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순남 안동 국학원장
국학원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04년 6월 국학원전당의 개원식 때부터이다. 그 해 4월 단월드 신입회원으로 등록하여 수련을 하던 중 원장님의 권유로 국학원 개원식에 참석했다. 온 가족 나들이 가듯 가벼운 마음으로 천안 국학원에 처음 도착했는데 넓은 잔디밭에 대형 스크린을 띄우고 국학원 개원식 현장을 보여주었다. 인원이 너무 많아 4층 대강당엔 들어가지 못하고 잔디밭에서 중계방송을 보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뭔지 자세히 알진 못해도 중요한 현장에 있단 느낌을 가졌던 것 같다.

놀라운 건 단월드라는 명상 기업이 돈을 모아 국학원을 적극 후원한다는 점이었다. 정부 주도가 아니라 민간에서 국학원을 설립하고 교육하고 있단 사실이 또한 신기했다.

이후 그 좋은 느낌으로 단월드 수련을 열심히 하면서 민족혼 수련을 받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전류에 감전된 듯한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깊은 명상 중에 내가 독립군이 되어 만주벌판을 헤매며 동지들을 규합하여 독립운동을 하고 독립자금을 모으는 장면을 보았다. 수련이 끝나고도 그 느낌이 너무나 생생하고 가슴이 아파서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민족혼 수련을 통해 내가 이 시대에 다시 태어난 민족정신 광복군임을 깨닫게 되었고, 선조들이 못다 이룬 민족정신 광복의 꿈을 내가 이 시대에 지금 이루어야겠다는 각오를 세웠다.

그 때부터 국학원 후원을 하게 되었다. 2007년부터는 남편과 함께 각각 매월 10만원씩 꼬박꼬박 기부를 하며 국학원에 대한 사랑을 더욱 키워왔다. 아이 둘을 키우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하지만 국학원을 위해 기부한다는 자긍심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환희심으로 내 가슴을 불타게 했다.

그리고 안동 지역에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신문화 철학인 홍익정신을 알리고 천부경을 알리는 국학운동을 확대해나갔다. 뇌활용행복만들기 운동본부를 만들어 활동하고, 새벽마다 무료 공원 수련지도를 통해 지역민들의 건강을 도모하는 국학기공체조를 보급하기도 했다. 또 교사 대상 뇌교육연수회를 해마다 열고, 학부모 대상 자녀교육 강좌도 열었다. 여성 독립운동가 김락 여사를 주제로 한 연극 ‘민족의 어머니 김락 열사’를 우리 손으로 직접 대본을 쓰고 회원들이 배우가 되어 무대에 올렸다. 이 연극은 무려 10회나 무대에 올려 안동 시민들의 민족혼을 깨우는 데 일조를 했다. 2009년 안동독립운동기념관에서 실시한 안동민족혼 수련에서 ‘김락’ 연극을 첫 상연을 했는데 김락 열사 후손들이 찾아왔다.  어린 자녀들의 손을 이끌고 할머니 연극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찾아와 큰 감동을 받고 돌아가던 모습이 생생하다. 이러한 활동을 체계화하기 위해 안동국학원을 설립하기로 하고 2010년 안동세무서에 안동국학원을 등록하였다.

2011년 3월15일 단군왕검께서 돌아가신 어천절에 안동시민회관에서 안동의 독립운동가들을 조명하는 학술행사를 했다. 특히 임청각의 주인으로 대소가를 솔가하여 만주로 망명,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까지 지내시며 독립운동에 온 몸을 바치셨던 석주 이상룡의 가문을 조명하는 학술대회를 열어 큰 관심을 받기도 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안동국학원은 민방위교육에서 예절과 국학에 대한 강의를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안동은 전국에서도 가장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배출한 곳이고 ‘단군세기’를 쓰신 이암 선조의 정신이 절절히 스며있는 곳이다. 생채기투성이인 채로 먼지 속에 묻혀 있는 한국의 고유한 정신문화-홍익정신을 다시 꺼내어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안동에 걸맞게 세상에 널리 알리는 활동을 6월 안동국학원 사무실 개원과 함께 더 열심히 펼쳐나가고자 한다.

사회가 나날이 삭막해지고 인성교육이 무색해진다고 하지만 우리 선조들의 위대한 정신문화를 오늘에 맞게 잘 가공하여 알려주고 자신의 뿌리에 대한 자긍심만 심어준다면 요즘 아이들도 얼과 혼이 바로 선 사람이 될 것이다. 이 사회와 국가와 지구를 위해 꼭 필요한 인재로 자라날 것이라 확신한다. 그때까지 국학원에 대한 사랑, 국학 활동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