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래혁 한국뇌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사진=전은경 기자)

 

1. 뇌를 잘 아는 교사, 뇌를 잘 쓰는 아이

최근 사회적으로 부각되고 있는 학교폭력에 관한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접근해야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많아지고 있다. 아쉬운 것은 폭력의 폐해만 드러나며 단순히 가해자의 폭력성과 피해자의 아픔으로 이원화되어 결론지어지는 구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청소년기는 인간 뇌의 두뇌발달단계상 가장 광범위한 변화가 두드러지게 일어나는 시기이며, 그만큼 가정과 학교의 교육적 환경이 중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또한, 지나친 입시위주의 스트레스 상황 속에서 정서함양이 뇌상태에 가장 민감하게 미치는 때에, 핵가족화와 맞벌이, 결손가정에 따른 가족 간 유대관계의 하락, 디지털문명에 노출된 컴퓨터 세대문화, 성적위주의 학습환경 등 정서교육의 양과 질이 과거에 비해 급격히 낮아진 상황은 청소년기의 뇌발달 환경에 지극히 부정적 영향을 초래하기에 충분하다.

21세기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바로 ‘뇌’이며, 교육 분야에서도 뇌과학과 교육간 융합이 빠르게 진전되고 있는 시점이다. 뇌과학에서 자아정체감, 신체활동, 정서, 인지기능은 독립적 요소가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필연적인 관계성을 가진다. 특히, 청소년기의 정서활동은 건강과 학습에도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오늘날 학교폭력 문제에 있어 중요한 것은 폭력 자체가 아니라, ‘폭력’이라는 감정분출에 따른 행동이 일어나는 청소년기의 뇌의 특성에 대한 이해이며 그 근본적 가정 및 교육환경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일 것이다. 뇌를 잘 아는 교사, 뇌를 잘 쓰는 아이를 위한 인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2. 청소년기의 두뇌발달 특성에 대한 이해

그럼, 청소년기 때 이루어지는 뇌의 신경학적 변화들은 어떠한가. 어떻게 이 신경학적 변화들이 정서 조절, 위험부담 행동, 의사결정, 그리고 독립심 발달과 같이 청소년기에 나타나는 뚜렷한 행동 변화에 영향을 주는 것인가. 그리고 이 발달 시기에 보이는 변화들이 배움과 가르침, 즉 교육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 지에 대한 이해가 먼저 필요하다.

20세기 후반에 들어 밝혀지고 있는 뇌과학적 연구에 따르면 청소년기의 뇌에도 유아기에 버금가는 변동이 일어난다.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NIMH)는 1991년부터 MRI(자기공명영상촬영장치)로 청소년의 뇌발달을 살핀 연구결과, 3세에서 25세에 이르는 실험대상자 2,000여명의 뇌를 2년마다 촬영해 대뇌피질의 두께를 측정했다.

연구결과 대뇌피질 가운데 회백질은 뇌의 부피성장이 끝나는 10대 중반에 두꺼워졌다가 10대 후반에 얇아진다. 회백질은 신경세포가 모여 있는 부분인데 시냅스가 많으면 두껍고 적으면 얇다. 이처럼 청소년기 뇌에는 대대적인 신경망 작업이 일어나면서 유아기 못지않게 한 단계 발달하는 과정을 겪는다. 감각정보를 처리하는 영역은 10세 전후부터 회백질이 얇아졌지만, 판단이나 의사결정 같은 고차원적 사고를 담당하는 부위는 10대 후반에 가서야 회백질이 얇아진다.

따라서, 청소년이 감각정보를 받아들이는 능력은 성인과 비슷하지만 이성적 판단을 내리는 능력은 떨어진다. 감정과 충동을 제어하는 영역이 아직 매끄럽게 발달하지 않아 매우 민감하고 외부환경에도 영향을 많이 받는다. 즉, 청소년기에는 감정과 본능에 때한 부분이 훨씬 발달해 있다.

결과적으로 청소년기의 뇌는 성인의 것과 매우 다르고 사춘기 직후에 큰 구조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또한, 청소년기는 뇌 안에 많은 호르몬들이 충만한 시기이므로 정서 형성에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10대들의 불안정한 행동은 미성숙한 전두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정서적 불안정과 잠재된 인지능력을 “날뛰는 힘 센 말” 이라고 빗대기도 한다.

3. 뇌과학에서 본 폭력과 정서문제

2000년 7월 미국 위스콘신대의 리처드 데이비드슨 교수는 사이언스지에 '뇌에서 공포, 분노 같은 부정적 감정 조절하는 기능이 저하되면 공격성을 충동적으로 폭발시킬 소지가 높다'는 이론을 내놓으면서 폭력의 뿌리는 뇌 안에 있다고 발표했다.

데이브드슨 교수는 정상적인 사람에게 부정적 감정을 일으킨 뒤 편도체의 반응을 관찰한 결과 전전두엽 피질에 부정적 감정을 억제하는 기능이 있음을 확인했다. 전전두엽 영역에 이상이 생겨 변연계와 정보 교환이 원활치 못하면 감정 반응 조절 못해 폭력적 행동을 일으키는 인간 행동 루트를 밝혀낸 것이다.

개인적 환경 요인도 폭력의 원인이다. 어린 시절 또는 학창 시절 폭력이나 학대의 피해자거나 목격자인 경우, 부모가 불화한 가정에서 자랐거나 부모가 이혼한 경우, 집안이 가난하여 불만이 누적된 경우, 유전적 결함으로 뇌 변연계나 해마가 손상된 경우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폭력을 불러오게 된다.

환경요인이 폭력을 일으킨다고 믿는 사회과학자들은 인간의 ‘폭력적인 뇌(violent brain)’를 선천적으로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폭력적 근원에는 선.후천적 뇌의 장애도 분명하다. 그리고 폭력이 뇌의 장애가 아닌 환경과 경험의 결과라고 하더라도 뇌 변연계의 반응과 신경 전달 과정은 동일하다. 전두엽 피질에 결함이 있거나, 변연계 중 해마나 편도체 기능에 문제가 생기면 폭력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또 뇌의 화학 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농도가 낮아지면 또한 폭력적 행위를 하게 된다.

대학 입시를 위한 학습위주의 교육환경도 결국 아동청소년 뇌의 스트레스 상황을 높이기 때문에 하나의 요인이다. 뇌는 유아기부터 청소년기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발달하며, 청소년기에는 감정과 본능에 때한 부분이 훨씬 발달하는데 현재와 같은 입시위주의 스트레스 상황은 아이들의 감성을 배양하고 충동을 조절하는 능력을 키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을 통해서는 감정적 뇌기능의 충족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폭력, 왕따, 약물 복용 등과 같은 비정상적인 수단을 통해 감정과 본능을 충족하려 한다. 또한, 도덕·윤리 교육을 강조하던 대가족 제도에선 가정에서 자연스럽게 감정 조절 훈련을 받았는데 요즘 어린이들은 그런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하는 것도 문제이다. 무엇보다 정서기능은 스트레스 조절, 인지학습, 자아정체감 그리고 창의성 계발과도 밀접한 연관성을 갖기 때문에 정서조절력을 키우는 것이 무척이나 중요하다.

4. 체험적 정서함양의 필요성, 명상

변화하는 가정환경과 학습 위주의 교육환경 속에서 청소년 뇌의 정서영역은 위축되거나 제대로 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교사와 학부모의 노력이 가장 우선시되어야 하지만, 학생교육의 측면에서 시급한 것은 체험적 정서함양의 교육이며 명상을 통한 정서조절력 향상도 적극적인 대안 중 하나로 검토해볼 만하다.

뇌과학은 동양의 명상(meditation)에 관한 수십년간의 연구를 통해 이미 많은 연구결과들을 제시하고 있다. 일반적인 명상의 효과는 스트레스를 줄이고, 긍정적 감정을 높이며 세로토닌 등 행복감을 주는 호르몬 분비를 향상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90년대 들어서는 뇌의 물리적 변화를 가져온다는 연구도 나오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에일린 루더스 박사 팀은 명상이 뇌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꾸준히 명상을 해온 사람 22명과 그렇지 않은 사람 22명의 뇌를 자기공명영상(MRI)으로 관찰했다. 그 결과 오랫동안 명상을 해온 사람들의 뇌는 대뇌, 기억을 담당하는 오른쪽 해마, 감정 조절을 담당하는 안와전두피질 등의 크기가 보통 사람보다 더 컸다.

국내에서도 명상을 뇌과학적으로 접근하는 연구가 늘고 있다. 서울대학병원과 한국뇌과학연구원 공동 연구팀은 명상을 규칙적으로 한 그룹이 일반 건강 그룹에 비해 스트레스 감소 및 긍정적인 정서 반응, 스트레스 조절력 등이 높다는 사실을 밝혀 2010년 국제 저명학술지 <뉴로사이언스레터>에 게재했다. 즉, 명상을 한 그룹은 일반 그룹보다 동일한 스트레스 상황에 쉽게 영향을 받지 않고 대처능력이 높게 나타났다. 긍정적 정서함양은 명상의 대표적 효과이다.

명상의 활용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는 것은 이것이 지식기반 학습이 아닌 체험적 방법론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체움직임과 호르몬 변화를 가져오는 체험은 뇌의 장기기억형성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 무엇보다, 자신의 뇌상태를 이해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명상은 선조들이 물려준 훌륭한 정신문화적 자산이자, 21세기 뇌과학이 밝혀내고 있는 선진적인 두뇌건강법이자 개발법이다.

5. 엘살바도르 뇌교육 프로젝트

2011년 중남미 엘살바도르 외교부와 국제뇌교육협회의 협약에 따라 공립학교 1곳에 한국에서 정립된 ‘뇌교육’이 도입되었다. 오랜 내전으로 인한 폭력과 약물, 정서하락 등에 처한 학교 학생들에게 3개월간의 뇌교육 프로그램을 적용하였다.

그 결과 학생들의 결석률 감소, 자신감 향상, 꿈과 희망을 갖게 되는 등 정서증진 효과가 있었다. 이와 같이 성공적으로 수행된 엘살바도르 교육원조 프로젝트는 2011년 9월 유엔총회기간 중 성공사례로 발표되었으며, 2012년 1월 유엔본부에서 개최된 ‘빈곤퇴치와 복지실현을 위한 뇌교육’ 국제회의에서 뇌교육 확대방안이 논의되었다.

6. 한국의 해피스쿨 캠페인

해피스쿨 캠페인은 뇌교육의 원리를 적용하여 폭력없는 학교, 흡연없는 학교, 뇌를 잘 쓰는 학교, 서로 통하는 학교 등 4가지 목표를 갖고 기획된 캠페인이다. 이 캠페인은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와 지역뇌교육협회가 공동으로 주관하고 있다.

2007년부터 시작된 해피스쿨 캠페인은 전국초중고 388개 학교가 협약이 체결되어 시행중이며, 협약을 맺은 학교에는 ‘행복한 학교를 만드는 뇌교육CD’가 기본프로그램으로 제공된다. 해피스쿨 뇌교육CD는 체조, 명상, 이완과 호흡, 상상과 집중 등 두뇌 상태를 조절하는 체험적 방법들로 이루어져 있다.

학교에 뇌교육 프로그램을 적용한 결과, 감정조절이 잘 안되던 아이들이 정서가 안정이 되고 싸우거나 화내는 일이 줄어들게 되고 예절바른 태도를 갖추게 되었다. 긍정적인 정서가 형성되고 자아존중감이 높아지면서 왕따, 학교폭력이 줄어드는 등 인성교육에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해피스쿨 프로그램의 실행연구 결과를 보면, 뇌교육이 자신과 타인의 정서를 공감, 인식하고 정서를 표현, 조절하는 능력인 정서지능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스트레스가 감소되며,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행동도 긍정적으로 변화한다는 것으로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