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표적인 건축물 7선을 통해 한국미를 이해하기 위한 단초로 삼는 미의 여정을 떠난다. 세계사의 동쪽 끝 변방에서 이루어진 것으로는 믿기 어려운 그 품격 높은 문화에 대한 이해와 미적 통찰은 새로운 선진 문화의 창출을 위한 배경이 될 수 있으리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전통건축은 한국 문화의 중요한 부분으로서 한국인이 추구했던 가치와 아름다움은 물론 삶의 이상과 방식을 기반으로 지어졌다. 그러므로 그들의 종교와 학문 그리고 예술에 대한 지적이고 미학적인 통찰을 동시에 요구한다. 

 
 조선은 한국미의 전반을 이해하기 위한 정점에 있었던 시기로 덕(德)으로 이루어지는 정치와 학문, 문화예술을 서로 통합하여 사회가 지향하는 이상적 모습의 토대로 삼았다. 문덕(文德)과 문치(文治)를 같은 영향을 줄 수 있는 동일한 이념이라 여겼으며, 건축 또한 보다 근본적이며 정신적인 효용성에 주목하였기에 미적 기능이 덕치로 이루어지는 '인정(仁政)의 가치 실현'이라는 정치적 목표에 적합하게 역할을 했다. 인정전(仁政殿)이라 명칭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유교 이념의 기치아래 세운 조선 왕조는 인(仁)의 정치를 상징성을 넘어서 가장 실제적이고 효율적인 정치이념으로 채택하여 표방하였다.

 공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도를 밝히는 것(明道)에 지나지 않는다.”하였다. 인정의 인(仁)이란 '덕의 완성'으로 유학의 도(道)였다. 덕치는 다스리는 사람이 인격적으로 완성되면 다스리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다스려진다는 이상적이고 효율적인 정치 형태로 여겨졌고 이러한 국가적 이상은 사대부 개개인의 도덕적 완성과 일치하는 것으로 덕으로 완성된 사람이라야 통치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덕치를 실현하고 상징하는 것으로 설계된 인정전은 인(仁)과 예(禮)와 문(文)을 본질로 삼는 덕의 외형적 모습으로 그 내용과 형식이 미적 통합을 이루어 유학적 본연에 충실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하여 편안한 동시에 경건하여 성인의 후광과 같은 광채를 품어낸다. 창덕궁은 경복궁과 같이 정면으로 진입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전을 측면에 두고 빈 직선의 길을 통해 꺾어서 들어서게 한다. 그것은 건물을 직선의 저 멀리 위치하게 해서 웅장하고 눈부신 화려함을 갖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가깝게 있어 편안하나 위용이 넘치게 하려 했기 때문이다. 위용과 편안함을 동시에 갖는 것은 조선 왕조의 구별되는 특징이기도 하다. 조선은 위압적이고 경외하고 두려워 떨어야 하는 절대 왕권이 지배하는 국가가 아니었다. 인간의 눈으로 인식할 수 있는 가장 장대한 크기의 황홀함으로 이루어진 중국의 자금성은 다민족 국가로 모인 대륙의 통치 여건 하에 요구된 크기였을 것이다. 또한 폐쇄적이나 천상의 공간인 듯 신비롭게 느껴지는 일본의 성과도 확연히 구별되는 특징을 가진다. 

 

▲ 넓지 않은 마당은 막고 있는 회랑으로 인하여 오히려 확장되고 품계석 주변에 거칠게 놓여있던 박석의 선들로 인해 고정적이지 않고 무한히 자유롭다. 평범한 듯 긴 길과 바닥의 거친 돌들은 하늘과 합한 대지가 되고 건축은 성인의 후광과 같이 광채를 품고 위용과 편안함으로 유도한다.

 기둥의 기초석에서부터 일체의 장식은 배제되었다. 화려하거나 자연스럽고 세속적인 것 등은 아무것도 없으며 지배하려는 욕구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질서정연한 기둥의 구획들로만 이루어진 사각형의 회랑은 나무와 돌이라는 자연의 물질로만 이루어진 건축과 대지로 화하여 하늘과 땅을 순연히 품는다. 인정전 뒤로 펼쳐지는 하늘과 낮은 지붕의 건축과 월대의 대지는 서로 합하여 대상과 존재가 혼재하고 실재가 자기로 현현되어진다. 선의도 도덕도 의지도 엄밀한 의미에서 진정한 예술을 만드는 요인은 아니다. 천지의 자득에 있어 도덕은 어쩌면 가치의 표상에 머무는 방법론에 불과할 수 있듯 크지 않은 사각형의 공간은 무한하고 영원의 한 공간으로 이어진다. 영혼 속에 각인되는 생성의 흐름이자 허구에 의한 허구의 창조를 이루는 것 같다. 고요한 광휘의 밝음으로 서로 침투하고 합쳐지고 정지하는 통일성 안으로의 매개와 결합의 빈 공간은 한 동작도 아니되며 영원한 것에 대한 미학적 파악으로 연결된다. 그러나 한편 정치라는 것이 과연 고매할 수 있는가. 아니면 그러한 최고의 선한 본성의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나 적어도 조선은 그것을 추구했다. ‘아름답다’라는 것이 궁극적 경지의 단계에 이르러 정치적 도구로서의 예술적 전형을 보여주고 미를 통한 객관적 가치 판단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덕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인정전을 보면 된다. 백 마디의 말보다도 한마디로 덕치의 모습을 그 어느 것보다 심도있고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천지를 가득 메우는 변함없는 진리와 미의 정수를 내포하는 쓸쓸하면서도 화려한 아름다움으로 천지를 교화하는 듯 하고 마치 완전한 이상을 구현하려는 그 어떤 노력도 기울지 않는 내재적 덕으로 성취한 도(道)의 장소로 오늘의 우리를 초대하는 것 같다. 

 

 

 

김개천 교수

2009년 Red Dot Design Award
2005년 문화관광부 올해의 우수도서상
2004년 한국건축가협회상 (백담사 만해마을)
2001년 한국건축가협회상 (무량수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