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큰 화제를 낳고 있는 정치풍자 토크쇼 ‘나는 꼼수다’에서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이번 10·26 선거를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자기 생활 스트레스의 근본이 정치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투표는 자기 스트레스를 줄이려는 노력이다.”

▲세계국학원청년단은 지난 10월 23일 서울 탑골공원 삼일문 앞 광장에서 10·26 보궐선거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국민이 신이 되는 신 나는 투표 날’ 캠페인을 전개하였다. / 사진=윤관동 기자 

 온 국민의 관심 속에 10·26 재·보궐선거가 투표율 45.9%(서울시장 선거 48.5%)로 막을 내렸다. 2007년 대선과 함께 치러진 12·19 재보선(64.3%)을 제외하면 역대 최고 투표율을 나타냈다. 차기 대권 유력 후보들이 선거운동 전면에 나서면서 ‘대선 전초전’을 방불케 한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서울’ 선거였지만 전 국민적인 관심 속에서 치러졌다.

 이번 투표의 가장 큰 특징은 20-30대가 본격적인 정치 행동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등록금, 취업, 전세가격 등등 온갖 스트레스에 찌든 청춘들이 움직였다. ‘투표 날, 날씨 좋으면 한나라당이 이길 것’이라는 말도 통하지 않았다.

 여기에 40대까지 가세했다. 위로는 부모 세대, 아래로는 자식 세대를 부양해야 하는 끼인 세대, 40대가 불안한 현실에 대한 불만을 투표장에서 토로했다.

▲지난 2006년 지방선거 이후로 20-30대의 투표율이 증가하고 있지만, 50-60대 이상의 투표율은 큰 변화가 없다. 투표에 상대적으로 무관심했던 젊은 층의 투표율이 증가하면서 내년 치러질 총선과 대선에서 20-30대의 투표가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은 서울시장 선거가 끝난 이튿날인 28일 의원총회 비공개회의에서 이번 정기국회 최우선 과제로 ‘2040 맞춤형 정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리고 트위터와 같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활용 역량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번 선거에서 젊은 층을 투표장으로 이끈 일등공신인 트위터에서 야권에 완패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의 쇄신을 외치며 꺼내놓은 카드이지만 실제 유권자들은 진정성부터 의심했다. 와 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을 중도 보수 성향이라 밝힌 회사원 김희정(39) 씨는 “문제는 한나라당이 트위터를 못 해서가 아니라, 정치권이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먼저 고민하지 않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민주당 역시 이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대학생 박정권(26) 씨는 “나도 그렇지만 주변을 봐도 박원순 변호사가 민주당에 들어갔다면 안 찍었을 거라는 친구들이 많다”며 “한나라당도 별로지만 민주당도 마찬가지 아니냐.”라고 말했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야권 대통합’이라는 구호 아래 무소속인 박 변호사의 선거를 도왔지만, 결국 민주당 역시 20-40대에게는 한나라당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인식이 강하다.

 김도종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서울시민은 집 있는 사람과 집 없는 사람 두 분류로 나눌 수 있는데 집 있는 사람은 집값이 내려가서 화가 났고 집 없는 사람은 전세가격이 올라서 화가 났다.”라며 “오랫동안 민생문제를 등한시 한 정치권에 대한 큰 실망이 시민사회에 대한 기대로 표출된 것”이라며 이번 선거 결과를 분석했다.

 기존 정당들이 이념 논쟁이나 하고 계파를 따지며 밥그릇 싸움할 때, 시민사회 진영에서는 국민 생활 개선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왔다. 박 변호사가 활동했던 참여연대가 대표적이다. 휴대전화 요금 인하 서명운동으로 이름을 알렸고 이후에도 최저 생계비 현실화 운동, 반값 등록금 운동 등 생활 정치 영역에서 역할을 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세금혁명당’과 같은 모임들이 활성화되면서 정치의 영역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더는 정치가 소수 선택받은 자들의 전유물이 아닌, 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것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박원순’이라는 한 사람이 서울의 미래를 바꿀 수는 없다. 내년 12월 19일 치러질 대통령 선거도 마찬가지다. 정치가 소수를 위한 무대가 아닌, 국민 모두를 위한 광장으로 확대되고 있다. 기존 정치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실망이 절망에서 다시 희망으로 피어나기 위해서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주인의식이 절실하다. 내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 이 나라의 운명이 곧 우리 인생의 운명이다. 참 주인이 되기 위한 국민의 움직임은 이미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