 가지고 맞서서 화합의 질서를 구현하며 그 화합의 질서는 이미 있었던 사실에 해당한다. 그러나 게세르는 자아와 세계가 상호 우위에서 대결하여 자아의 가능성을 보여주되, 그 가능성은 앞으로 이루어야 할 이상의 세계일 뿐 이루어진 현실이거나 과거의 역사가 아니다. 앞의 자아는 스스로 신성한 존재여서 자아의 의지대로 화합의 질서를 이루지만, 뒤의 자아는 세계와 상호우위여서 승패가 불분명한데 제3의 조력자가 도와주어서 자아의 승리에 이른다. 그러므로 두 작품 모두 영웅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되, 고조선본풀이가 신화적 질서와 역사적 사실이 결합한 건국시조본풀이라면, 게세르는 신화적 질서와 문학적 허구가 결합한 영웅서사시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고조선본풀이는 흥미를 주고받기 위한 작품이 아니고 생산자나 수용자 모두 신화적 질서에 속하고 있는 사실을 확인하는 태초의 역사로서 숭고한 것이기 때문에 작품외적 자아의 자유로운 개입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게세르는 역사적 사실보다 문학적 허구의 상상력이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서 자아와 세계의 대결을 흥미롭게 전개하기 위해 사실적 상황의 묘사나 터무니없는 과장, 숭고한 분위기, 골계적 효과 설정 등을 작품외적 자아가 개입하여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어서 다양한 이본들이 풍부하게 전승될 수 있다. 그러므로 두 작품은 시대적 층차 이상으로서 사료적 신화와 문학적 신화의 갈래 차이를 지니고 있다.

   서사구조의 전개에 따른 가장 큰 차이는 주인공의 교체여부이다. 고조선본풀이는 3대기(三代記)로 이루어져 있다. 하늘에서 주체는 환인, 지상으로 내려와 신시고국을 다스리는 주체는 환웅, 그리고 조선을 건국하여 1천 5백 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는 주체는 단군이다. 세계에 따른 주체가 3대기에 따라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다. 따라서 고조선본풀이를 두고 ‘단군신화’라고 일컫는 것은 명백히 잘못되었다. 서사적인 내용과 맞지 않을뿐더러 어떤 사료에도 이러한 명명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단군신화라고 일컬으면, 환웅의 신시고국과 왕검조선의 역사를 가리는 역기능을 할 뿐 아니라, 홍익인간 이념이나 재세이화의 통치방식까지 모두 단군의 행적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게세르신화에서는 수백 명의 신들이 등장하고 구체적인 이름으로 명명된 신들과 인간들이 수 십 명에 이르지만, 그 주체는 항상 게세르라는 한 영웅이 중심이 된다는 사실이다. 하늘에서 동서 신들이 싸운 결과 패퇴한 동쪽하늘의 우두머리 ‘아타이 울란’은 사지가 잘려서 지상으로 떨어졌으나 세상사람들을 괴롭히는 마법사로 환생하여 기근과 질병의 고통에 빠지도록 한다. 하늘에서 지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게세르’가 인간의 아기로 태어나 지상에 출현한다. 천신이자 인세의 주인공인 게세르는 이 사명을 이루고 지상세계에서 머물러 사는 데서 마무리된다. 환인, 환웅, 단군으로 주인공이 계속 교체되며 단군이 일정하게 인간세상을 다스리다가 아사달로 들어가 산신이 되는 것과 퍽 대조적이다.

   고조선본풀이도 이와 같으려면 환웅천왕이 신시에서 홍익인간의 이념을 이루고 재세이화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데서 마무리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야기는 더 발전되어 곰과 범이 등장하고 곰은 여인으로 변신하여 환웅의 아들 단군을 낳는다. 인간 단군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우는 건국시조가 된다. 주인공의 성격도 ‘천신 환인’, ‘천신강림의 환웅’, ‘인간 단군’, ‘산신 단군’ 등으로 바뀌어 천신강림의 게세르로 일관되는 서사구조와 크게 다르다. 아래 두 게세르 판본의 줄거리를 보면, 고조선본풀이와 얼마나 다른가 하는 사실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표 2. 몽골과 부리야트 판본의 비교>

몽골<1716 베이징 판본>

1) 하늘 세계의 최고신 - 영원한 푸른 하늘, shakiamuni, Khormusta
2) 석가모니가 하늘 신 호르무스타를 질책(인간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였다.)
3) 석가모니가 하늘 신 Khormusta를 책망하며 아들 가운데 1명을 지상으로 보내도록 명령한다.
4) 게세르의 지상에서의 재탄생 : 3형제와 3자매가 70세-60세 노부부 Ova Gunchid- Gegshe Amurchil 사이에서 탄생
5) 게세르(Serbi Donrub)는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사명을 알고 있다.
6) 탄생 후 적들을 상대하는 모습은 일치
7) 3명의 부인과 결혼한다. (Rogmo Goa, Adzhu Mergen, Aralgo Goa)
8) 사악한 라마가 납치해간 부인 Adzhu Mergen을 구출
9) 괴물 Galdulme khan과의 전쟁이 없다.
10) 바다괴물 Lobsogoj와의 전쟁이 없다.
11) Soton(혹은, Tsoton)의 모티프가 상세하게 묘사
12) Sharajd(Sharaj-Gol)의 지배자들과의 전쟁이 가장 중요한 모티프(Ling Geser 판본의 경우에는 Sharaj-Gol 지배자들과의 전쟁이 텍스트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다.)
13) Galdulme khan과의 전쟁이 없다. (Zein 판본의 경우 제 15장까지는 1716 베이징 판본과 동일하지만, 제 16장에서 갈둘메 한의 이름이 언급된다.)
14) 9개 나라의 지배자가 된다.(역사적인 시간과 공간이 드러난다.)

부리야트판본<Imegenov, Petrov 판본>

1) 영원한 푸른 하늘 실질적인 최고의 하늘 신 - Khirmas
2) 하늘에서의 신들의 전쟁과 그 결과로 인간세상에서의 혼란이 발생(페트로프 판본의 경우 하늘신들 사이의 전쟁이 드라마처럼 상세하게 묘사)
3) 히르마스가 자신의 아들 가운데 1명을 지상으로 보낸다.(석가모니의 언급이 없다)
4) 게세르만 지상에서 재탄생하며 형제들의 재탄생이 언급되는 판본이 없다. 페트로프 판본에는 부모의 이름이 있지만, 이메게노프 판본에는 부모의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다.
5) 게세르(뉴르가이-페트로프 판본)는 일정한 나이가 될 때까지 자신의 지상에서의 사명을 알지 못한다.
6) 탄생후 적들을 상대하는 모습은 일치
7) 3명의 부인과 결혼(페트로프), 2명의 부인만 언급(이메게노프)
8) 부인을 구하는 테마(페트로프, 이메게노프)
9) 괴물 Galdulme khan과의 전쟁은 중요한 모티프
10) 바다괴물 Lobsogoj와의 전쟁은 중요한 모티프
11) Soton의 묘사가 완전한 에피소드로 독립해서 존재
12) Sharablin(Sharajd)의 3인의 지배자들과의 전쟁이 상세하게 묘사(샤라블린의 지배자들은 아타이 울란 텡그리의 세 아들들이 지상으로 던져져 변신한 것으로 묘사)
13) Galdulme khan과의 재전투가 묘사(갈둘메와의 전투가 핵심적인 모티프이다.)
14) 구체적인 왕국이 등장하지 않는다.(신화의 시간과 공간이 드러난다.)

 양민종은 두 게세르 판본을 <표 2>와 같이 비교한 다음에, 몽골판본에는 역사의 영역으로 불교적 세계관이 드러나고 게세르가 인간 지배자들과 투쟁하는데 반해, 브리야트판본에는 신화의 영역으로 샤머니즘 세계관이 드러나며 게세르가 사악한 신이 변신한 괴물과 투쟁한다고 대조적으로 해석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몽골판본보다 브리야트판본이 더 고본이라는 해석이다. 그 결과 ‘티베트→몽골→브리야트’와 같은 전파론적 해석의 고정관념을 해체한다. 이러한 해석은 상당히 적절하며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고조선본풀이를 같은 서사구조의 문학작품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재고되어야 한다. 우선 게세르의 두 판본을 비교하기 위해 단락을 나누어 놓은 위 <표 2>를 보면, 앞의 <표 1>에서 게세르신화를 4단락으로 나누어 놓은 것이 얼마나 추상화되어 있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달리 말하면, 고조선본풀이를 <표 1>과같이 게세르에 맞추어 4단락으로 나누는 일은 가능 하지만, <표 2>의 두 판본처럼 14개 단락으로 나누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전혀 내용이 다른 자료를 추상화하여 마치 같은 작품인 것처럼 견주어 논의하고 작품의 선후관계를 논하는 것은 무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갈래상 사료에 해당되는 고조선본풀이를 게세르와 같은 장편 영웅서사시로 묶어서 다루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고조선본풀이는 󰡔위서󰡕와 󰡔고기󰡕 등 전거를 밝히고 내용을 고스란히 인용했을 뿐 아니라, 저자가 사료로서 문제가 있는 대목은 협주로 의견을 밝혀두었기 때문에, 누가 보더라도 허구적인 작품으로서 문학이 아니라 사실의 근거를 따지며 고증 작업을 거친 사료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게세르는 이미 세계문학사에서 영웅서사시로 인정되고 있을 뿐 아니라 구체적인 묘사도 문학작품으로서 형상성을 잘 갖추고 있어, 누구도 사료로 해석하지 않는다. 그 장면묘사부터 문학적이다.

   신들이 사는 푸른 하늘이 걸려 있는 곳의 조금 아래쪽에, 그리고 바람이 불면 날아갈 듯 듬성듬성 떠 있는 구름 떼가 걸려 있는 곳의 조금 위쪽에, 엘리스테산 봉우리가 불쑥 솟아 있었다. 엘리스테산의 정상은 산자락 저 아래에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자보로느크 지역에까지 밝은 빛을 던지며 장엄하게 하늘로 솟구쳐 있었다.

   신과 인간이 만나는 신성한 엘리스테산을 묘사한 대목이다. 환웅이 태백산 신단수 아래 하강했다는 단순한 사실의 서술과 달리, 게세르의 주인공이 하강하게 될 지상의 산은 이처럼 아름답고 다양한 은유로 입체적 회화 기법을 발휘하여 시각적으로 웅장하게 묘사하고 있다. 현대 서사문학의 형상화 수준을 능가하는 묘사적 표현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영웅서사시인 게세르의 문학성에 따라 고조선본풀이도 문학작품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은 자료의 갈래 인식에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게세르신화의 범주에 고조선본풀이를 귀속시킨 러시아학자의 무리한 논리에 좇아간 한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연히 고조선본풀이를 게세르신화의 넓은 범주로 묶는 것도 자의적이다. 세 가지 조건에서 고조선본풀이는 게세르의 범주에 귀속될 수 없다. 하나는 주인공 게세르가 등장하지 않고, 둘은 이야기의 줄거리가 전혀 유사하지 않으며, 셋은 고조선본풀이가 게세르신화보다 시대적으로 훨씬 앞서는 까닭이다. 넓은 의미라고 하는 것은 첫째, 둘째 조건을 갖추지 않아도 좋다고 여긴다. 따라서 셋째 조건만을 고려한다면 거꾸로 게세르신화를 고조선본풀이의 범주로 묶어야 한다. 왜냐하면 단군본풀이가 게세르보다 여러 모로 앞선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작품을 같은 유형으로 범주화할 만한 연관성보다 오히려 서로 다른 유형으로 인정해야 할 만한 차이가 더 두드러진다.

   4. 천신의 강림 목적과 천지부모 인식의 차이

   고조선본풀이에서 환웅은 스스로 품고 있던 홍익인간의 뜻을 펼치기 위해 자력적으로 지상에 강림한다. 그러나 게세르는 그러한 이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 게세르가 지상에 온 것은 두 가지 목적이다. 하나는 동쪽 하늘신들이 어둠의 힘을 회복하기 전에 절멸시켜야 하는 것이며, 둘은 인간들을 괴롭히는 마법사들을 모두 물리치고 평화를 이룩하여, 상중하 세계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 ‘아바이 게세르’의 지상 과제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스스로 그 뜻을 펼치려 한 것이 아니라, 타력적 명령에 의한 것이다.

   고조선본풀이의 환웅이 자력적 강림이라면 게세르신화의 게세르는 타력적 강림이다.  게세르 최초의 판본인 ‘몽골 <1716 베이징 판본>’ 서두를 보면, 석가모니가 인간세상의 혼란에 무관심한 하늘신 ‘호르쿠스타’을 질책하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들 한 명을 지상으로 파견하도록 지시한다. 석가모니의 질책에 따라 지상의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타력적으로 인간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게세르이다.

    너의 아들 가운데 한 명을 왕국으로 보내라. 강한 자들이 약한 자들을 먹어치우고 사나운 짐승들이 서로서로 대항해서 일어나 전쟁을 벌이며, 서로 잡아먹을 것이다. 세 아들 가운데 너가 보내는 아들이 왕이 될 것이니, 그가 온 세상의 주인이 될 것이다.

   인간세상의 혼란은 두 가지이다. 약육강식의 먹이사슬과 맹수들의 전쟁이다. 사람들의 문화보다 강자가 군림하는 자연생태계 또는 짐승들이 서로 잡아먹는 상황이 문제이다. 강자 중심의 먹이사슬 구조와 짐승들끼리 서로 먹고 먹히는 상황을 전쟁으로 인식한 것이다. 짐승의 전쟁을 세상의 혼란으로 판단한 것이야말로 유목민들의 현실인식이자 세계관이다. 따라서 왕국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짐승의 세계’ 또는 ‘자연생태계의 문제’를 지상의 혼란으로 인식한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물러서서 보면, 하늘의 신들도 무능하게 보인다. 때로는 천상세계와 지상세계보다 더 문제가 있기도 하다. 왜냐하면 자기들끼리 두 패로 나뉘어져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다투며 싸우는 까닭이다. 따라서 ‘몽골 게세르’에서는 하늘신들이 석가모니의 질타를 받고 비로소 인간세상의 문제를 알아차릴 뿐 아니라, 석가모니의 명령에 따라서 하는 수 없이 아들 1명을 지상으로 보내는 것이다. 천신들은 주체적 세계인식 능력이 없으며 세계에 대한 행위도 타력적이다. 그러므로 게세르신화의 천신들은, 세계를 능동적으로 인식하고 주체적으로 판단하여 활동하는 환인 또는 환웅의 존재와 아주 대조적이다.

   더군다나 ‘부리야트 게세르’에서는 천신들이 더 문제이다. 자기들끼리 동서로 갈려서 음모하며 전쟁을 벌인다. 그 결과 인간세상에서도 혼란이 일어난다. 하늘세계야말로 인간세계 혼란의 근원이거나 또는 투쟁의 인간세상과 동질적 세계라는 것다. 더 문제는 인간세상이 천상세계에 종속되어 있거나 부속물로 간주되고 있다는 인식이다. 하늘의 전쟁이 곧 지상의 혼란일 뿐 아니라, 인간세상이 악신들의 도피처로 이용되며, 그들의 욕망을 이루는 수단으로 인식된다는 점에서 인간세상을 예속화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지상으로 도피한 사악한 신들은 “서쪽 하늘 진영의 신과 연결된 인간세계의 고리를 하루 속히 자르고 싶어 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이 지상을 완전히 장악하고 서쪽 하늘 진영의 신과 대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상의 비극은 천상의 전쟁을 대신해서 치른다는 데 있다. 천상의 대리전보다 더 심각한 사실은 하늘과 무관하게 지상에서 전쟁이 일어났더라도 사람들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하늘에서 신이 파견되지 않으면 지상의 혼란은 해결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늘에서 게세르가 지상으로 파견되는 것이다. 

   그러나 고조선본풀이에서는 천신들이 인간세상을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이상세계로 여기며 동경까지 한다. 천신인 환웅이 “늘 천하(天下)에 뜻을 두고 인간세상을 탐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아차린 아버지 환인은 아들 환웅의 뜻을 헤아려서 “삼위태백(三危太伯)을 내려다보니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한 곳이므로,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고 가서 그곳을 다스리도록 하였다.” 이 내용으로 볼 때, 환웅이 자원해서 지상으로 내려 온 것은 인간세상에 전쟁이나 질병, 기아와 같은 문제가 있어서 이 문제들을 바로잡고 해결하기 위한 사명 때문이 아니라, 평소부터 인간세상을 동경해 왔던 까닭이다. 다시 말하면 환웅이 자기 뜻을 펼치고 싶은 이상 공간이 바로 인간세상이었다. 그러므로 환인은 인간세상에 더 크게 이익을 줄 만한 지역을 골라서 환웅이 다스리도록 한 것이다.

   게세르에서는 ‘만잔 구르메 할멈’이 ‘위대한 운명의 책’에 따라 하늘신 ‘한 히르마스’에게 인간세상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하늘신을 서둘러 보내라고 독려한다. 그러나 ‘한 히르마스’ 아들 3형제 모두 아버지의 말을 거역한다. 거역하는 이유는 아들마다 다르다. 맏아들은 “비루한 존재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상에서 그들과 함께 살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고 했다. 천신들이 인간세상을 얼마나 시원찮게 여기는가 하는 사실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둘째는 “지상의 인간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하고, 막내는 아버지의 부탁에 대해 “부정적인 것에서 한 술 더 떠 이 모든 재앙의 원인을 아비에게 돌리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부득이 둘째를 설득해서 지상에 파견하려 하지만, 둘째는 아버지에게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면 지상으로 가겠다고 하여, 아버지가 아끼는 여러 말들과 지팡이를 달라고 한다.

   고조선본풀이의 환인부자와 전혀 다른 관계로 지상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아버지의 부탁에도 3형제 모두 거절하다가 마지못해 둘째가 여러 가지 소원을 요구한 뒤에 비로소 지상으로 내려오는 것과 반대로, 아들 환웅이 먼저 인간세상을 동경하고 그에 따라 아버지 환인이 지상으로 내려가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이처럼 고조선본풀이에서는 천신 부자의 자력적 인간세상 인식과 아들 중심의 능동적 의지에 따라 사건이 전개될 뿐 아니라, 인간세상을 비루한 곳으로 부정하게 여기기는커녕 오히려 이상세계로 동경하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지상의 인간세상을 위한 목표도 ‘홍익인간’ 이념으로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이상적인 지역을 찾아 더 훌륭하게 도움을 주려는 것이 환웅의 지상강림 의지이자 목표이다. 실제로 환웅천왕은 이러한 뜻에 따라 지상에서 ‘주곡, 주명, 주병, 주형, 주선악 등을 주관하여 인간세상의 360여 가지 일을 재세이화’한다. 따라서 이웃나라에 살고 있던 곰족과 범족까지 환웅천왕을 찾아와서 인간답게 살도록 도와달라고 비는 것이다.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하늘의 천신은 물론 동굴 속에 사는 지하의 곰과 범 등 짐승들까지 인간세상을 동경하여 더불어 살고자 한 것이다. 그 결과 곰은 마늘과 쑥 등 채식생활을 하며 동굴 속에서 3칠일 동안 칩거하는 정착생활에 적응함으로써 인간세상에 동화된다. 그러므로 고조선본풀이는 ‘홍익인간’이라는 인본주의적 공생세계를 이상으로 하며, 채식생활과 정착생활 중심의 농경문화 세계관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환웅은 자의적으로 지상으로 내려오는 천신의 존재이지만 단군왕검은 환웅천왕과 곰네 사이에서 인간으로 태어난다. 부계는 천신이고 모계는 굴 속에 기거하는 지상적 존재이다. 따라서 단군의 출생을 두고 흔히 ‘천부지모’ 사상을 지녔다고 한다. 그러나 게세르는 환웅처럼 천신인 채 지상으로 하강하지 않는다. 예수나 단군처럼 어머니로부터 인간의 아기로 태어난다. 따라서 게세르는 아버지에게 ‘나란 고혼’을 어머니로 점지해 달라고 소원한다.   
  
   “마지막 소원입니다. 아버님, 나란 고혼 처녀를 인간 세계에서 저의 어머니로 주십시오! 제가 인간으로 환생할 때 지상에서의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인간이라 해도, 지상에서의 어머니만큼은 하늘세계의 밝은 여신인 나란 고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소원처럼 게세르는 하늘에서 하강한 ‘나란 고혼’을 어머니로 하고, 가난하고 불구인 인간 ‘센겔렌’을 아버지로 해서 인간의 아기로 태어난다. 아버지 센겔렌이 얼마나 미천한 존재인가 하는 것은 다음 내용에서 잘 나타난다. 마을의 연장자인 ‘사르갈 노욘’이 고혼 처녀를 신랑의 수준에 맞게 의도적으로 불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대목이다.

   무릇 신랑과 신부는 외모와 출신이 비슷해야 하는 법입니다. (일부 줄임) 이 처녀의 한쪽 팔을 비틀어야 하고, 눈 한쪽을 파내야 하며, 다리 한쪽을 분질러야 합니다. 그래야만 부부로서 합당하며 이웃의 시샘도 불러일으키지 않고 우리 투게쉰 마을에 평화가 찾아올 것입니다.

   그리고는 사람을 시켜 고혼처녀의 팔을 비틀고 눈 하나를 뽑고 다리 한쪽을 분지른 다음 혼례식도 올리지 않은 채 센겔렌에게 시집을 보내고 두 사람을 외딴 곳의 오두막에서 살도록 했다. 게세르의 아버지가 얼마나 미천한 인간인가 하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거울효과 방식으로 그 어머니 고혼을 심각한 불구자로 만드는 상황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부모의 계보가 아주 대조적이다. 게세르는 고조선본풀이의 ‘천부지모(天夫地母)’ 사상과 정반대로, ‘천모지부(天母地夫)’ 사상에 근거하여 태어나기 때문이다.

   천부지모 사상이 농경문화의 인식이라면 ‘천모지부’ 사상은 상대적으로 유목문화의 인식이라 할 수 있다. 유목인들이 여성주의 관념 때문이 아니라 짐승의 번성을 고려한 까닭이 아닌가 한다. 유목하는 가축의 번성은 암컷의 출산력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컷은 소수여도 되지만 암컷은 여러 마리여야 한다. 한 숫컷이 여러 암컷을 잉태시킬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컷:암컷은 1:다수를 이루는 것이 바람직하다. 실제로 주인공 게세르는 2명 또는 3명의 부인과 중복 혼인을 한다. 게세르뿐만 아니라 그의 삼촌인 ‘하라 소톤’도 중혼을 하려고 하는데, 그 신부를 게세르가 차지하므로 좌절된다. 그러므로 게세르에서 영웅들은 중혼을 이상으로 여기며 여러 아내를 거느리는 것이다. 

   그러나 고조선본풀이를 비롯하여 한국의 어떤 건국시조도 게세르처럼 3부인과 혼인하지 않는다. 혼인과정이 드러나지 않거나, 드러나는 경우에도 늘 1부다처의 중혼이 아니라 1부1처의 단일혼이다. 뿐만 아니라 어떤 시조왕도 ‘천모지부’의 논리 속에서 탄생하는 사례가 없다. 모두 ‘천부지모’의 논리 속에 출현한다. 농경문화의 천부지모 사상은 대지의 생산력을 상징하는 ‘지모신’ 관념과 연관되어 있다. 농작물을 생산하는 땅은 ‘지모신’으로서 변함이 없지만, 땅의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계절은 일년생산신으로서 생멸을 거듭한다. 봄에 와서 여름과 가을 동안 머물다가 겨울에는 사라진다.

   천부(天父)는 시간 개념으로서 보면 계절에 해당되지만 공간 개념으로 보면 ‘해’를 뜻한다. ‘해[日]’의 운행에 따라 계절이 결정되고 계절이 한 번 바뀌는 것이 한 ‘해[年]’이다. 따라서 천체의 태양을 뜻하는 ‘해’와 역법의 일 년을 뜻하는 ‘해’가 같은 말인데, 이렇게 천체와 역법의 해를 같은 말로 쓰는 민족은 한민족뿐이 아닌가 한다. 혁거세가 태어난 자줏빛 알이나 주몽이 태어난 닷되들이 알, 석탈해가 태어난 큰 알 등은 모두 해를 상징하는 밝은 알이다. 가야의 시조는 아예 해를 닮은 황금알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이처럼 해를 상징하는 인물이 바로 건국시조이며, 하늘의 해야말로 빛으로 지상에 하강하여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고 온누리를 밝히는 존재로서 홍익인간 사상을 구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고조선의 환인, 환웅, 단군은 물론 부여의 해모수, 해부루, 고구려의 동명, 유리, 신라의 혁거세 등은 모두 해를 상징하는 밝은 빛을 뜻하며 태양시조 사상을 갈무리하고 있다. 천부사상과 태양시조 사상, 지모신 사상의 원천이 고조선본풀이에 갈무리되어 있으며 그것은 부여와 고구려를 거쳐 신라가야의 시조로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환웅의 ‘홍익인간’ 이념 또한 부여와 고구려를 거쳐서 신라 박혁거세로까지 이어진다. 혁거세의 다른 이름인 ‘불구내(弗矩內, 밝은해)’는 곧 온 누리를 밝히는 ‘혁거세 사상’을 뜻한다. 홍익인간 이념을 더 구체화한 것이 혁거세 사상이다. 그러므로 고조선본풀이는 한갓 단군조선의 건국시조를 서술하는 데 머물지 않고 배달민족의 세계관과 홍익인간의 이념, 그리고 태양숭배의 문화적 유전자를 갈무리한 채 삼국시대까지 그 민족사상이 지속되었던 것이다.  
  
    6. ‘농경·유목문화 비교모형’과 두 신화의 이질성 인식

   고조선본풀이와 게세르신화를 지금처럼 비교하여 같고 다른 점을 포착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되돌아봐야 한다. 비교검토의 준거와 체계가 수립되어 있지 않은 채 그때마다 여러 기준에 따라 요소별로 비교하는 것은 생산적 해석에 이르기 어렵기 때문이다. 채록시기의 선후에 따라 고조선본풀이가 게세르보다 더 앞선 작품이라거나, 또는 게세르 판본들에 나타난 종교적 차이에 따라 고본 여부를 결정하는 수준에서 만족할 수 없다. 이미 앞에서 생태계와 관련하여 생업과 세계관의 차이가 농경문화와 유교문화로 대비되어 분석된 것처럼, 전통적인 비교방법에서 나아가 신비교주의(new comparativism) 방법이 요청되고 있다.

   신비교주의는 사회적 상황의 구조를 고려하지 않은 탈맥락적 해석을 극복하고, 연구대상이 놓여 있는 세계의 포괄적인 상황을 포착하는 거시적 비교와,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문화현상의 미시적인 비교를 상호관련 속에서 하도록 촉구한다. 따라서 페이든(William E. Paden)은 신비교주의 비교분석은 거시 주제적(macro-thematic) 모형과 미시 주제적(micro-thematic) 모형 사이에 하나의 스펙트럼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아무도 거시 주제적 모형 설정에 관심이 없다. 단편적 현상의 동질성을 찾아 북방문화 기원론이나 유목문화 전래설을 펴기 일쑤였다.   

   한국과 몽골 또는 시베리아의 문화가 비교되는 경우에, 초원지역 유목문화와 삼림지역 농경문화라고 하는 생태학적 거시적 주제 모형을 맥락적으로 고려하면, 탈맥락적 비교에 따른 부분적 형태의 유사성이나 원자론적 동질성을 근거로 민족문화의 원형을 추론한 성급한 주장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오히려 상고시대의 역사를 제대로 파고들면 그러한 문화의 원형은 ‘고조선문명권’이나 ‘발해연안문명권’이라는 사실이 포착될 수도 있다.

   종속적 전래설이나 자문화 중심주의에 빠지지 않으려면, 일정한 분석모형을 설정하고 거기에 따른 해석이 필요하다. 비교 지역이나 민족, 국가에 따라 비교분석모형이 서로 달라야 하겠지만, 적어도 몽골이나 시베리아와 같은 특수한 자연환경인 경우에는 생태학적 모형이 설득력을 지닌다. 몽골은 중국과 길게 국경을 맞대고 있을 정도로 인접해 있어도 생태계가 다르기 때문에 중국문화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티베트문화를 받아들여 라마교가 주류문화를 이루었다. 중국 또한 몽골과 인접해 있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몽골의 지배를 받았지만 몽골문화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오히려 인도문화의 영향을 받아 불교문화를 꽃피었다. 서로 생태문화가 다르면 인접해 있거나 지배관계에 있어도 문화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지리적 인접성보다 생태학적 인접성이 문화교류에 더 긴요한 구실을 한다. 한국과 몽골의 관계도 상고시대에 같은 생태계 속에 생활하는 동안에 문화를 서로 공유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고대 이후 민족이동으로 생태계가 다르고 농경문화와 유목문화로 생업양식이 분화되면서 문화의 전파나 영향은 거의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따라서 비교연구를 위한 거시적 모형으로서 생태학적 생업양식에 따른 분석 틀을 ‘농경·유목문화 비교모형’으로 설정해서 주목해 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북방민족의 유목문화에서 비롯된 문화현상이라고 성급하게 전래설을 폈던 ‘샤머니즘과 굿’은 물론, ‘어워와 서낭당’, ‘무관과 금관’은 그 전래 및 영향관계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한국의 주생활과 식생활 양식 등 미시적 문화 현상들까지 유목문화 영향과 무관하게 농경문화로서 독창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포착된다.

   그 결과, 북방의 초원지역 문화는 이동생활과 유목문화의 체계에 맞게 이루어져 있고, 한국문화는 정착생활과 농경문화의 체계에 맞게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므로  문화의 우열이나 선후문제와 상관없이 생태학적 맥락이 문화 양식을 결정하는 중요변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분석모형을 두고 두 문화를 비교해 보면 종래의 전파주의적 고정관념에서 해방될 수 있다.

   그 동안 한국의 굿은 샤머니즘 기원설에서 해방되지 못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보면 굿문화와 샤머니즘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기유모즈(Alexander Guillemoz)가 잘 지적한 것처럼, “무당은 샤먼과는 반대로 신을 찾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신을 받아들이고 맞아들이는 것이다. 즉 내려오는 것은 신들인 것”이라고 하여 굿을 샤머니즘과 다르다는 것을 밝혔다. 그러나 그 자체로 이질성을 강조해서 밝혔을 뿐 그 원인을 알지 못한 까닭에 거시적 비교모형을 추론하지 못했다.

   그러나 농경-정착, 유목-이동 생활양식을 고려하면, 유목문화의 샤머니즘은 신을 찾아서 이계(異界)로 여행을 하고, 농경문화의 굿은 신을 모셔와서 굿판에 좌정시키는 신맞이를 하는 것이 기본구조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풀밭을 찾아 이동하는 유목문화의 샤먼은 이계의 신을 찾아 굿판을 떠나고, 정착하여 농사를 짓는 농경문화의 무당은 이계의 신을 굿판으로 불러들여 굿을 하는 것이다. 이 밖에도 샤머니즘과 굿문화는 공통점보다 상이점이 다양하게 두드러진다. 왜냐하면 굿문화와 샤머니즘은 농경문화와 유목문화의 맥락 속에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생활과 식생활 관련 문화의 차이도 ‘농경·유목문화 비교모형’으로 해명이 되므로, 거시적 모형 속에서 미시적 모형들이 스펙트럼을 구성하게 된다. 그러므로 고조선본풀이와 게세르신화의 비교도 이러한 거시적 모형을 바탕으로 미시적 주제로서 비교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유목민족의 영웅서사시인 게세르에서는 등장인물의 은유와 문제적 상황이 유목민들의 생활세계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기근의 상황을 나타낼 때에도 짐승이 고통받는 상황을 먼저 이야기하고 하늘의 천신이 짐승의 형상으로 지상에 내려올 뿐 아니라, 아기 게세르가 태어나서 제일 처음 한 행적도 거대한 쥐와 벌, 모기 등 짐승의 형체를 현재처럼 만드는 일부터 차례로 한다. 민족이나 국가의 기원 또는 농경의 기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짐승의 기원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한결같이 유목민들의 세계관을 반영하는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지상세계에 극심한 가뭄이 찾아왔다. 모든 나무들의 가지가 바싹 말라붙어 시들어갔고, 초원을 가득 채웠던 영원히 푸른 풀들은 본색을 잃고 누렇게 변했다. (일부 줄임) 아무리 많은 가축과 금은보화를 준다고 해도 깨끗한 물 한 그릇 구하기가 하늘에 있는 별을 따기보다 어려웠다. (한쪽 줄임) 지상에서는 매일 수천 마리의 말들이 기근으로 죽어갔으며, 하룻밤이 지날 때마다 수천 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목이 말라 죽어갔다.

   지상의 문제 상황이 극심한 가뭄이다. 그 가뭄과 기근을 묘사한 내용이 초원의 상황이다. 초원이 누렇게 시들어가고 다음에는 수천 마리의 말들이 죽어가며, 마지막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간다. 유목문화에서 가장 큰 자원은 초원의 풀밭이고, 다음에는 풀을 먹고 자라는 가축이며, 마지막으로 가축으로 먹고 살아가는 인간이다. 풀밭→가축→사람으로 이어지는 과정의 묘사는 유목문화의 생태학적 현실을 객관적으로 잘 드러내고 있다. 더군다나 물 한 그릇을 구하는데 ‘가축과 금은보화’를 주어도 구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금은보화보다 가축을 앞세웠다. 유목민들에게는 금은보화 못지않게 가축이 귀한 재화였기 때문이다.

   천신의 하강도 짐승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게세르의 어머니 ‘나란 고혼’은 “회색빛이 감도는 얼룩무늬를 가진 종달새”의 모습으로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온다. 그 몸집도 대단히 커서 사람들이 밀어도 끄떡하지 않고 화살로 찔러 보아도 전혀 놀라지 않고 아름다운 노래만 불렀다. 활을 쏘아 화살이 머리 위로 아슬아슬하게 날아가며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자 비로소 깜짝 놀란 나란 고혼은 종달새의 껍질을 벗고 아름다운 미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천녀(天女)가 지상에서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고 종달새와 같은 날짐승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은 유목민들의 발상이라 할 수 있다.

   나란 고혼이 혼인한 지 열달 만에 “몸속의 모든 뼈가 다 으스러지는 통증을 느끼고 머리카락이 다 뽑히는 듯한 아픔을 겪으면서 위대한 우리의 미래, 순수한 하늘신의 자손, 용맹한 인간 세계의 전사” 게세르가 태어난다. 이렇게 태어난 아기 게세르의 제일 첫 행적이 거대한 쥐를 현재와 같이 작게 만드는 일이다. 게세르가 황소만한 큰 쥐를 말총으로 만든 올가미로 잡아서 가죽 채찍으로 내리치자, 그 때마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 “조그맣고 볼품없는 생쥐의 모습”이 되었다는 것이다. 아기 게세르는 그러고 나서 “이제야 태어나서 처음으로 지상의 적을 제압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날 같은 방법으로 말의 머리통만한 큰 말벌을, 또 말보다 더 큰 모기를 지금과 같이 작은 말벌과 모기로 만드는 일을 차례로 한다.인간세계가 아니라 동물세계의 질서를 바로잡는 것이다. 그러나 고조선본풀이에는 가축이나 날짐승 등이 등장하지도 않고 문제되지도 않는다.  환웅이 인간세상을 다스리는 행적은 주곡, 주명, 주병, 주형, 주선악 등에서 드러난 것처럼 한결같이 주곡(主穀) 곧 농경을 가장 으뜸으로 삼고, 이어서 인간의 수명과 질병 및 윤리 문제를 다루는 사실과 견주어 보면, 게세르의 행적과 퍽 대조적이다.

   게세르는 말총과 가죽채찍으로 적을 다스릴 뿐만 아니라, 검은 말을 타거나 노란 말을 타는 등 끊임없이 말을 타고 이동하면서 악령이나 괴물을 퇴치한다. 그리고 ‘사르갈 노욘’이 타고 있던 황소의 등에 떨어져서 쓰러지자, 게세르는 그 원인을 농작물을 경작한 탓으로 돌리며 정착민들에게 불호령을 내린다.

   만일 너희들이 이곳에서 땅을 파고 곡식을 기르지 않았더라면 저기 날아가는 새가 어찌 어두컴컴한 숲 속에 몸을 사리고 숨어 있었겠느냐! 만일 새가 화들짝 놀라서 숲에서 나오지 않았더라면 우리 황소가 이렇게 놀라 자빠졌겠느냐! 그리고 우리 황소가 놀라서 자빠지지만 않았더라면 나의 아버지가 이렇게 무참하게 죽어 넘어져 있겠느냐! 오늘의 비극적인 사고는 모두 다 너희들의 잘못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 꾸짖자 농사를 짓던 정착민들은 자리에 납작 엎드렸으며 비단으로 만든 망자의 옷을 준비하여 사르갈 노욘의 몸에 입혔다고 한다. 정착 농경인이 구체적으로 부정되면서 상대적으로 이동 유목문화가 긍정되는 대목이다. 유목문화답게 모든 재능이나 재물도 가축과 연관되어 있다.

   게세르가 미인 ‘야르갈란’을 아내로 맞이할 때에도, 장인으로부터 양 한 마리의 고기를 수백 명에게 나누어주는 검증을 받는다. ‘하라 소톤’은 불평등하게 나누어서 배제되고 게세르는 고기를 잘게 썰어 골고루 나누어 줌으로써 장인의 찬사를 받으며 미인 아내를 얻는다. 둘째 부인을 얻을 때는 장인의 딸들을 살려준 댓가로 셋째딸을 아내로 얻는 것은 물론, 장인의 재산인 가축과 말 떼의 절반을 받는다. 곡물이나 토지는 재산에서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인간적 역량과 식생활, 재산, 분배 등이 모두 육식생활이나 가축사육과 연관된 것으로서 유목민의 생활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게세르가 영웅으로 성장하여 적대자들과 전투하는 상황도 유목민의 성격이 두드러진다. 게세르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고 가장 결정적으로 사용하는 강력한 무기가 채찍이다. 채찍은 말을 부리고 가축을 몰아가는 도구일 뿐 전쟁무기라 하기 어렵다. 그러나 유목민들에게 채찍은 긴요한 무기로 이용된다. 농경민에게 호미가 낫처럼 무기 구실을 하듯이 채찍도 무기 구실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게세르가 공격을 받아 죽을 고비를 겪는 경우에도 채찍에 맞았기 때문이며 그 적을 응징하는 경우에도 채찍으로 때려서 물리친다.

   “그자는 내게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괴로움을 주었소. 채찍으로 내 몸의 살점을 뜯어내어 등뼈가 훤히 드러났을 뿐만 아니라, 창으로 내 옆구리를 찔러 오장과 육부가 다 절단이 나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물 한 모금조차 마실 수가 없었다오.”

   아바이 게세르는 채찍을 들고 로브소고이의 등짝을 후려갈겼다. 피가 튀고 살점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기절한 듯이 등을 땅에 대고 넘어진 로브소고이의 가슴 위로 가차 없는 채찍이 날아들었다. 심장은 터져 몸 밖으로 날아가고 살점은 푹 패여 로브소고이의 가슴은 물에 적신 종이처럼 흐물흐물거렸다.

   이어지는 두 장면이 모두 채찍으로 적대자에게 공격을 당하거나 공격을 하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채찍에 맞아서 피가 튀고 살점이 흩어지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게세르가 결말의 전투에 최종 승리를 안겨주는 신이한 무기 구실을 하는 것도 버드나무가지로 된 채찍이다. 채찍을 가장 중요한 무기로 사용하는 것은 유목문화의 전통에서 비롯된다. 유목문화에서 채찍은 단순히 말을 모는 수단이 아니라 가축 떼를 몰아가는 구실 등 다양한 기능을 하기 때문에 채찍문화가 가장 발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유목문화와 농경문화의 차이는 이러한 생활세계의 차이로 한정되지 않는다. 앞에서 다룬 하늘세계의 인식처럼 관념적 세계관의 인식도 일정한 차이를 드러낸다. 그러한 세계관의 차이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 샤머니즘과 굿문화이다. 샤머니즘이 유목문화의 세계관을 잘 보여준다면, 상대적으로 굿문화는 농경문화의 세계관을 잘 보여준다.

   유목지역의 샤먼들은 ‘이계’ 곧 지상과 다른 세계에 가서 초월적 존재를 만나고 해답을 알아와서 지상의 문제를 해결한다. 따라서 샤먼들은 굿을 하는 동안 엑스타시 상태, 곧 혼이 몸을 빠져나가서 망아의 탈혼 상태에 빠져든다. 이때 샤먼들의 몸을 빠져나온 혼은 주로 하늘나라로 떠난다. 특히 내림굿을 할 때에는 샤먼이 높은 나무 위로 가능한 멀리 올라가 오랫동안 있다가 내려온다. 하늘세계를 다녀오는 것을 상징하는 입무의식이다. 지상의 문제를 푸는 해답 곧 미래의 운명에 관한 비밀은 하늘나라에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게세르에는 이러한 세계관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게세르가 악한 마법사들과 전쟁에서 승리한 다음 하늘세계로 올라간다. 하늘에서 휴식을 취한 다음 지상의 마지막 마법사 ‘쉬렘 미나타’를 처치하기 위해 다시 지상으로 내려온다. 최선의 준비를 갖추고 ‘쉬렘 미나타’와 대결을 벌였지만, 승산은커녕 위기에 몰리게 되자 휴전을 청하고 간신히 그의 손아귀에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온다. 고뇌에 빠져 있다가 아내 ‘알마 메르겐’의 충고대로 하늘나라로 가서 도움을 구한다.

   아버지 ‘한 히르마스’는 “운명의 책에 있는 기록을 보면 고통과 수난을 겪은 다음 결국 네가 지상의 악들을 모두 다 제압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고 하면서, 형 ‘자사 메르겐’과 “하늘세계에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현명하게 돌파구를 마련하는 ‘만잔 구르메’ 할멈에게도 가서 비책을 여쭙거라”고 한다. 형을 찾아가니 아버지처럼 ‘생명의 책, 운명의 책’에 기록된 사실을 들려주고, ‘만잔 구르메’ 할멈은 신무기라고 하면서 버드나무 가지로 만든 채찍을 준다. 게세르는 최후의 결전에서 ‘쉬렘 미나타’의 채찍을 머리에 맞아 죽은 것처럼 쓰러져 절망에 빠져 있다가, ‘구르메’ 할멈이 준 버드나무 채찍으로 상대의 머리를 가격하여 몸을 조각내고 마침내 승리한다.

   샤먼이 엑스타시 상태에서 하늘나라로 올라가 신들의 도움으로 지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아오는 구조와 일치한다. 게세르는 위기에 처했을 때 하늘나라로 올라가 신들에게 직접 도움을 요청하고, 하늘 신들은 ‘운명의 책’ 또는 ‘생명의 책’을 통해서 미래의 상황을 미리 알려준다. 또 ‘만잔 구르메’ 할멈처럼 영험한 무기까지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하늘나라에는 지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초월적인 신과 운명의 책, 그리고 영험한 주술물 등이 존재하는 셈인데, 이러한 양상은 이계에 가서 문제해결의 방법을 알아오는 샤머니즘의 세계관과 일치한다.  

   게세르가 도저히 이길 수 없을 정도로 마법이 막강했던 “무시무시한 저승의 괴물이 연약한 버드나무 가지 회초리를 맞고 황천길로 간 것”은 순전히 하늘에서 가져온 주술물 덕분이다. 부리야트 전통사회에서는 버드나무 가지가 사악한 마법사와 정령들과 같은 잡귀잡신들을 쫓은 주술적 기능을 발휘한다고 믿었으며, 시베리아 소수민족들도 자작나무와 함께 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주술적 영험을 지닌 것으로 버드나무를 사용했다. 그러므로 샤먼들은 하늘나라로 여행하기 위해 엑스타시 상태에 빠지고 사악한 잡귀들을 쫓기 위해 버드나무 가지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굿문화에서는 이러한 엑스타시 상태나 무당의 이계 여행이 없다. 따라서 무당이 하늘나라로 여행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 하늘나라에 있는 운명의 책이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늘에 있는 신들을 지상으로 청신하여 굿판에 좌정하도록 한다. 청신굿이자 내림굿 구조의 양식인데, 환웅이 신단수 밑으로 하강하거나 김알지가 시림에 하강하며, 수로왕이 구지봉에 하강하는 일은 모두 신이 지상으로 내려오는 내림굿 형태이다. 샤먼의 하늘나라 여행을 엑스타시(ecstasy) 유형이라고 하면, 무당의 내림굿 형태는 포제션(possession) 유형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고조선본풀이를 비롯한 한국의 건국시조들이 신맞이로 이루어지는 ‘내림굿’ 형태의 포제션 유형에 속한다면, 게세르신화를 비롯한 샤머니즘의 방식은 혼이 무당의 몸에서 빠져나가는 ‘탈혼굿’ 형태의 엑스타시 유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계여행의 엑스타시 유형 곧 탈혼의 방식이야말로 유목민들이 현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풀밭을 찾아 이동하는 데서 비롯된 세계관이라면, 내림굿 형태의 포제션 유형 곧 신들림의 방식은 한 자리에 터잡고 정착하여 씨를 뿌리고 가꾸는 농경문화의 해결방식이다. 이러한 두 가지 사유방식은 구체적인 생활양식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주생활에서도, 언제든지 이동 가능하도록 게르와 같은 천막을 짓고 가축과 함께 좋은 풀밭을 찾아 생활하는 유목문화의 주거생활과, 누대로 붙박이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구들을 놓고 집을 지어 토지를 경작하며 살아가는 농경문화의 주거생활이 대조적으로 드러난다. 농경문화에서는 신도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땅의 일정한 공간에 머물러 있도록 한다. 그러므로 사당과 서낭당에 늘 신을 붙박이로 모시고 있고, 신이 없는 경우에는 굿판으로 신을 내림받아 모셔오기 위해 신맞이굿이나 내림굿을 하는 것이다.

   유목민들에게 신은 굿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계에 있다. 수시로 이동하는 생활을 하기 때문에 사당과 서낭당을 지어두고 신을 붙박이로 모실 수도 없다. 그것은 곧 신을 버리는 행위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이 머무는 세계는 이계로 설정되어 있다. 선신이든 악신이든 하늘 또는 지하, 바다와 같은 다른 세계에 있다. 붙박이로 지상에 모셔두고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찾아가서 만나고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 붙박이 농경인들이 데스크탑 컴퓨터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한데 비해, 떠돌이 유목인들은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한 것과 같다.

   게세르에서 천신들이 지상세계로 내려 올 때에는 게세르처럼 인간의 아기로 태어나거나 그 어머니처럼 짐승의 형태로 나타난다. 환웅처럼 신인 채로 하늘에서 강림하여 신단수에 깃들어 천왕으로서 섬김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다. 신단수는 마치 마을 서낭당의 당나무와 같다. 당나무에는 마을수호신이 깃들어 마을의 온갖 일을 지켜 주는 것처럼, 신단수에 강림한 환웅천왕도 신시고국의 360여사를 재세이화, 곧 세상에 머물러 있으면서 이치로서 다스렸다.

   그러나 유목민들은 ‘재세이화’의 논리와 반대로 ‘성을 쌓는 자는 망한다’고 한다. 유목인들이 한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나, 농경인들은 오히려 유목민들처럼 ‘떠돌이 생활’을 하면 망한다. 놈팽이나 걸인들이 떠돌아다니지 부지런한 농부들은 일정한 공간에 주거시설을 마련해 놓고 토지를 가꾸며 누대로 붙박혀 사는 것이 미덕이자 흥하는 삶이다. 따라서 곰족과 범족이 신단수 아래로 찾아와 신단수 아래에서 정착생활을 하는 환웅천왕에게 인간되기를 빌었던 것이다. 그것은 곧 유목민들이 정착농경 문화에 동화되기를 소망한 것인데, 농경문화에 곰족은 적응하여 동화되고 범족은 적응하지 못해 일탈했던 것이다.

  7. 두 신화의 이질성과 한몽관계의 접점 인식

  한몽 고대사는 흥미롭게도 돌궐과 연관되어 있다. 한국과 몽골 모두 돌궐족의 역사와 일정한 연관성을 지니는 것이다. 돌궐과 몽골이 서로 고대사를 공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고대에 같은 지역에 거주하며 같은 시조신화를 누렸다는 사실이 추론된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과 터키의 친연성 또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서로 만나 고대사의 접점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한국과 터키가 고대사로 거슬러 올라가면 민족적 동질성으로 만나는 것처럼, 한국과 몽골의 친연성도 같은 양상의 접점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추론된다. 그러므로 한국과 몽골의 고대사 인식은 터키와 함께 세 민족사의 상호비교가 이루어질 때 더 정밀하게 포착될 수 있다.

   고대사의 접점에서 중세 이후로 올수록 한국과 몽골, 터키는 지리적 거주의 이동은 물론, 생태계에 따른 문화적 독창성과 이질성이 강화되고 다른 민족과 교류로 혈연적 계보도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몽골 민족도 동아시아 지역에서 서북쪽 초원지대로 이동하면서 초기농경문화에서 유목문화가 형성되고, 돌궐족은 더 서쪽으로 이동하는 만큼 여러 민족들과 교류하면서 유목문화를 거쳐 다시 농경문화로 나아갔다. 그러나 한민족은 초기농경문화에서 유목문화 일부를 수용하여 동화시키는 가운데 후기농경문화로 계속해서 발전해 왔다. 그러므로 고대에 형성되었던 세 나라의 문화적 동질성은 후기로 올수록 이질화될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과 몽골은 중세 이후의 역사적 전개와 지리적 위치, 자연환경의 이질성으로 상당히 다른 문화를 누리게 되었는데, 우리 학계는 여전히 고대사의 추론적 접점을 근거로 전파주의적 시각에서 문화의 선후 또는 영향 문제를 동어반복하는 데 함몰되어 있다. 고조선본풀이를 게세르신화 유형으로 범주화 하는 데에도 그러한 인식이 상당히 내재되어 있다. 두 자료는 창작 연대나 지리적 위치, 전승주체, 생태학적 상황이 전혀 다른 작품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검토한 것처럼 오히려 자료의 갈래와 서사구조, 이야기의 내용, 세계관적 가치, 하늘과 땅 또는 부모의 인식, 종교적 배경, 생업의 양식 등 여러 준거에서 서로 이질성을 지닌 국면들이 훨씬 더 두드러진다.

   이러한 이질성은 한몽 두 나라 민족사에서 장기 지속적으로 전개된 통시적인 변화양상인 동시에, 공시적으로 보면 ‘농경·유목문화 비교모형’에 따른 생태학적인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앞으로 기업제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더라도 문화적 이질성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한몽관계의 접점은 고대사에서 추론적으로 찾을 수 있고 현실상황에서 두 민족의 정서적 공감대에서 찾을 수 있으나, 문화적으로 볼 때에는 두드러진 차이와 이질성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고조선본풀이와 게세르신화는 고대사의 동질성보다 현실적인 문화의 이질성을 더 잘 보여주는 자료일 뿐 아니라, 두 작품은 서로 독립적으로 발생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고 할 특별한 단서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질성보다 동질성을 근거로 서로 같은 유형으로 묶어서 영향관계나 선후관계를 주장하는 것은 소박하게 보면 두 민족이나 문화의 친연성을 밝히려는 것이고, 거칠게 보면 그러한 관계로 문화의 중심성과 주변성을 설정하여 주변부문화를 중심부문화로 종속화시키려는 것이다. 뒤의 의도를 공격적으로 드러내면 자문화중심주의의 무리를 저지르고, 수용적으로 드러내면 종속주의의 어리석음에 빠져들게 된다. 차그두로푸가 고조선본풀이를 게세르신화의 주변문화로 주목하면서 시베리아 지역의 유목문화 중심성을 드러내고자 무리하게 동질성을 주장했다면, 양민종은 그러한 자문화중심주의적 동질성을 끌어들여서 역사적 선후를 근거로 오히려 게세르신화를 주변문화로 해석하는 반론을 펼친 것이다. 결국 서로 같은 동질성을 문제 삼았으되, 차그두로푸의 자문화중심적 논의를, 양민종이 역사적인 선후 논리를 근거로 뒤집어 버린 셈이다.  

   이처럼 주로 북방민족 유목문화와 우리 민족문화의 관계를 다룰 때, 동질적인 논의는 으레 종속주의적 전래설에 빠져서 이른바 시베리아기원설 또는 유목문화 전래설을 동어반복하기 일쑤이다. 그러나 양민종처럼 역사적 선후를 제대로 따지면 그 진부한 영향관계나 상투적 전파의 방향을 설득력 있게 뒤집어버릴 수 있다. 이를테면, 신라 금관이 시베리아 샤먼의 무관에서 비롯되었다는 고고학계의 금관기원설이 그러한 보기이다. 만일 금관의 기원이 시베리아 무관에 있다면, 시베리아 샤먼의 모자가 5세기 이전의 황금왕관이든지, 아니면 신라금관이 19세기 이후의 철제무관이든지 둘 가운데 하나는 참이어야 한다. 그런데 어느 것도 참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두 관모의 역사적 선후나 상징성을 제대로 따지지 않고 닮은 모습을 무리하게 관련지은 외국학자들의 주장을 동어반복한 까닭에 시베리아 기원설을 답습할 수밖에 없었다. 텡그리에서 단군이 왔다는 전래설도 같은 모순에 빠져 있다. 단군은 서기전 24세기 한민족 군주의 명명인 반면에, 텡그리는 그 훨씬 뒤에 등장한 하늘 또는 천신을 나타내는 유목민들의 명명이다. 더군다나 단군은 밝달임금을 나타내는 인간적인 군주로서 천신을 나타내는 환인, 환웅의 자손으로서 구체적 계보가 있다. 다시 말하면 천신을 나타내는 말은 환인과 환웅일 뿐 아니라, 환인과 환웅의 천신이 있기에 지상에 단군이 있는 것이다. 천신을 나타내는 텡그리와 의미가 같은 말은 단군이 아니라 환인과 환웅, 해모수, 해부루, 불구내 등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단군왕검의 역사적 시기나 혈연적 계보, 그리고 천신을 나타내는 한국 고유의 명명을 고려할 때, 텡그리에서 단군이 왔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굳이 텡그리와 단군이 서로 영향관계가 있다면, 당대에 선진 농경문화를 누린 왕검조선의 시조 단군을 신격으로 여긴 유목민족에게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더 높다.  곰족이나 범족이 천신족인 환웅족에게 찾아와 인간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는 사실은 문화의 영향관계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일이다. 그러나 이 모든 논의는 동질성에 집착한 전파론의 무리한 추론에 머무를 뿐 객관적 입증으로 뒷받침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한몽 접점은 물론 민족 또는 국제관계에서 서로 만나는 지점을  동질성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이질성에서 찾아야 한다. 동질성을 근거로 한 패거리의식이나 지역감정에 매몰되지 말고 이질성을 대상으로 한 호기심이나 교류관계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현실에 안주하여 창조적 미래가 열리지 않는다. 그것은 곧 고조선본풀이가 보여주고 있는 세계관이다. 환웅이 천상세계와 전혀 다른 인간세상을 동경하고 홍익인간 이념을 추구한 사실이나, 곰족과 범족이 환웅족을 찾아와 그 문화를 익히려고 쑥과 마늘을 먹은 사실들은 모두 동질성이 아니라 이질성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에서 비롯된 모험적 행위이다. 그러므로 한몽관계의 접점도 동질성이 아니라 이질성에서 찾아야 생산적 미래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한국과 몽골은 농경문화와 유목문화라는 서로 다른 현실문화를 누리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문화적 특수성의 현실을 외면한 채 고대의 동질적 파편을 꿰어 맞추어 선후나 영향관계를 따지는 것은 비생산적이자 퇴행적 논의이다. 기독교와 이슬람교 또는 천주교와 개신교가 현실적으로 서로 다른 종교적 차이를 인정하고 긴밀하게 교류하며 상대 문화를 공유할 때 미래의 접점이 확대될 수 있다. 그러나 고대사로 거슬러 올라가서 한 뿌리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현재의 이질성을 무시한 채 자기 중심성을 강조해서는 결코 접점을 마련할 수 없다. 그러한 퇴행적 폐단이 가장 나쁜 양상으로 나타난 것이 고대사 조작이다. 주변국의 모든 역사를 자국역사로 끌어들이는 중국의 ‘동북공정’이 그러한 보기 가운데 하나이다. 한‧몽 관계도 무리하게 동질성을 주장하게 되면 고대사 왜곡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있다.

   한국과 몽골이 제각기 유목문화끼리 또는 농경문화끼리 교류하고 연대하는 것은 양적 확장에 머문다. 질적 성장이 가능하려면 서로 이질적인 문화로서 유목문화와 농경문화에 제각기 호기심을 가지고 설레는 마음으로 다가가서 공감의 울림을 느끼며, 상대방의 울림과 울림이 만나 어울림을 이룰 때 가장 창조적인 접점, 곧 상생적 관계가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유목과 농경의 서로 다른 문화가 대등하게 만나야, 마치 양극과 음극이 만나서 태극을 이루듯이, 제3의 문화를 창출하는 것이다. 남북통일도 이와 같이 서로의 이질적 체제를 대립적으로 배제하면서 자기 동일성을 관철하려 할 것이 아니라 이질성을 오히려 장점으로 인정하면서 접점을 찾아야 이통합일(二統合一)의 통일론에 따른 창조적 통일의 길이 제대로 열린다.

    고조선본풀이는 ‘천신과 인간’, ‘동물과 인간’ 등 서로 이질적 집단과 문화가 다른 세계에서 만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사실을 실제로 보여주는 홍익인간 이념의 실천적 보기이다. 따라서 역사적 선후나 문화적 우열로 한 문화가 다른 문화를 귀속시키려는 단일문화 발생설의 전파주의적 사고와 제국주의적 석권은 극복되어야 한다. 한몽 두 나라의 친연성을 강조하는 고대사의 무리한 동질성보다 합리적 이질성의 객관적 현실인식이 상생적 접점을 이루는 더 소중한 가치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유목과 농경의 문화적 이질성이야말로 한몽이 더 긴밀하게 만날 수 있는 매력적 접점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고조선본풀이와 게세르, 그리고 한몽 고대사의 접점을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고대사의 동질성에서 접점을 찾느라 과거에 집착하면 현재가 퇴행적 관계로 닫혀 있겠지만, 현대사의 이질성에서 접점을 찾아 미래를 전망하면 현재가 창조적 관계로 열릴 것이다. 그렇다고 고대사는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고대사의 동질성이야말로 현재의 이질성을 상생적으로 극복하고 하나로 합일시켜가는 실마리로서 중요한 기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대사에 집착할 필요는 없지만 고대사를 잊어버리거나 외면해서는 곤란하다.

   현재의 이질성을 근거로 이통합일의 창조적 세계관을 보여 준 것은 바로 고조선본풀이다. 그 자체로 잘 드러나지 않던 홍익인간 이념도 게세르와 견주어보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더 잘 포착되었다. 따라서 비교분석은 자문화를 상대적으로 더 잘 이해하는 긴요한 방법이다. 그 결과, 이질적 집단과 문화의 상생적 만남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는 이통합일의 이치를 잘 갈무리하고 있는 것이 바로 홍익인간의 세계상이자 고조선본풀이의 역사인식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처럼 문제의 답은 늘 자료 안에 이미 함축되어 있다. 그러므로 자료가 이론이고 이론이 자료라 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