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이름에 들어 있는 뜻을 아십니까?" 

 조선 경복궁에는 가는 곳마다 깊은 의미가 있다. 많은 사람이 찾지만 건물 외양만 보고 지나치기 때문에 그 뜻을 모를 뿐. 경복궁에 담긴 사상과 뜻을 풀어주는 강좌가 19일 오후 3시 열렸다.   

허균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이 국립중앙도서관이 마련한  '길 위의 인문학' 현장탐방 사전강연에서  <조선궁궐 깊이 읽기 경복궁을 중심으로- > 라는 주제로 이 도서관  디지털도서관 대회의실에서 열강을 했다.

허균 소장은 경복궁의 궁궐과 장식에 담긴 사상과 상징적 의미를 깊이 고찰하면서 경복궁에 대해 청중들이 더욱 가깝게 이해하도록 이끌었다. 

▲ '길 위의 인문학' 사전강연으로 '경복궁'을 깊이있게 안내한  한국민예미술연구소 허균 소장.  [사진=이효선 기자]

'경복궁(景福宮)'은 조선 시대에 만든 다섯 개의 궁궐 중 첫 번째로 세운 것이며 "큰 복을 누리라"는 뜻으로 정도전이 이름을 지었다.  경복궁은 조선시대 전란, 실화나 방화에 의해 훼손되기도 하고, 일제가 일부러 훼손하기도 하였다.  현대에 와서는 졸속 복원 등으로 원형을 찾아볼 수 없으나, 조선의 정치와 역사의 산물이자 왕권의 대표적 상징물로 여전히 의미가 크다. 

 광화문(光化門) - 임금의 교화가 만방에 미치다
광화문은 조선 태조 때 경복궁 남쪽에 세운 정문(正門)이다.  태조 4 9월 궁궐이 완성되자 왕이 정도전에게 동서남북 사방 문의 이름을 짓으라 명했다.  정도전은 동쪽 문을 건춘, 서쪽 문을 영추, 북쪽 문을 신무, 남쪽 문을 오문(午門)이라 지었다.  오문은 세종 때 광화문(光化門)으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임금의 교화가 만방에 미친다는 뜻이다. 이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정치적 이상을 잇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며 고종 때 광화문 복원으로 계승되었다.

고종 당시 '광화문 상량문'에 "해와 달이 사심 없이 비춰주고, 비와 이슬의 은혜가 고루 적신다(日月光華之無私照, 雨露化育之所均霑)"는 대목이 나온다. 이는 "임금의 은덕이 만방의 백성에게 차별 없이 미친다"는 뜻으로, 조선 왕조가 추구한 왕도 정치의 이상을 표현한 것이다.

▲ 광화문 [사진제공=허균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근정전(勤政殿) - 스스로를 다스리다
근정전은 경복궁의 정전으로, 임금이 신하들의 조하를 받는 곳이다. 조하는 동지, 신년, 즉위,  탄일 등 경사스런 날에 신하가 궁에 들어와 임금에 하례를 하던 일을 말한다. 근정전의 '정()' 자는 (바를 정)’()’으로 이루어진 글자이다. '매로써 다스려 바르게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바르게 하는 대상은 남이 아니라 바로 군주 자신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남을 다스리기 전에 스스로 수행하고 기상과 풍채를 바르게 하는 것, ‘수기치인(修己治人)’ 하는 왕도정치의 참뜻을 정전 이름에 담은 것이다. 근정전에서는 세자 책봉, 왕족의 혼례, 회갑연과 같은 의례도 올렸다. 

▲ 근정전 [사진제공=허균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강녕전(康寧殿) – 오복(五福)이 충만한 곳
강녕전은 왕의 침전이다. '강녕(康寧)'은 '서경'(書經) 홍범구주(洪範九疇, 중국 ()나라 우왕(禹王) 남겼다는 정치 도덕의 아홉 가지 원칙)에 나온다. 구주는 오행(五行), 오사(五事), 팔정(八政), 오기(五紀), 황극(皇極), 삼덕(三德), 계의(稽疑), 서징(庶徵), 오복(五福, 六極)을 말하는 것으로, 이 중 오복은 수(), (),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이다. 오복 중 강녕을 침전 이름으로 삼은 것은 강녕이 다섯 개의 복 중 중앙에 있기 때문이다. 중앙은 첫째와 둘째, 그리고 넷째와 다섯째 복을 모두 포괄한다.

▲ 강녕전 [사진제공= 허균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교태전(交泰殿) -『주역(周易)』의 원리를 담다
교태전은 왕비의 침전이다. 교태전이라는 이름은 『주역』지천태(地天泰)괘의 대상전(大象傳)에서 따왔다. "하늘과 땅의 기운이 서로 통하는 것이 태(). 왕후는 그것으로 천지의 도를 이룩하고 천지의 마땅함을 보필하여 백성을 좌우한다 (天地交泰 后以 財成天地之道 輔相天地之宜 以左右民)"라는 대목에서 '교태(交泰)'를 인용한 것이다. 지천태 괘는 양()의 하괘(아래 세 개의 효)와 음()의 상괘(위 세 개의 효)로 이루어진 괘이다. 위에서 땅 기운이 하강하고 아래서 하늘 기운이 상승하는 모양으로, 이상적인 대길운을 상징한다. 태괘는 곤괘와 건괘로 이루어져 있는데, 곤은 땅과 왕비, 건은 하늘과 왕을 상징한다. 이는 왕과 왕비가 정을 나눌 때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이 막힘 없이 통해 훌륭한 세자를 잉태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 교태전(왼쪽), 지천태 괘(오른쪽)

 경회루(慶會樓) – 임금과 신하의 경사스러운 만남
"정사(政事)를 잘하고 못하는 것은 사람을 잘 얻고 못 얻는 것에 달렸다."

이 말은 공자(孔子)께서 노나라 애공(哀公)의 물음에 대답한 말이다. 임금이 훌륭한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도덕적이고 정치의 근본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을 신하로 삼아 좋은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경회란 군신이 서로 덕으로써 화합하는 경사스러운 만남을 의미한다.

이렇듯 경복궁의 궁궐에는 조선을 지배했던 유교의 정치 이상이 숨겨져 있다. 허균 소장은 이 외에도 경복궁의 건물구조와 배치에 담긴 우주 자연의 이치, 일월오악도가 표현한 왕조의 위엄과 권위, 건축 추녀마루에 배열한 짐승 모양을 한 잡상(雜像)이 갖는  벽사진경의 의미 등을 소개했다. 

허 소장은 "우리가 외형만 구경하는 습관에서 벗어나 배후 사상과 상징적 의미를 이해한다면 경복궁의 참모습을 더 잘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연 말미에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