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기에 새 학기의 설렘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새 친구에 대한 기대였습니다. 그 설렘에는 '새로운 친구들에게 내가 멋진 친구로 보일 수 있을까?' 하는 바람과 흥분이 함께 했던 것 같습니다. '새 짝은 누구이고, 내 친한 친구는 같은 반이 될까? 어떤 괴짜 친구를 새로 알게 되어 흥미진진한 놀이를 하게 될까?… '하지만 요즘 청소년들의 '왕따'이야기를 듣노라면 새 학기가 시작되어도 끝나지 않을 괴롭힘에 대한 두려움과 무력감으로 맘 조일 어린 친구가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려옵니다. 무한 가능성을 가진 아름다운 시절의 그들에게 멋진 영화를 하나 선물하고 싶습니다.  

기적을 바라는 소년
<리틀 러너>의 랄프는 14세 소년입니다. 가톨릭 학교를 다니는 그에게 사춘기의 주체할 수 없는 성적 민감성은 엉뚱한 행동을 자극하여, 늘 교장 신부님에게 불려가 벌을 받기 일쑤입니다. 친구들도 그를 변태로 놀려댑니다. 랄프에게는 가족이 어머니뿐인데 그마저 코마 상태가 되어 고아신세가 될 상황입니다. '엄마가 깨어나려면 기적이 필요하다'는 말에 그는 기적을 만들기 위해 ‘보스톤 마라톤 우승’에 도전합니다. 그렇게 어린 나이로 마라톤 출전한 일도 전에 없었거니와 체력도 부족하고 훈련도 안 된 그가 그런 큰 경기에서 우승이라니 전혀 가망이 없는, 그야말로 기적을 바라는 도전일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교장 신부는 ‘기적을 추구하는 것’ 자체를 신성모독이라며 제지까지 합니다. 하지만 이 소년은 ‘나는 보스톤 마라톤에서 우승을 할 것이고 그러면 어머니가 깨어나는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는 신념만 의지한 채 매일 쉬지 않고 노력합니다. 비웃음을 날리던 사람들도 불가능을 향해 하루도 빠짐없이 매진하는 그의 열정에 슬슬 눈길을 주고 그를 달리 보기 시작합니다. 마침내 교장의 엄한 금지를 무릅쓰고 경기에 나간 그는 정말 훌륭한 경기를 펼치지만, 결국 2등을 하고 맙니다. 우승이라는 기적을 이루지 못한 그의 어깨는 푹 쳐져 돌아옵니다. 그런데 그를 놀려대던 친구들이 그를 왕따가 아닌 영웅으로 환영합니다. 그리고 한 달 후 엄마도 눈을 뜹니다.

친구가 나를 믿어줄 때
기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하다는 세가지, 신념, 결백, 기도. 그 중 오로지 신념 하나는 확고해 보이던 랄프도 큰 시련이 찾아오고 철저히 혼자라고 느껴지자 맘 한 구석에 숨겨 놓았던 불신이 올라와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모든 도전을 포기하려 합니다. 이때 포기를 막고 힘을 주는 이가 있으니 바로 절친(친한친구) 체스터입니다. ‘나 이제 마라톤 안 나가.. 나갈 이유가 없어..’라 하자 친구가 말합니다. ‘나가야 돼!.. 왜냐면 내가.. 니가 우승할 것을 믿으니까!’ 그리고 그 친구는 랄프의 경기를 온 학교에 중계하기 위해 방송실을 점령하는 엄청난 일을 벌입니다. 덕분에 모든 친구들과 선생들이 경기 전 과정을 함께하며 온 맘으로 응원하고, 랄프의 아픔에 아파하며, 그의 외로운 싸움에 진심어린 박수를 보내게 됩니다. 

랄프의 신념(나는 할 수 있어)은 절친 체스터의 신뢰(너를 믿는다)로,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신임(자랑스럽다)으로 확대되는 것을 보며, 역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 나 자신을 믿고 내 마음을 분명히 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믿을 만한 친구가 된다는 것은 그 누군가에게 믿을 수 없는 일을 하게끔도 하는구나’ 하는 생각과 ‘누군가 소중한 꿈을 포기하려 할 때 그를 믿어주고 등 떠밀어 주는 마지막 친구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더군요.    

▶전재영: 영화프로듀서 / 황금화살 대표
대표작품 <박하사탕> <사랑따윈 필요없어>

 

[참고: 브레인비타민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