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 HK(인문한국)지원 사업단인 통일인문학연구단(단장 김성민 교수, 철학)은 26일 건국대 새천년관 우곡국제회의장에서 '코리언의 역사적 트라우마와 치유'를 주제로 석학 초청 강연 및 제11회 국내 학술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인권학자인 서 승 일본 리츠메이칸(立命館)대 석좌교수(67)가 '나의 삶-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하여'를 주제로 석학 초청강연을 했으며, 남북주민과 탈북자, 고려인 디아스포라, 재일조선인 등 다양한 '코리언'들의 역사적 트라우마와 치유에 대한 학술 발표 및 토론이 진행됐다.

▲ 서 승 일본 리츠메이칸(立命館)대 석좌교수. <사진=건국대>

 

서 승 석좌교수는 일본 식민지배와 한국전쟁, 군사정권 시절 고문과 투옥 등 식민트라우마와 분단트라우마, 국가권력트라우마로 온몸으로 겪은 삶과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노력 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일본의 과거청산이 아직까지 진행되지 않는 것에 대한 강력히 문제제기를 했다.

서 교수는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 당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는 한국전쟁 이후 이어져온 한반도에서의 전쟁상태를 종결시키고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을 실현해, 일본 국내외에서의 다양한 과거의 국가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문제에 대한 진상규명과 권리회복을 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식민지지배가 반인류적 범죄라는 명확한 국제 합의를 만들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본인들의 의사와 관계 없이 한 민족의 운명을 송두리째 강제로 결정한다는 점에서 식민제도는 노예제 못지 않은 반인륜적 범죄"라며 "아직 세계에 남아 있는 인종차별과 제노사이드의 근원에는 문명과 야만을 구별하는 식민주의의 잔재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본래 농촌경제학을 전공했지만 감옥 생활을 하면서 국가 폭력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동아시아의 인권과 평화 문제에 집중하게 됐다. 인권의 보편성이 동아시아의 사회ㆍ역사적 맥락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식민주의 경험이 동아시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밝히는 것이 연구의 주제였다. 그는 인권을 국가 폭력에 대한 대항권으로 해석한다. 그런 인권이 심각하게 위해 받는 경우가 식민 지배나 전쟁, 또는 제노사이드(민간인 학살)처럼 개인이 국가 폭력에 노출되는 상황이다. 그래서 인권 문제를 푸는 대전제는 평화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일동포 3세로 교토(京都)에서 태어난 그는 한일 국교정상화 반대 운동으로 재일동포 사회가 들끓던 1965년 대학에 입학했다. 일본의 68혁명인 전학공투위(전공투)가 불붙던 해 한국 유학 생활을 시작했고, 서울대 대학원 유학생 시절인 1971년 2월 동생 서준식씨와 이른바 '재일동포학원침투간첩단사건' 주모자로 몰리며 국가보안법의 올가미에 걸려들어 19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스무 살 때 고국 땅을 처음 밟았고 당시 한일회담 반대 운동을 하고 있던 한국 대학생들을 보고 적지않은 충격을 받았다. 우리말도 몰랐던 그는 재일동포의 정체성과 당시 남북현실에 대한 모순 등을 고민하게 됐고 우리 문화와 역사를 배우려 서울대에서 공부하던 차에 간첩으로 몰리게 된 것이다.

서 승 석좌 교수의 얼굴은 경제성장 신화에 도취되어 우리가 겪어온 과거의 상처와 아픔을 잊은 채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 한국인들에게 현대사의 고통을 다시 일깨우고 있다. 그는 보안사의 모진 고문과 사건 조작에 저항하기 위해 수사 과정에서 기름 난로에 몸을 던졌다. 천신만고 끝에 목숨을 건졌지만 전신 화상을 입었다. 모진 고문과 화상을 입은 그의 사진은 당시 군사독재의 인권 상황을 세계에 고발하는 상징이었다. 한국 정부의 폭압성을 상징하는 자국으로 세계인들의 뇌리에 각인됐다.

출옥 후 학자로서 비교인권법을 강의하며 평화운동에 참여해왔으며 1998년부터 일본 리츠메이칸대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가 출소 후에 쓴 '옥중 19년'이라는 책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1999년)에야 한국에서 출간됐다. 지난해에는 국가에 의해 억울한 죄명으로 옥살이를 하고 고문 피해를 겪은 고문생존자들이 만든 '진실의 힘' 재단이 2011 UN구문피해자 지원의 날에 수여하는 제1회 '진실의 힘 인권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