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학원 단기연호 학술회의에서 주제발표를 하는 양승태 이화여대 교수.

양승태 이화여대 교수(정치외교학과)는 10월 26일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국학원 주최 단기연호 학술회의에서 "1961년 박정희 대통령이 왜 단기연호를 손쉽게 폐지했는지"를 밝혀 단기연호에 대한 사회적 다수의 무관심과 반대의 정신적 원천을 파악했다. 단기연호 반대논리를 분석함으로써 역설적으로 단기연호 법제화의 이론적 우월성을 확립하여 소통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했다.

양승태 교수는 “서양은 연호라는 개념이 없다. 역사를 예수탄생 전 후로 나누면서 ‘기독교적인 질서가 절대적 질서이며 서양문명은 문명자체“라는 오만한 관념이 십자군 운동과 19세기 제국주의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아편전쟁 후 150년 간 동서양 문명의 충돌결과, 왕권과 봉건주의의 폐해 속에 있던 동아시아의 시공간 질서는 합리적인 과학문명을 앞세운 서양의 질서에 편입되었다. 단기연호 폐지는 서양 중심의 의식을 보편화시키는 작업의 하나였다.”고 전제했다.

다른 문명을 주체적으로 소화시키는데 포기해선 안 될 것이 ‘모국어와 역사의식’
한말 선각자들이 역사의식을 높이는 노력의 핵심에 ‘단기연호 사용’이 있었다

그는 “문명 접촉 시 다른 문명을 일방적으로 수용하거나 고립되면 스스로의 문명을 퇴화, 소멸시킨다. 다른 문명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면서 스스로의 문명을 주체적으로 발전시키는데 결코 포기해서 안 되는 것이 모국어와 역사의식이다. 박은식 주시경 신채호 안재호 정인보 등 선각자들이 모국어와 역사의식을 높이는 데 일생을 바쳤다. 역사의식을 높이는 노력의 핵심에 ‘단기연호’의 사용이 있다. 그러한 노력이 나철 선생의 대종교 운동과 결합해 일본강점기 이미 종교의 차이를 떠나 단기연호 사용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건국 후 어렵지 않게 단기연호의 법제화가 이루어졌다.”고 평가했다.

민족주의 의식 투철했던 박 대통령이 단기연호를 시대착오적 산물로 간주한 것은 아이러니

양승태 교수는 “ 근대화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함께 나름의 민족주의 의식도 투철했던 박정희 대통령이 단기연호 주창자들과 역사의식은 공유하면서 그 상징인 단기연호를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간주하여 폐지한 것은 아이러니”라며 “당시 새롭게 몰아닥친 미국적 세계관과 문화의 영향, 미국에 국가안보를 의존할 수밖에 없는 여건도 있었으나, 박 대통령이 쉽게 폐지를 결정한 것은 역사의식의 부족 때문이다. 연호의 본질을 제대로 알았더라면 그런 결정을 쉽게 내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양 교수는 단기연호 법제화의 당위적 근거를 제시했다. “단기연호의 역사적 근거가 되는 고조선의 존재는 지금까지 고대사 연구를 통해 충분히 입증되었다. 신화는 진정한 의미에서 최초의 집단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요소인데, 단군신화는 국가의 기원과 더불어 근본적인 통치이념, 구체적인 통치체제까지 언급한 세계 어디에도 없는 탁월한 건국신화이다. 국가와 민족의 신화적 시원에서 출발하는 연호는 세계적으로 단기연호 밖에 없다. 단기연호는 참으로 절묘하고 심원한 역사의식의 표상”이라고 발표했다.

양승태 교수는 끝으로 “이제는 서양문물의 일방적 수입이나 모방에서 벗어나 우리 건국신화에 잠재된 고유하고 소중한 세계관과 정치사상에 기초해 좀 더 발전되고 보편적인 새로운 문명을 창출할 민족사 및 문명사적 소명이 이 시대 한국인에게 부여되어 있다. 단기연호의 연호로서의 탁월성을 밝히고 법제화하는 것은 한국인에게 부여된 소명의 상징이자, 소명의 실현을 향한 첫 걸음”이라고 했다.

양 교수는 "단기연호 복원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고 극복해야 한다. 논리적으로 이론적 우월성을 확립하고, 서명운동과 같은 사회적 확산을 하여 정치적 힘을 얻어 법제화를 해야 한다."고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