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학계는 동북공정을 통해 단군신화를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단군에 의해 건국되었다는 단군조선의 실체를 부정한다. 대신에 은말주초 기자에 의해 건국된 기자조선이 고조선의 시작이라고 보았다.”

동북아역사재단은 한국고대사학회와 공동으로 20일~21일, 대구 팔공산 온천관광호텔에서 '동북공정 이후 중국의 변강정책과 한국고대사 연구동향'를 주제로 학술회의를 개최한다.(본보 7월 17일자 기사 바로가기 클릭)

박준형 연세대 동은의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21일에 ‘동북공정 이후 중국학계의 고조선, 부여, 예맥 연구 동향’을 주제로 발표한다.

▲ 박준형 학예연구사는 20~21 대구에서 열리는 동북공정 10주년 학술대회에서 고조선 연구 동향을 발표한다. 그는 중국이 2007년 공식 마감된 동북공정 이후에도 단군조선의 실체에 대해 부정하고 기자조선를 강조해 한국사의 시작부터 중국에 종속되었다고 본다고 했다. 사진은 국조단군상 <코리안스피릿 자료사진>

박 연구사는 미리 공개한 발표문에서 지난 2002년 2월부터 시작된 중국의 동북공정은 2007년 1월에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지만, 이후에도 동북공정의 논리는 학문 후속세대에 의해 대물림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국의 역사 왜곡은 고구려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조선을 비롯하여 부여, 발해 등 한국 고대사 전반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특히 단군신화를 비롯한 단군조선의 역사를 부정하고 기자조선을 강조함으로써 한국사는 그 시작부터 중국에 종속되었다고 본다.”

그는 기자조선의 위치와 영역에 대해 중국 학자들 내부에서도 논쟁이 있었지만 그들의 결론은 결국 기자조선이 중국의 식민정권이었으며 한국사의 시작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는 동북공정의 목표에 배치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발표문에 따르면 중국 학자 묘위(苗威)는 단군신화가 고조선 시기의 산물이 아니라 고려시대에 민족의식을 고양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았다. 그는 고구려, 백제, 라의 건국신화가 모두 중국에서 기원하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토착적으로 성장한 신화를 만들어 민족의식을 고양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단군신화가 만들어졌다고 보았다.

또한 단군신화에 나타난 불교적 요소로 볼 때 평양지역에 불교가 수용된 이후에 처음 만들어졌다가 후인(後人)의 가공을 거쳐 13세기에 이르러 오늘날의 판본 양식으로 형성되었다고 밝혔다.

신화의 내용 중에서 왕검이란 이름은 중국식 성명이며, 풍백, 우사, 운사는 중국식 신선명(神仙名)이고, 삼위(三危)는 중국 고서에 보이는 산이며 符印(부인)도 중국식 용어이며 중국식 간지로 연대를 표기한 것은 모두 단군신화가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진 결과라는 것이다.

중국학자 장철준(張哲俊)은 신화적 소재를 분석하여 단군신화가 후대에 조작되었다고 보았다. 그는 단군신화에 쑥과 마늘의 조합이 형성된 시기는 중국의학에서 그것이 조합된 이후에 형성되었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 조합은 중국에서 육조(六朝)시기 이후에서야 가능하기 때문에 단군신화에서 쑥과 마늘의 요소는 4세기 이후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준형 연구사는 "중국학계의 주장은 동북공정 이후에도 단군신화가 고조선 당대의 산물이라는 한국학계의 견해를 반박하기 위해서 신화소 분석을 통해 후대의 조작을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고조선이 중국의 식민정권인 기자조선에서부터 시작되고 이를 위만조선에까지 이어진다는 동북공정의 논리는 동북공정 이후에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며 “동북공정을 통해 양성된 학문 후속 세대들이 대학 강단에서 여전히 동북공정의 논리를 펴고 있다. 앞으로 동북공정의 논리가 중국학계에서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된다.”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