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산 입구, 햇빛에 밤송이 속 알밤이 빛난다. 겨울준비를 할 다람쥐에게 양보하고 발걸음을 재촉하여 정상에 서니 단풍이 산 위에서부터 아래로 살포시 내려가고 있다.

▲단군산 정상 흑성산성의 공심돈에서 내려다 본 천안시내 모습

가을비가 하늘을 말갛게 씼어 내린 상쾌한 주말, 충남 천안시 목천읍의 검은산에 올랐다. 행정지명으로 흑성산(黑城山)이라고 부르는 이 산을 마을 어르신들은 모두 ‘검은 산’이라고 불렀다. 본래 ‘검’은 단군왕검을 뜻하며 ‘단군왕검의 은혜가 내린 산’이란다. 근동에 ‘검은 들’도 매 한가지. 일명 단군산이라고도 하며 큰 뜻을 품고 산에 오르면 뜻이 이루어지는 기운이 서려 있단다.  

 

▲ 숲 속의 이끼가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숲 속 길의 정취를 만끽하기 위해 지산리 쪽에서 올랐다. 반대 쪽 독립기념관에서 오르는 등산로는 정상에 있는 흑성산성과 KBS 중계소까지 차도가 나 있어 오르기 쉽고 솔 향이 가득하나 낙엽을 밟는 맛이 적다.

단군산과 어울리는 한민족역사문화공원의 세계 최대 단군왕검입상(지상33m)을 지나 10시 방향으로 오르니 정상까지 약 40여분. 쉬엄쉬엄 사진 찍기 좋아하는 필자의 걸음으로도 1시간 정도 걸렸다. 해발 519m로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아래쪽은 산책하기에 좋고 위쪽은 제법 가팔라 등줄기로 한 웅큼 기분 좋은 땀이 흐른다.

중턱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눈을 감으니 시원한 바람에 낙엽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말을 거는 친구의 목소리 같다. 흑성산성 쪽으로 방향을 잡아 잠시 걸으니 문뜩 붉은 단풍나무와 함께 탁 트인 정상의 흑성산성이 나타났다.

노대 쪽에서는 국학원이, 공심돈 쪽에서는 독립기념관과 아우내장터, 유관순 사우지가 선뜻 두 눈에 들어온다. 지관들은 단군산을 금계포란형(황금닭이 알을 품는 형상)이라 하고 태조산 등 주변 산과 함께 오룡쟁주형(다섯용이 여의주를 다투는 형상)이라고 한다.

흑성산성 표지에는 일제 때 산 이름이 검은산을 ‘검다’는 뜻만 가져다 흑성산으로 만들었다 하나 목천읍사무소에 전시된 1817년 증보간행한 대록지의 지도에 이미 흑성산으로 기록되었다. 우리말을 낮춰보고 한자를 우대한 사대유학자에 의해 이미 왜곡되었나보다.

<목천읍지>에 보면 목천은 도참비기 전설에 나오는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이며 진천과 목천의 공간은 수많은 사람이 살 수 있는 땅, 만인을 살릴 땅이라 했다. 마한시대부터 살았다는 목천의 지명은 순 우리말, 예스러운 명칭이 많았다. 양지말, 돌마루, 한학자인 마을 어르신은 “우리의 오랜 선도역사와 관련된 곳이 많다. 지산리도 공식적으로는 행정지명이 합쳐지며 생겼다고 하나 본래 신령스러울 령(靈)를 붙여 ‘영산리’였다고 전한다. 후일 나라를 위해 크게 쓰일 땅이므로 묘를 쓰거나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芝)로 바꿨단다.”고 했다. 인근을 흐르는 승천천(昇天川)과 승천골은 예전에 어떤 사람이 도(道)를 얻었다 하여 생겨난 지명이다. 단군산에는 어사 박문수에 대한 유명한 전설도 전하니 단군산을 내려와 은석산에 한번 올라보자.

<여행tip>
지산리에서 출발할 때는 천안역 또는 천안터미널에서 시내버스 310번을 타고 국학원에서 내려 올라가면 된다. 독립기념관 쪽 목천읍 등산로로 올라갈 때는 400번, 500번 버스를 타고 목천읍사무소에 내려 출발한다.

<대표음식>
단군산에서 두 개울이 합쳐진 아우내의 장터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유명한 ‘병천순대’의 구수하고 풍부한 맛을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