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창출한 문명이기(利器)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이 文字다. 오늘날 최첨단컴퓨터 시대에도 문자의 중요성은 여전히 최우선이다.
그러함에도 우리는 수천 년을 써 온 한자漢字를 버리며 한글전용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대부분 한자가 중국문자인줄 알지만 ‘漢字’란 명칭은 원나라 때 몽고인들이 중국을 지배하면서 자기들 문자와 구별하려고 붙였을 뿐, 1899년 갑골문이 발견되면서 은나라 갑골문에 대한 중국학자들의 공인된 학설은 북방민족 중에서도 동이(東夷)가 만들었다는 중론이다.
우리는 동이의 ‘夷’를 오랑캐로 해석하지만 중국문헌에는 그 어디에도 오랑캐라는 뜻이 없다. 오히려 어질다(仁) 크다, 넓다(大) 평평하다, 다스리다(平)로 해석한다. 오랑캐는 우리가 지어 붙인 말이다. 용비어천가에 의하면 두만강 넘어 지명인 올랑하(兀良哈)에 사는 여진족이 툭하면 내려와 노략질을 하면서 그들을 ‘올랑하’라 부르면서 오랑캐로 전이된 말이라 한다.
은나라 당시 동이의 본래 명칭은 夏(하)였다. 갑골문에서의 夏는 큰사람(大人)이 정장을 한 모습으로 클 ‘夏’로 하나라도 큰 나라를 의미한다. 하지만 중국에서 夏는 크다는 의미의 뜻이 없다. 먼 후일 만물의 성장이 가장 빠른 시기가 여름인지라 크다(자란다)는 의미로 지금의 여름을 뜻하는 글자가 되었다.
그리고 동이족인 하나라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의 특징을 붙인 이름이 동이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이다. 동쪽에는 큰 활을 만들어 잘 쏘는 사람들이 사는 특징이 있고 서쪽은 긴 창을 잘 써서이고 북쪽에는 이리가 많아서, 남쪽에는 벌레가 많다는 특징으로 붙인 이름이다.

그러면 동이족과 우리와는 무슨 관계인가?
중국 삼국지의 위지동이전에는 부여와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을 동이족이라 기록하고 있다. 동이의 특징은 큰 활을 잘 쏘는 사람, 동이의 ‘夷’ 원형은 활을 그린 글자였다. 그러나 사람을 가리키는 人자와 구별이 어려워 위의 그림처럼 변형되어 오늘의 ‘夷’가 되었다.

 

 

처음으로 글자라는 의미의 한자는 ‘나뭇조각에 칼로 새기다’는 갑골문 ‘’자다. 나뭇조각에 표시해서 반을 갈라 후에 맞춰보는 거래문화에서 발생된 징표였다. 긴 세월을 거치며 큰 계약에서 이뤄진다는 의미로 ‘大’자를 더하여 ‘契’자로 바뀌며 뜻도 변했다. 契는 ‘계’로 발음하지만 본래 古音은 글(귿)이다. 수나라 당나라 시대 자전의 발음기호도 欺訖切(기흘절)로 첫자의 초성‘ᄀ’과 둘째자의 모음‘ ’과 받침 ‘ᄅ’을 합해서 ‘글’로 발음한다.
중국 자전을 보면 당시 이미 한글자음과 모음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발음기호는 첫 자에서 초성을, 둘째 자에서 중성과 종성을 발음해야 하는데 발음기호로 표기된 한자가 모르는 글자일 경우, 한글의 자음 모음을 모르면 전혀 발음을 할 수 없는 것이다. 한자와 한글이 우리글이란 증거 아닌가?
文字를 예로부터 ‘글’이라고 칭하는 민족은 우리 한민족뿐이다. 고구려나 고려 때도 문자를 글이라 했다. 이런 징표문화는 오늘의 어음이란 말이 魚驗(어험-물고기 모양의 증표)에서 생겨나고 상장이나 계약서의 반쪽도장인 계인(契印)으로도 남아 있다. 언어는 이렇게 수천 년을 이어 발전되며 그 습속 또한 금방 변하지 않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문자’란 단어도 고어에서 文은 사람의 가슴에 문신을 한 모양이고 字는 집안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뜻이다.

 

 

 

宀’을 대부분 갓머리 변이라 읽지만 갑골문은 집을 뜻한다. 한자에서 宀(집면)이 붙어 있으면 무조건 집과 연관되는 글이다. 집우‘宇’자는 공간의 집이고 집주‘宙’는 시간의 집으로 3400년 전에 우리조상은 이미 우주를 알고 있는 4차원의 개념을 갖고 있었다.
한자가 우리글이란 예는 가을‘秋’로도 알 수 있다. 추상적인 ‘가을’을 상징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甲骨文에는 ‘ ’로 메뚜기를 형상화했다. 가을에 메뚜기를 불에 구워먹는 풍속을 지닌 민족이 만든 글이 분명하다. 그 후 메뚜기가 벼에 붙어사는 곤충이므로 ‘벼화(禾)’자로 바꾸어 간략하게 만들었지만 중국인들은 지금도 ‘메뚜기’를 ‘蝗蟲(황충)’ 곧 벌레라 하여 먹지 않는다.
집 家자도 마찬가지다. 중국학자들은 오랫동안 ‘家’의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家’는 당시 파충류가 극성일 때 뱀이 많았고 뱀의 천적이 돼지임을 알고 집 밑에 돼지를 키우던 사람들이 만든 글자다. 이런 흔적의 집 구조가 은대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고 지금도 그 풍속은 제주에 남아있다. 그리고 우리말 ‘무사하십니까?’란 인사말도 ‘無蛇’로 뱀 피해가 없느냐는 인사였다.

 

 

 

세계적인 화가 피카소가 갑골문을 보고 감탄했다고 하는데 선 다섯 개로 돼지를 묘사한 위 그림은 정말 놀라울 뿐이다.
그럴 연‘然’도 개를 불에 그슬려 잡는 민족이 만들었고 물들일 염‘染’도 식물에서 즙을 내어 아홉 번 물들이는 민족이 만든 글자다. 개를 불에 그슬려 잡아먹는 민족도 우리뿐이요, 우리나라의 천일염은 세계가 다 인정하는 바이다.
이렇듯 초기 400여자의 글자에는 당시 생활습속이 다 들어있다. 대초원에서 해가 지는 모습에서 하던 일을 멈추는 莫(말막)자에 다시 ‘저물다’를 나타내기 위해 이치에 닿지 않지만 ‘日’을 덧붙여 暮(저물모)가 생긴 글자를 누증자(累增字)라 한다. 수천 년을 내려오면서 이런 누증자가 많아졌으므로 몇 백자만 알면 한자는 쉽게 배울 수 있다.
이렇듯 한글 한자, 양대문자를 우리조상이 만들었고 오늘날까지 제대로 두 문자를 함께 쓰는 민족도 우리뿐이다. 이제부터 한자는 동방(東方)문자로 불러야 한다.
앞으로 우리 국민들이 동방문자와 한글을 적절히 잘 활용한다면 문자의 최이상국으로서 세계 최고의 선진문화국이 될 뿐만 아니라 무한대로 상승하여 세계문화를 이끌어가는 지도국이 될 수 있다. 21세기는 우리 한국韓國이 동방문화시대東方文化時代의 주역主役이 되도록 적극 노력努力해야 할 것이다.

진태하陳泰夏(인제대학교 석좌교수仁濟大學校 碩座敎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