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이용해 물을 다스리다
나무를 이용해 물을 다스리다
  • 한혜경 기자
  • pickle222@naver.com
  • 승인 2012.07.15 12: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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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수(治水)를 위해 조성된 이로운 숲으로의 여행

장마전선이 전국을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곳곳에 물난리 소식이 들려온다. 일년 강수량의 절반 이상이 장마철에 쏟아지는 형국이니, 천재지변으로 물난리가 나는 것이야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해마다 ‘천재가 아닌 인재’라는 쪽으로 결론이 나는 마당이라 하늘 탓만 하기에도 미안할 지경. 첨단장비를 이용한 기상예보 시스템을 갖추고도 매년 겪는 물난리를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이겨냈을까? 조상들의 지혜는 바로 숲에 깃들어 있었다.

 
담양 관방제림: 담양천의 범람을 경계하다

전라남도 담양은 대나무의 고장이다. 담양 관광의 중심인 죽녹원의 푸른 대나무 숲은 그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시원함을 안겨준다. 바람이 불 때마다 댓잎을 스치는 바람이 자아내는 신비한 소리는 시원하게 쏟아지는 빗소리 같기도 하고, 힘차게 흐르는 죽녹원 앞 담양천 물소리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담양읍을 감아 돌며 흐르는 담양천은 호남의 젖줄 영산강의 원류다. 담양천 한쪽 제방에는 나무들이 우거진 숲이 있다. 담양읍 남산리 동정마을부터 천변리 우시장까지 연장된 2킬로미터에 걸쳐 자리한 ‘관방제림(官防堤林)’이다. 수령 200~300년의 푸조나무(111그루), 팽나무(18그루), 개서어나무(1그루), 벚나무(9그루), 음나무(1그루), 곰의말채, 갈참나무 등 420여 그루가 살고 있다.

관방제림은 160년 전에 만들어졌다. 제방은 조선 인조 36년(1648년), 부사(府使) 성이성(成以性)이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로부터 200년 후인 1854년(철종 5년) 부사 황종림(黃鍾林)이 3만여 명을 관비(官費)로 동원하여 제방에 나무를 심고 숲을 조성했다. 목적은 단 하나. 담양천의 범람을 막기 위해서였다. 농업 중심사회였던 조선에서 ‘치수(治水)’는 지도층의 가장 큰 숙제였다. 제방을 쌓고 제방을 더욱 견고하게 하기 위해 나무를 심는 방식은 시멘트로 제방을 발라 마감하는 요즘의 방식과는 확연히 다르다. 물의 특성을 이해하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한에서 물을 다스리는 이런 옛 방식에는 ‘인간만이 최고이며,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라는 인간의 오만함이 깃들어있지 않다. 그 덕분에 우리가 얻은 것은 언제나 푸른 그늘을 드리우는 49.228제곱미터의 울창한 녹지였다. 관방제림은 현재 담양 사람들의 휴식과 여가의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역사 및 문화적 자료로도 가치가 높아 관광 자원으로도 적극 활용되고 있다.

위치: 전라남도 담양군 담양읍 객사리
함께 관람하면 좋은 곳: 죽녹원, 메타세콰이어길, 담양장


함양 상림: 치수(治水) 목적으로 조성한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림

그렇다면, 선조들은 언제부터 숲으로 물을 다스리기 시작했을까? 그 역사는 1,100여 년 전으로 올라간다. 통일신라 말 최치원이 조성한 국내 최초의 인공림이 그 증거다. 천연기념물 제154호인 ‘함양 상림’은 지리산 아래 자리한 함양의 아름다운 8가지 경치 중 으뜸으로 꼽힌다. 894년 최치원이 함양 태수로 부임한 후 만들었다는 상림은 한여름에도 햇볕이 침범하지 못할 정도로 울창하다.

그런데 최치원은 왜 숲을 만들었을까? 그것은 바로 함양 고을을 관통하는 ‘위천’의 범람을 막기 위해서였다. 지리산에서 발원해 흐르는 위천은 자주 범람해 담양고을 사람들의 삶을 어렵게 했다. 위천을 다스리기 위한 치수사업으로 제방을 쌓아 물길을 함양 고을 밖으로 돌리고, 제방 위에 나무를 심었다. 치수사업이 완료되자 수해는 발생하지 않았다한다. 그리고 치수사업을 위해 심었던 제방 위 나무들은 1,100년을 이어오며 아름다운 숲을 이루었다.
상림 숲의 넓이는 13만 제곱미터 정도. 1.6킬로미터 이어진 제방을 따라 은행나무, 노간주나무, 생강나무, 백동백나무, 비목나무, 개암나무, 물오리나무, 서어나무 등 40여 종의 낙엽목과 다양한 활엽수들이 수없이 늘어 서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상림 외에 또 하나의 숲을 조성했다는 사실이다. 조성 당시, 상림과 함께 하림도 만들었고, 이 둘을 합해 대관림(大館林)이라 불렀다 한다. 어느 시기에 하림이 사라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처음 조성될 당시의 숲의 규모는 상상 이상이다.
상림 숲은 산책하기에 좋다. 나무가 울창해 더위를 피하기에도 제격이다. 나무가 많으니 산림욕에도 좋다.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은 이 숲이 아직도 위천의 범람을 막는 일등공신이라는 사실이다. 함화류, 최치원신도비 등 숲에 분포한 문화유적도 돌아보도록 하자. 녹음이 짙은 여름이 최치원이 우리에게 남겨준 값진 선물 ‘상림’을 즐기기에 최적의 시기다.

위치: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대덕동 246
함께 관람하면 좋은 곳: 정여창 고택, 남계서원, 애련지


미락숲: 하천변 물살의 흐름을 조절하는 수해방지림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와 삼수령에서 흘러나온 물들이 함께 흘러 한강이 되기 전까지 이룬 내가 골지천이다. 이 골지천과 임계천이 합수되는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낙천리에도 물을 다스리기 위해 조성한 숲이 있다. 골지천은 평소에는 유량이 많지 않지만, 장마가 들어 홍수가 나면 범람하거나 센 물살로 인해 하천변의 토양이 쓸려나가곤 했다. 마을의 농토를 지키기 위해 마을 사람들은 골지천 한가운데 섬처럼 뜬 지형에 느릅나무, 비술나무 등을 심고 숲을 가꿨다. 유속이 빨라지는 곳에 숲을 가꾸면, 숲이 물의 급작스러운 흐름을 저지해 토양의 유실을 막고, 유속까지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조상들은 알고 있었다. 물길이 곧게만 나지 않는 것은 유속이 지형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하천들이 주로 S형이나 구불구불 곡선형으로 흐르는 것, 그리고 곳곳에 습지를 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습지가 사라지면 유속의 변화가 생기고, 강 주변에 전에 없던 침식이 생기는 것 또한 같은 이유다.

커다란 느릅나무들이 즐비한 미락숲의 면적은 3만3천 제곱미터. 숲이 조성된 연도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이곳의 나무를 베어 골지천에 다리를 놓았고, 새마을 운동으로 놓인 시멘트 다리의 비용을 나무를 베어 갚았다는 이야기로 어림짐작해 볼 수 있다. 홍수와 토양유실을 막아주는 미락숲은 마을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존재다. 2002년 태풍 루사로 숲이 망가졌을 때, 마을 사람들은 숲을 다시 정상으로 되돌려놓는 일에 힘을 모았다. 이 마을 어른들에게 이 숲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 오롯이 담긴 곳이자, 언제까지나 마을사람들의 피서지, 휴식처로 사랑받아야 할 곳이기 때문이다.

미락숲은 특히 오토캠핑을 즐기는 이들 사이에 입소문이 난 곳이다. 아름드리 느릅나무가 숲을 이룬 독특한 풍광과 그 숲 속으로 드리운 청명한 그늘, 잔잔히 흐르는 맑은 골지천, 급수대와 화장실 등 갖추어진 편의시설은 오토캠핑을 하기에 적격이다. 게다가 성수기만 아니면 이 아름다운 숲을 독차지할 수 있을만큼 호젓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오토캠핑이 아니어도 좋다. 돗자리 하나 펴놓고 느릅나무 그늘에 앉아 흘러가는 물소리만 듣고 있어도 충분하다. 찌는듯한 더위와 답답한 세상살이를 모두 잊을 만큼 꾸미지 않아 더 매력적인 자연이 그곳에 있다.

위치: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낙천리
함께 관람하면 좋은 곳: 강원도 산소길, 구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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