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여학교 산술교사가 학생들에게 ‘조선 사람은 고추를 함부로 먹으니까 머리가 나빠져서 성적이 나쁘고, 설탕은 문명한 나라일수록 많이 먹는데 그 중에 일본이 제일 많이 먹어 머리가 좋다’라고 말했다.”

1919년 9월 30일 자 독립신문에 실린 기사다. 고추를 야만의 상징, 설탕은 문명의 상징으로 조선인과 일본인간의 우열감을 조장했다.

설탕은 조선왕실의 귀한 ‘약재’로 쓰여

그렇다면, 문명의 상징인 '설탕' 시장은 언제부터 형성되었을까? 아이스크림, 과자 등 제과시장에 필수적인 '설탕' 시장은 해방 이후가 아니라 개항 초기였다는 주장이 처음으로 제기됐다.

지난 20일 한국사연구회가 주최한 제286차 월례연구회에서 이은희 씨(연세대학교 사학과 박사수료)가 발표한 '일제ㆍ해방 후 설탕 소비시장의 형성'이라는 논문에서다.

그동안의 연구는 ▲미국의 원조로 국내 설탕수요가 급증하여 서구적 식생활문화로 변화된 점 ▲주한미군 영향과 월남한 피난민 영향으로 커피나 홍차를 파는 다방이 급속하게 보급되어 설탕수요가 크게 증가했던 점을 들었다.

이에 대해 이 씨는 "설탕은 조선왕실에서 극히 소량만 사용하는 약재였다."라며, "개항 이후 세계자본주의 체제로 편입되면서 설탕 소비시장이 만들어지고 확대되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매일신보, 동아일보, 조선중앙일보, 시대일보, 조선일보 등 당시 주요 신문기사를 근거로 제시했다.

서구화되려면, 조선음식은 버려라

특히, 국내에 설탕 소비시장이 만들어진 배경으로 '서구 중심주의'를 들었다.

"한말 일본 탈아입구론(脫亞入區論) 영향을 받은 문명 개화론자들은 서구가 강대국이 된 이유는 국민이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국민이 건강하려면 위생적이고 영양가 높은 음식을 섭취해야 하는데 서구인들이 많이 먹는 설탕을 칼로리가 높아 에너지를 공급하는 영양식이므로, 설탕을 많이 먹는 국가일수록 체력이 좋아져 문명화, 근대화되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서양과자, 서양화된 일본 과자가 과자의 표준이 되었다. 조선음식은 영양가치가 떨어지고 비과학적이며 요리법이 정체되어있어 개량대상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식생활 개량논의는 1920년 일본이나 서양선교사에게 서양학문을 익히 의사들과 일본에서 가정과를 다닌 여성들이 주도했다. 방신영(方信榮), 이용기, 손정규(孫貞圭), 임숙재(任淑宰) 그리고 어린이날을 제정한 방정환(方定煥), 세전의사 윤일선(尹一善), 경성의전 박승일(朴昇一)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조선음식의 문제점으로 ▲ 다른 나라의 음식에 비해 영양가치가 떨어진다 ▲ 비과학적이다. 양념을 표준화 개량화하지 않고 너무 많이 사용하고 요리방식이 번잡하다. 이것이 조선인 영양부족의 원인이다. ▲ 요리법이 고정되어 틀에 박혔다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