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승희의 '양귀비염지도' 공연(자료=연낙재)

K-POP 아이돌 스타가 세계적인 한류를 이끌고 있지만, 80년 전에도 세계 순회공연을 하며 한국을 알린 이가 있었다. 그가 바로 한류의 원조이자 전설의 무희, '최승희'(崔承喜. 1911∼1969)이다.

20세기를 빛낸 세계적인 무용가 최승희 탄생 100주년을 맞아 국제학술심포지엄과 영상전 등이 12월 한 달 동안 국립고궁박물관, 연낙재 등에서 다채롭게 열린다.

■ 전설의 무희, 최승희의 공연 모습을 담은 미공개 영상

먼저 최승희의 공연 모습을 담은 미공개 영상이 5일 일반인에 처음으로 공개된다고 연낙재가 밝혔다.

이 영상자료에는 최승희가 1930년대 후반 미국 뉴욕에서 신무용 '명비곡'과 '보살춤' 을 추는 모습, 전통을 소재로 한 '장고춤'과 '부채춤' 등의 영상물이 새로 공개됐다. 특히,  '풍랑을 뚫고(노사공)'는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중국 총리가 극찬한 작품이다.

연낙재의 관계자는 이번 영상자료에 대해서, "그동안 최승희의 출연작이 다큐멘터리에 삽입되는 등 단편적으로는 소개됐지만, 그의 작품 전체를 한 눈으로 조망할 기회는 없었다."라며 "최승희 춤의 미학적 특징과 가치를 탐색할 기회가 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 최승희 춤의 아시아적 가치를 논한다…韓中日 국제심포지엄

▲ 최승희와 매란방(자료=연낙재)
오는 5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개최되는 국제학술심포지엄은 아시아 춤의 근대화를 모색한 최승희의 예술적 업적을 조망한다.

1부에서는 ▲ 고승길 중앙대 명예교수의 ‘아시아 근대무용가와의 비교를 통한 최승희 춤의 예술적 위상과 성격’ ▲ 짱치(張奇) 전 중국중앙가무단장의  ‘영원한 아름다움의 表徵 - 朝鮮人 舞踊家, 崔承喜’ ▲ 한룡길 옌벤대 교수의 ‘최승희 <조선민족무용기본>의 가치와 중국에서의 전승발전’ ▲ 한경자 강원대 교수의 ‘최승희 춤의 아시아적 후원환경론’  ▲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최승희 춤의 전통과 동아시아 확장의 의의’ 등 5편의 논문이 발표된다.

2부 ‘회고와 증언’에서는 한국, 중국, 일본에서 최승희 춤의 맥을 잇고 있는 제1세대 무용가들이 참가하여 스승 최승희를 회고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중국에서는 짱치 전 중국중앙가무단장과 허명월 전 중국민족가무단 안무자가 참가하여 최승희의 창작세계과 예술혼에 대해 증언한다.

또, 일본에서 최승희 춤의 맥을 잇고 있는 백홍천 재일본 최승희무용원장은 동아시아에 전파되어 한국춤의 교과서적 동작교본으로 통하는 <조선민족무용기본>의 기법적 특징을 영상과 함께 소개한다. 한국에서는 최승희의 유일한 남성제자인 전황 전 국립창극단장 등이 참가하여 1940년대 후반 최승희무용연구소에서 춤을 체득하고 중국, 소련 등 해외공연을 다녔던 시절의 일화와 추억담을 들려줄 예정이다.

■ 영상으로 만나는 최승희의 삶과 예술

한편, 7일부터 서울 종로구 동숭동 연낙재 세미나실에서는 ‘영상으로 만나는 최승희의 삶과 예술’이 마련, 매주 목요일 영상과 음반, 사진 등 공연자료를 직접 보며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이진원, 양성옥, 성기숙 등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를 비롯하여 한경자 강원대 교수, 이송 정동극장 전문위원 등이 영상과 음반 및 공연자료를 토대로 최승희의 예술적 업적을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할 예정이다.   

■ 최승희는 누구인가?

▲ 최승희의 '명비곡' 공연(자료=연낙재)
최승희는 1911년 11월 24일 서울 출생. 서울 숙명여고를 졸업하고 1926년 경성공회당에서 열린 일본무용가 이시이 바쿠(石井漠)의 무용공연을 보고 그의 제자가 된다.  
 
최승희는 데뷔 1년도 안 돼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무용가로서 명성을 날리게 된다. 그 뒤 와세다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수학하던 안막(안필연)을 만나 결혼한다. 이후 안막은 최승희의 매니저 역할을 한다.

1937년 최승희는 미국, 유럽, 남미 전역에서 150여 회의 공연을 하고 '동양의 무희'로 이름을 알린다. 그녀의 공연 소식은 미국, 남미, 독일 등의 언론에서도 대서특필될 정도였다. 또한, 1942년과 1944년 동경 제국극장에서 24회 연속 독무공연을 가져, 세계무용 사상 최초의 장기 독무공연 기록을 세웠다

1945년 8⋅15 해방을 맞아 북경에서 귀국한 최승희는 남편 안막의 설득으로 월북한다. 당시 김일성 주석을 만나 북경과 평양을 오가며 국민무용가로 살았다. 그러나 1950년대 6·25 전쟁 직후 사상비판을 받다가 남편 안막과 몇 년을 두고 숙청된다.

최승희의 대표작으로는 <조선풍의 듀엣>, <에헤야 노아라>, <장고춤>, <무당춤>, <부채춤>, <보살춤>, <조선의 어머니>, <사도성의 이야기> 등이 있다. 저서로는《나의 자서전》,《조선민족무용기본》, 《조선아동무용기본》, 《무용극대본집》 등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