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孔子)께서는 말씀하셨다. "나이 일흔에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하여도 하늘의 뜻에 걸림이 없었다.(七十而 從心所欲 不踰矩)”라고. 거장은 달랐다. 막힘없이 흔들림 없이 단단했다. 마음 가는 대로 행하여도 어디에도 걸리지 않을 것 같은 가야금 명인 황병기(75)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을 지난 10월 20일 서대문구 북아현동 자택에서 만났다. 
올해로 6년 째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그는 지금도 매월 국립극장에서 ‘정오의 음악회’ 사회자로 나선다. 요즘 공자의 《논어》에 푹 빠져 산다는 그는 ‘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락지자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옹야편(雍也篇) 구절에 자신의 인생을 비유했다. 평생 가야금을 즐기며 살았다는 그에게 60년 가야금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 첼리스트 장한나와도 친하다고 들었습니다. 세대를 뛰어넘어 요즘 젊은 음악인들을 보면 어떠신가요?

▲ 황병기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75)
요새 국악계의 트렌드는 퓨전국악이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국악을 세계화 하기위해 서양의 곡 중 우리가 좋아하는 곡, 예를 들어 ‘비발디의 사계’를 국악기로 연주해서 세계 사람들이 듣기에 친숙하게 만들죠. 국악보다 서양의 전통음악을 더 익숙하게 생각하는 한국사람들도 그렇고 국내외적으로 우리음악이 친근하게 대중에게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반대하지는 않아. 다만, 그런 것을 보면 음악적인 테크닉(기교)만 생각하는 것 같아. 그런 트렌드가 생긴 것이 대개 1990년으로 10년 남짓한 시간인데 많이 발달했어요. 예전보다. 그렇지만 아직은 음악적인 깊이라든가 독창성이 부족한 것 같아요. 더 노력하고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는 것이 내 생각이야.

 

- 감독님의 곡은 어떤 음악인가요?
나는 그 사람들과는 반대야. 세계 어디에도 없고 한국에만 있는 음악, 또 한국에만 있는 음악이라 할지라도 심지어 우리 전통에도 없고 황병기한테만 있는 그런 음악을 만들지. 여행을 예로 들자면 처음에 해외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서울과 비슷한 곳 더 나아가서 서울보다 오히려 더 편안하고 개발된 곳으로 여행을 가지. 뉴욕이라든가 런던이라든가, 도쿄라든가 서울과 비슷하면서도 오히려 서울보다 더 시설들이 좋고 그렇잖아요? 그런데 자꾸 관광을 하다 보면 세계 어디에도 없고, 거기 아니면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고 싶어하죠. 관광도 많이 한 사람들은 오지를 힘들여서 찾아가잖아요? 그래서 나는 반대로 아무 데도 없고, 한국에만 있는, 또 황병기한테만 있는 음악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 그런 점에서 보면 선생님의 <미궁(迷宮)>이라는 음악은 우리나라에만 있고 황병기의 음악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 음악에서 <미궁>은 특색 있고 파격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음악이지. 내 음악 중에서 특이한 것이고, 내 다른 음악들은 전부 나한테만 있는 거지. 근데 나는 내 모방도 안 해. 자기 모방도 안 한다는 것. 내 곡은 모두 달라.


‘미궁(The Labyrinth)’은 1975년 건축 잡지 <공간>의 100호 발행 기념 연주회를 위해 작곡했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 강력한 소리인 웃음과 울음, 신음 등과 신문을 낭독하는 소리 등 실험적이고 독특하다. 75년 명동 국립극장에서 공연 도중 한 여성이 비명을 지르며 뛰어나간 후 금지곡이 되었다고 한다. 2000년 인터넷을 통해 3번 들으면 죽는다는 루머가 돌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 1978년 명동국립극장 <미궁> 공연 사진

 


- 때로는 많은 노력과 심혈을 기울여 나온 음악이 금지되기도 하고, 의도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해석될 때 마음이 좋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황병기 가야금 작품집’이 1집에서 부터 5집까지 있어. 그것들이 대중적인 폭발력은 없지. 첫 번째 나온 작품집 <침향무>는 74년에 나왔지만, 현재도 국악차트에서 10위 안에 들고, 때로는 1위도 해. 37년 된 건데 그래도 내 음악은 결국은 꾸준히 팔리는 거야. 왜 그러냐 하면 대중들도 의식의 심층부에는 비 대중적인 것, 즉 늘 듣지 않는 그런 소리를 갈구하는 마음이 있는 거예요. 대중들을 깔보면 안 된다니깐. 허허

- 언젠가 내 음악의 본질은 슬픔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내 생각에는 사람은 살다 보면 항상 누구를 막론하고 슬픔이 마음속에 생기게 되어 있어요. 세상 살다 보면 역경을 건너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슬픔이 생기는 거야. 역경을 겪으며 슬픔이 토양이 되어 거기서 진짜 기쁨이 나와.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하면 올림픽에서 금메달 따는 사람은 예외 없을 정도로 누구나 다 울어. 그 순간처럼 개인한테 기쁜 순간이 없겠지. 김연아도 캐나다 동계올림픽에서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눈물을 흘렸잖아. 그것은 김연아 선수의 생애에 가장 기쁜 순간일 거라고. 그 기쁨이라는 것은 자기가 그동안 겪어온 역경 속에서 축적된 슬픔이 바탕이 되어 기쁨이 나오는 거야. 그래서 기쁨의 바탕은 슬픔이야. 남북 이산가족이 만났을 때도 보면 전부 울어. 사람의 진짜 환희는 슬픔을 머금고 나온 기쁨이어야 진짜 기쁨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 건강은 어떠신지요? 10년 전 큰 병으로 장기간 병원치료를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99년 대장암 수술을 받았지. 완치됐어. 약도 안 먹고 치료도 안 해.

 

- 감독님의 저서 <오동 천년, 탄금 60년>에 보니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함을 느꼈습니다.

내가 공자 말씀을 굉장히 좋아하는 데 친구가 있어서 멀리서 찾아오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하냐(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고라고 나오지. 친구를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보다 인생의 기쁨은 없어요. 친구란 마음을 서로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는 게 친구인데 그런 사람을 만나서 흉금 없이 얘기하는 것보다 인생의 더 큰 기쁨이 없지. 그 친구는 자기 부인이 될 수도 있고, 동창이나 고향이 될 수도 있고….

 

- 평소 대중가요도 들으시나요? 한국 대중가요가 세계적으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대중가요는 일부러 찾아 듣지 않아도 저절로 듣게 되지. 그게 대중가요 아니겠어?
요즘 대중적인 아이돌 그룹 소위 K-pop이라고 하는 것, 사실 알고 보면 본질적으로 미국의 상업주의적 음악이야. 상업주의적인 음악이 전 세계적으로 풍미하고 있는데 그런 것을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거지. 진짜 한국적이라고는 볼 수 없지.

- 한국적인 것에 대해 우리 스스로 자부심이 부족한 게 아닐까요?
우리 것이라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예술이 좋아서 좋아하는 거야. 내가 한국 사람이라서 애국심을 가지고 좋아하는 게 아니야. 외국인 중에서도 한국적인 것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지.
예전에는 외국인들이 김치 냄새를 굉장히 싫어했잖아? 이제는 일본이나 미국의 슈퍼마켓에 가도 김치를 팔거든. 그만큼 김치가 대중화되었다는 거야. 그것이 우리가 한국 사람이라서 김치를 먹어야 하는 게 아니라 김치라는 음식 자체가 맛이 좋다 그거지.

- 우리나라 것이라서 좋은 게 아니고 우리나라 문화 자체로 좋아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지. 결국, 사람들이 다 알게 될 거야.

- 오랫동안 가야금 한 길로 오셨잖아요. 그 과정에서 한계를 느끼거나 슬럼프 혹은 고비가 있으셨는지요?
나는 그냥 우리나라 음악, 특히 가야금이 좋아서 배웠지. 중학교 때부터 배웠는데 어떤 목적을 가지고 배운 게 아니야. 내가 뭐 위대한 가야금 연주자가 되어야겠다든가, 우리나라 음악을 계승 발전시켜야겠다든가 이런 사명감 없이 오직 좋아서 한 거예요. 그러나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은 자기가 무엇을 하든지 좋은 거야. 고등학교 시절에도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면서도 졸업 후 명동극장에서 일할 때도, 출판사를 할 때도 좋은 거는 그냥 했어.
마치 어떤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하고 좋아한다면 무슨 목적이 있어 좋아하나? 자기 직업이 삼성에 있다가 엘지로 옮겼다 해서 여자를 바꾸나? 무얼 하든지 좋아하는 건 항상 하는 거야. 그것처럼 난 무얼 하든지 가야금은 항상 했어.
하다 보니 우리나라 사회가 변화해서 내가 딴 일 하는 것보다 가야금 하는 것을 우리 사회가 원했고 자연스럽게 74년부터 이화여대 교수로 있으며 가야금만 하게 됐지.
공자의 논어를 보면 ‘아는 것보다 좋아하는 게 중요하고, 좋아하는 것보다 즐기는 게 중요하다.’ 그런 말이 나와. 난 가야금을 즐겼어.

 

▲ 1958년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연주하는 황병기 예술감독

 

- 올 12월로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의 임기가 끝난다고 들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예술감독을 두 텀(term)을 했어요. 6년을 한 거야. 내 생각에 임기도 끝나고 그만두려고 해요. 그다음에 내 계획은… 나는 계획 없이 사는 것이 내 특징 중의 하나예요. 현재 생각은 힘이 닿는 범위까지 열심히 가야금을 연습하겠다는 생각이지. 딱히 뭘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가야금 배운지가 60년이 되었는데 여태까지 내 가야금 연주를 남보고 들어달라는 그런 공연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나는 문 닫고 내 방에서 혼자 연주할 때가 가장 좋아요. 그런데 여기저기에서 가야금을 연주해 달라는 초청을 받죠. 그러면 하죠. 내 공연을 내 연주를 남보고 들어봐라 그런 법은 없어요. 아무도 안 들어줘도 좋아요.

- 지금도 매일 밤 11시면 연습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연주는 육체 행위예요. 정신행위가 아니에요. 매일 해야 하는 거예요. 그것은 스포츠를 보면 알죠. 그런 점에서 보면 가야금 연주는 하나의 육체 행위이기 때문에 매일 단련을 해야 해요.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연주자는 매일 하게 되어 있어요. 일주일만 안 하면 못해요.


- 때로는 쉬고 싶거나 그런 생각이 들지는 않으신가요?
가야금 타는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 중의 하나죠. 운동선수가 난 좀 쉬고 싶다는 선수는 없어요. 매일 하고 싶지...

- 인생에 매일 해도 항상 행복한 일이 있는 것도 복인 거 같습니다.
글쎄 복인지는 모르겠네. 매일 밥을 먹죠. 그게 질립니까? 매일 먹고 싶죠. 똑같은 겁니다. 난 그동안 몇 십년을 밥을 먹었으니깐 며칠 굶어야겠다라는 사람은 없죠.

- 선생님께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음악은 어떤 것인지요?
지난여름 50주년 기념공연의 제목이 '달항아리'였어요. 달항아리는 조선조 백자의 하나인데 둥그렇게 생겼다 해서 달항아리라는 별명이 붙은 거죠. 그것은 텅 비어 있으면서 동시에 꽉 차고 넉넉한 느낌이 들죠. 그런 느낌이 드는 음악이 내가 원하는 음악이에요. 비어 있으면서도 꽉 찬 기분을 주고, 또 아등바등 하지 않고 여유를 가진 그런 음악을 하고 싶어요.

- 하고싶다 라는 말씀은 앞으로도 나아가야 할 길이 더 많다는 말씀이신가요?
나는 작곡가인데 내 작품 중에 첫 번째 가야금 곡이 <숲>이라는 곡이죠. 내가 생각하는 <숲>은 온 힘을 다해 나온 곡이야. 그런가 하면 <시계탑>이라는 곡은 99년 대장암 수술을 받으러 서울대학 병원에 입원했을 때 나온 곡이에요. 그때그때 최선을 다했기에 내 음악은 발전 했다 그런 생각은 없지. 내 나이가 75세인데 <숲>을 작곡할 때에는 내 나이가 26살이었지. 지금 들어보면 내가 20대 때 작곡한 곡들이 내가 저 곡을 어떻게 썼을까, 지금 해보라 하면 도저히 못 쓰겠다는 그런 생각을 해요. 내 음악은 달라지기는 하지만 발전한다고 볼 수도 없죠.

- 앞으로 우리나라 국악의 미래는 어떻게 보시나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점점 우리 전통음악을 좋아하게 되고, 수적으로도 불어나고 질적으로도 점점 깊이 있게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처음 가야금 배우던 50년대와 지금과 비교해 보면 수적으로 질적으로 대중들이 훨씬 국악을 많이 좋아하고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어요. 낙관적으로 보고 있어요.

국립국악관현악단 황병기 예술감독

1936년 서울 출생/경기고등학교/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학사/단국대학교 음악 명예박사
현재 2006년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대한민국예술원 부회장
부인 소설가 한말숙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