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희 서울 상경초등학교 교사는 스승의 날을 맞아 6학년 4반 교실에서 제자들에게 선물을 주는 ‘영혼의 선물주기’ 이벤트를 열었다. 이날 학생들은 꿈의 수첩을 받았다.

오늘은 15일, 스승의 날이다. 누구나 학창시절 잘했다고 격려도 해주고 혼도 내주던 고마운 선생님이 떠오르게 마련이다. 선생님께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고 편지와 선물을 준비해가는 제자들의 모습이 스승의 날 풍경이었다.

그런데 서울 노원구 상경초등학교 6학년 4반 교실에선 오히려 교사가 제자들에게 선물을 주는 이색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담임인 김진희 교사의 가슴에는 카네이션 꽃이 하나 있을 뿐 반 어디를 둘러봐도 선물꾸러미를 찾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오늘이 ‘스승의 날’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오늘은 스승의 날이에요. 여러분을 위해 선물을 준비했어요!”

아이들은 서로 쳐다보며 무슨 선물을 줄까 함박웃음을 짓는다. 김 교사가 준비한 선물은 문방구에 쉽게 살 수 있는 수첩이었다.

김 교사가 매년 스승의 날에 동참하는 이벤트, ‘영혼의 선물주기’. 그가 소속한 뇌교육실천교사연합(회장 고병진)이 1998년부터 14년째 전개하고 있는 캠페인 중의 하나다.

그는 영혼의 선물을 만나기 전에 스승의 날을 앞두고 아이들에게 선물 가져오지 말라고 매일 편지 쓰고 이야기하는 것이 일이었다. "내가 스승이라는 느낌도 들지 않는데, 아이들이 스승이라고 선물을 주면 부담스러웠다"고 고백했다.

제자의 꿈이 이뤄지기를

▲ 나의 꿈은 무엇일까? 스승의 날을 맞아 영혼의 선물주기 행사가 열린 서울 상경초등학교 6학년 4반 교실
김 교사는 제자들의 이름을 한 명씩 불러주고 다가가 수첩과 편지를 줬다. 아이들은 조막만한 손으로 편지를 받고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읽었다.

꿈의 수첩은 어떤 의미일까? 편지지를 살펴보니, “존 고다드가 127개의 꿈의 목록을 적고 그 꿈을 이루어가듯이 제자들도 이 꿈의 노트를 적고 그것을 이루어가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어 교사의 안내에 따라 수첩을 받아든 아이들은 자신이 이루고 싶은 꿈들을 적었고 한명씩 발표하기 시작했다. ‘방송국 PD, 교사, 기관사’ 등의 직업도 있었고, ‘무전여행, 수락산 등반, 파리로 신혼여행’ 등의 소망을 발표한 아이들도 있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발표를 듣고 두 눈을 바라보며 꼭 이뤄질 거라고 격려를 보냈다. 아이들도 서로의 꿈을 들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마치 꿈이 오고가는 ‘시장’ 에 온 느낌이었다.

발표가 끝나자 아이들은 잠시 눈을 감고 ‘자신이 적은 꿈이 이뤄진 모습’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명상을 통해 꿈을 체험해보는 시간. 교사의 안내에 따라 아이들은 제법 진지하게 임했고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신나는 음악이 나오면서 ‘우리 모두의 꿈이 이뤄졌다’고 말하자 모두 만세를 외쳤다.

참 스승이 되기 위해 노력할게

스승의 날, 영혼의 선물주기는 이렇게 끝났다. 김 교사를 복도에서 만나 언제부터 준비했는지 물어봤다.

“처음에 무엇을 할까 고민하고 이것을 하면 좋겠다고 결정하죠. 그것(수첩)을 주문하고 일주일 기다려요. 또 포장하고 아이들에게 써줄 글을 하나하나 쓰다 보면 거의 한 달이 든다고 봐요. 4월부터 고민하고 준비했어요. 어떻게 할까 어떤 마음을 담을까? 어떻게 이야기해줄까?(웃음)”

그는 꿈의 수첩에 대해, “요즘 아이들은 학원 가랴 공부하랴 하고 싶은 것이 없어요. 생각할 겨를이 없는 거죠. 꿈의 수첩은 나를 기쁘게 하고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기회를 가져보라는 거예요. 구체적인 꿈을 가진 아이들도 있어요. 그런데 그 꿈이 나만을 위한 것이냐 아니면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꿈이냐고 물어보면 꿈을 다시 생각하게 하고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스승의 날만 되면 부담스러웠던 김 교사도 이날 행사를 마치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며, “앞으로 내가 너희들의 스승이 되겠다. 평생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는지 기도해주고 잘 자라기를 계속 바란다. 그러한 마음을 전달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편지 전문]

사랑하는 얘들아, 가슴 뛰는 큰 꿈을 품어라

▲ 김진희 교사, 스승의 날의 주인공은 제자들에게 돌렸다.
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나를 이렇게 성장시켜주신 소중한 스승님들을 떠올리며 소중한 너희들 모습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편지를 쓴다. 올해는 시작부터 선생님에게 교사가 되기를 잘했다는 뿌듯함 느꼈던 해라 좀 특별한 해다. 지난달에 제자 두 명이 선생님을 찾아왔단다. 8년 전 5학년이었을 때 가르쳤던 제자인데 둘 다 서울교대에 다니고 있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해 같이 공부했던 한 명은 교원대에 다니고 있다더구나. 그런 얘기를 듣는 순간 정말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았다.

제자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가 아니라 나와 같은 이 길을 나의 제자가 걷게 되었다는 게 너무 기뻤다. 그래서 아무에게나 막 자랑하고 싶었지. 만나고 난 다음날 너희들에게 선생님이 자랑하듯이 얘기했을 거야, 아마. 기억나지?

이렇게 어른이 되어 찾아오는 제자들을 보며 선생님은 점점 확신하게 되는 게 하나 있다. 아무리 문제가 많고 말썽을 부리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다 자신의 몫을 열심히 찾아가게 된다는 것. 그것이다. 그래서 너희들에게 이제는 자신 있게 이야기해줄 수 있다.

“괜찮다, 다 괜찮다. 실망하지 마라. 지금 너희들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다. 너희들 안에 보석 같은 마음이 무한한 가능성이 있단다. 걱정마라. 천천히 그리고 포기하지 말고 너희의 진짜 모습을 찾아가면 된다. 네가 얼마나 소중하고 멋진 사람인지 알게 되면 정말 깜짝 놀랄 거야. 네가 그걸 발견하도록 선생님도 도와줄게. 우리 힘내자.”라고 말이다.

사랑하는 얘들아.

솔직히 말하면 선생님도 힘이 들 때가 있단다. 너희들을 가르치면서 다투고 자기만 생각하는 너희들 모습에 기운이 쭉 빠질 때도 있고, 선생님의 마음을 몰라주는 사람이 밉고 답답할 때도 있다. 어떻게 가르치는 일이 늘 기쁘고 즐겁기만 하겠니? 하지만 너희들이 돌아간 이 시간 이렇게 빈자리, 빈 교실에 있다 보면 오늘 하루의 일들이 스쳐간다. 왜 좀 더 눈 마주치며 어깨 두드려주지 못했을까, 바쁜 일 제쳐두고 너희들과 종알종알 이야기 하지 못했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지.

선생님은 너희들이 먼 훗날 올해 이 한해를 기억할 때, 가장 행복하고 빛나는 한 해였으면 좋겠다. 자신감이 없었던 사람이라면 자기 안의 자신감을, 친구들과 잘 못 지냈던 친구라면 자신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를, 남들보다 못하는 게 많다고 생각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특별한 재주를, 알게 되고 찾아내기를 바란다. 마차니 3월 첫 만남에서 우리가 보물찾기를 했던 것처럼 말이지.

오늘, 스승의 날, 선생님은 너희들에게 이 바람을 말해주고 싶었다. 선생님이란 잘못했을 때 혼내주는 사람이고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는 사람이기만 한 게 아니라 너희 안에 보물 같은 마음을 닦아내주고 함께 찾아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우리가 이렇게 스승과 제자로 만나게 된 것은 무언가 특별한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선생님도 너희들과의 만남을 소중하게 기억하고 싶다. 그래서 오늘 너희들에게 꿈의 노트를 주려고 한다. 존 고다드가 127개의 꿈의 목록을 적고 그 꿈을 이루어가듯이 제자들도 이 꿈의 노트를 적고 그것을 이루어가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 도전하자. 꿈을 이루는 사람은 그 꿈을 이룰 능력과 재주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 꿈을 꼭 이루고 싶다는 소망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다. 우리 이 꿈의 노트에 이런 꿈들을 적어보자. 나의 이 꿈이 이루어지면 나와 우리나라와 세계가 행복해지는 그런 꿈들을 말이다. 선생님에게도 꿈이 있다. 나와 만나는 제자들은 누구나 자기 뇌의 무한한 가능성을 깨닫게 되고,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가며 세상을 행복하게 만드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선생님의 꿈이다. 이 꿈의 노트가 그걸 이루어줄 거다.

우리 뇌는 상상하는 것을 이루는 그런 큰 힘이 있단다. 소중한 너희들 뇌에게 이렇게 노래를 들려줄게. 걱정보다 기대로, 한숨보다 웃음으로, 절망보다 희망으로, 넌 할 수 있어, 넌 할 수 있어, 사랑해~♬

2012년 5월 15일 스승의 날에 김진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