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대한독립운동 총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역사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우리는 문제가 중국이나 일본에 있는 것처럼 대응했지만 실은 우리 내부문제가 더 심각하다. 실증사학이란 미명하에 역사교정을 원하는사람을 재야사학이나 국수주의라고 평가절하 해오고 있다. 이는 민족주의 사학자인 백암 박은식과 단재 신채호, 위당 정인보 등이 해방 전에 작고하거나 6·25 때 납북되면서 생긴 사학계 빈틈을 일제 식민사관 사학자들이 주도했기 때문이다.

일제 식민사관과 중화 패권주의 사관은 위만조선이나 한사군을 우리 역사의 시작으로 한다. 그 결과 시간과 공간적으로 우리역사는 대폭 축소됐다. 동북공정 논리 그대로인 두 사관은 우리역사에서 영토에 대한 기득권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고조선 역사가 현대사라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역사를 바로잡는 데에는 국정교과서부터 제대로 기술해야


위만이 “중국 철기문화를 가져왔다”는 가설은 사대모화사상과 식민사관에서 당연히 중국에서 문명이 더 먼저 발달 했으리란 상상의 산물이다. 최근 평양 등지에서 중국보다 훨씬 앞선 철제유물이 발굴됐다.

한나라 무제가 설치했다는 ‘한사군’ 도 의문점이 많다. 역사의 정밀 묘사로 유명한 사마천은 그가 생전에 목격한 한나라 승전의 최대사건을 어찌 ‘以故遂定朝鮮, 爲四郡’(이로써 조선을 평정하고 사군을 설치했다)이란 9자만으로 썼겠는가? 또한 한사군의 명칭은 그 당시로부터 200여 년 후, 반고의 ‘한서’ 에 처음 등장한다. 그러므로 이 기록은 후대의 가필로 봐야한다.

잘못된 역사인식이 중국의 역사침탈 도와


단재 선생은 중국역사서인 중국사서 본기들을 뒤적이며 우리역사를 발췌했다. 그러나 다른 사학자들은 중국사서에서 우리민족을 직접 거론한 조선열전 같은 일부만을 해석하고 주석을 붙이기 일쑤였다. ‘주(註)’가 없는 역사서 즉, 단재 선생의 ‘조선상고사’와 ‘조선상고문화사’ 등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이 ‘주’를 달아 억지로 붙인 지명으로 인해 중국은 요즘 만리장성 끝이 평양이라며 압록강까지 만리장성을 새로 쌓았다. 실증주의사학이란 명분으로 호도한 결과이다.

중국은 내몽고 우하량에서 여신묘(女神廟)와 함께 대규모의 적석총이 발굴된 홍산문화가 황하문명보다 최소 1,000여 년이 앞선 데다 동이계 문화임이 노출되자 계획적으로 황제·염제에 이어 동이족인 치우천황을 중국시조로 모셔 민족의 흐름을 돌리고 있다.

적석총과 고인돌은 고조선의 무덤양식이다. 빗살무늬토기와 명도전, 제조기술과 제련기술이 뛰어난 청동비파형 동검, 기하학적 무늬가 정밀한 다뉴세문경, 이 모두가 고조선 유물들이고 오한기에서 출토된 비파형동검 거푸집은 그 곳이 고조선 영토임을 입증하는 지표다.

그러나 최근 중국은 요녕성이나 적봉 박물관에 진열되었던, 우리와 관련된 유물들을 철거하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유물들이 우리 앞에서 사라질지 모른다. 중국대륙을 휩쓴 청나라 만주족은 지금 만주어와 문자, 문화가 완전히 사라졌다. 우리도 지금 역사를 빼앗기는 상황이다. 언제까지 우리역사를 남의 손에 맡기고 폄하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