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민족 대대로 전래한 선도수련은 기를 터득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기를 터득하는 것은 얼을 찾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첫 단계가 기를 터득하는 단계이고, 그 다음 단계가 얼을 되찾는 단계이다. 얼을 되찾고 난 다음 단계는 즐기는 단계이다. 즐기는 것, 이것이 바로 예로부터 우리가 말해 온 풍류도이다.

이 풍류도 속에는 대단히 깊은 철학이 담겨있다. 풍류라고 하면 먹고 노는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풍류도는 삶 자체를 송두리째 즐기는 도(道)인 것이다. 진정으로 즐기기 위해서는 너와 내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 나와 온 세상이, 나의 삶이, 나와 우주 만물이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즐길 수가 있다. 그렇지 않을 때 전혀 즐기는 것이 아니다.

'나'라는 관념이 아직 거기에 있으면 그것은 즐기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세상의 고통을 잊기 위한 나만의 쾌락에 지나지 않는다. '나'가 사라질 때 거기 진정한 즐김이 찾아온다. 그래서 예로부터 성인들은 내가 없어진 상태, 무아지경, 내가 죽어 거듭나는 상태에 대해 한결같이 말해 온 것이다. ‘나’라는 관념은 고행을 한다고 해서 쉽게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나'라고 하는 작고 폐쇄된 울타리는 큰 얼을 되찾으면 저절로 눈 녹듯이 사라진다. 그러한 상태에서 찾아오는 것이 바로 풍류도이다.

풍류도란 이웃이 잘 되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고, 또 잘 되게 해 주기 위해서 노력하고, 노력한 결과가 만족스러울 때 즐기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풍류도 속에는 부처의 즐거움과 보살의 즐거움이 함께 들어있는 것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파하는 것, 남이 잘 되면 속상해 하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평화와 자유와 생명이 찾아올 수 없다. 왜 이 세상에 미움과 폭력과 파괴가 판을 치는지 깊이 생각해 보았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 모두가 삶을 진정으로 즐길 줄 아는 풍류도를 잃었기 때문이다.

남을 위하고 남이 잘되는 것을 보고 즐거워 할 줄 아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남이 잘되는 것을 보고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이 기본적으로 되어야 한다. 그렇게 안 되는 이유는 '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이란 다른게 아니라 나를 닫으면 남이 되는 것이다. 나를 닫아놓은 사람한테는 모두가 다 남일 수밖에 없다. 우리말에 담긴 이 깊은 철학을 보라. 나를 닫으면, 사각형(ㅁ)으로 나에다가 '암'하고 닫아버리면 바로 '나암, 남'이 된다. 나를 닫은 사람, 나를 가둔 사람한테는 모두가 남이기 때문에 남이 잘 되면 시기하고 질투한다. 

반면에 나를 그대로 열어놓은 사람에게는 모두가 다 나다. 모두가 다 나이기 때문에 내가 잘 되면 기뻐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억지로 애써서 기뻐하고 마음 좋은 척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공부는 기를 터득하고 얼을 찾고 그 다음에는 즐기는 공부다. 그때 이 세상은 정말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다. 좋은 세상을 위해서는 지식이나 사상이나 종교보다 이러한 깨달은 마음, 양심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 민족의 조상인 한웅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너의 머릿속에는 한얼이 내려와 있고 너의 몸과 팔다리에는 천지의 신령스러운 기운이 감돌고 있다." 기를 터득한 사람은 천지의 신령스러운 기운을 느낀다. 그리고 얼을 찾은 사람은 한얼이 머릿속에 내려와 있다는 말을 깊이 이해한다. 그런데 기를 터득하지 못한 사람은 훌륭한 학자나 종교인이라 해도 이 말씀의 의미를 도통 모른다.

그리고 한웅께서는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한얼 속에 한울 안에 한알이니라." 이 말에 대해 깊이 명상하면 우주의 심오한 이치가, 삶의 깊은 철학이, 모든 깨달음의 핵심을 알 수 있다. 얼은 마음을 뜻한다. 민족의 얼, 개인의 얼, 얼은 나눌 수가 없다. 얼은 쪼갤 수가 없다. 얼은 우주전체의 본질을 말한다. 이 얼은 시작도 끝도 없는 본체를 말한다. 모든 존재의 본래 자리, 나와 여러분이 잠시도 쉬지 않고 들락날락하는 그 자리, 테두리도 없이 무한히 넓은 우리의 본래 면목을 뜻한다.

삼일신고에서는 한얼(하늘)을 이렇게 정의했다. "저 파란 창공이 하늘이 아니며, 저 까마득한 허공이 하늘이 아니다. 하늘은 얼굴도 바탕도 없고 시작도 끝도 없으며, 위아래와 둘레 사방도 없고, 겉도 비고 속도 비어 어디나 있지 않은 데가 없으며, 무엇하나 싸지 않은 것이 없다."

울은 말 그대로 울타리다. 집에는 집의 울이 있고, 나라에는 나라의 울이 있으며, 지구에는 지구의 울, 우주에는 우주의 울이 있다. 한울은 말 그대로 한 울, 전체의 울을 말한다. 전체가 다 한울안에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알이라고 했다. '나'라고 하는 이 존재는 전체이면서 또 하나인 것이다. 이 하나는 홀로 떨어져는 존재하는 하나가 아니라, 전체와 연결되어 전체 속에서 숨 쉬는 하나인 것이다. 전체와 떨어져 있을 때 하나는 절대 존재해 나갈 수가 없다. 전체와 연결된 하나일 때 그 하나는 진정한 하나로서 존재할 수가 있다.

한알로만 존재하면 울도 모르고 얼도 모른다. 그러니 모두가 남남이다. 나를 둘러싼 게 남이다. 처음에는 보호받을 줄 알고 나를 싸는데 나를 싸버리니까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고 순환이 안 되어 온갖 병에 찌든 삶을 사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대부분 자기라는 울타리를 탁 쳐놓고 갇혀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서 사랑이 없다, 진리가 없다, 생명이 없다고 한탄들을 하고 있다. 자기 주위에 울타리를 쳐 놓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너희는 한얼 속에 한울 안에 한알이니라." 이것을 알면 그것이 바로 천지인이고 그것이 바로 견성(見性)이다. 이것을 모르면 바깥에서 아무리 찾아도 소용이 없다. 거기에 바로 조화가 있을 수 있고 사랑이 있을 수 있다.

내가 너를 가두어 놓을 때, 내가 나를 닫아놓고 남을 볼 때 그 사람이 바로 남이고, 남이 나를 볼 때 남이 되는 것이다. 우리말에는 깨달음의 진리가 기본적으로 깔려있다. 도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에 우리말은 쉽다. 진리는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쉬운 것 속에 담겨있다.

21세기 인류의 새로운 문명시대를 이끌어갈 주인공은 풍류도인이다. 도통군자가 바로 풍류도인이요, 홍익인간이다. 앞으로는 모든 생명을 살리는 즐거움으로 사는 풍류도인들이 많이 나올 것이다. 그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이 바로 정신문명이요, 이화세계가 될 것이다.

 

 

 

이 승 헌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총장
국제뇌교육협회 회장
국학원 설립자 www.ilchi.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