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분다. 내일이면 본격 추위가 온다는 뉴스이다. 하지만 그 분을 떠올리면 우리의 가슴이 뜨거워진다. 다름 아닌 유관순 열사이다. 대학원 수업 때문에 정기적으로 천안을 오가지만 나는 수업을 마치고 내려올 때는 어김없이 병천면을 찾는다. 아우네 장터는 전국에 유명한 순대집이 많지만 병천면 입구를 들어설 때는 나는 옷깃을 항상 가다듬는다.

지금은 소도 달구지도 보이지 않고 현대식 간판에 잘 닦아놓은 주차장, 포장된 도로가 독립만세를 외치던 그 날의 함성을 떠올리거나 그 때를 상기하는 데 어려움을 주기는 하지만, 어느 한 켠에 걸려있는 태극기를 보면 때는 갑자기 그 분의 함성이 메아리쳐진 아우내 장터의 100년 전으로 돌아간다.

16살 나이면 꽃답고 꽃다운 나이, 또래들과 꿈과 낭만을 이야기하고 항상 방긋거릴 미소가 넘치는 때에 쓰러진 조국을 일으키고자 분연히 태극기를 들었을 그 작은 손, 참으로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리다. 내가 그 장터에 있었으면 나는 어떻게 하였을까, 나도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목이 터져라 외칠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원수를 내 몸같이 사랑하라고 배웠지만 나라 없는 고통, 독립없는 백성들의 아픔을 온 몸으로 느끼고 앞서서 만세운동을 하셨다는 사실에 나는 머리 숙일 수밖에 없었다. 감옥에서도 일제의 모진 고문에도 결코 굴하지 않음에 그것은 분명,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평화사상을 위한 것이었고 일제에 대한 뜨거운 항거의 경고였고 가르침이었다.

여리디 여린 나이였지만 , 강낭콩보다도 붉은 그 마음은 병천면의 아우내로 숨결을 고르며 아직도 선연히 흐른다. 유관순 열사의 혼이 흐르는 병천면 장터는 여느 곳과는 다르고 달라야 한다. 수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곳인데도 기념관 하나 없다. 당시 만세운동이 일어난 병천면은 나라의 자긍심, 국혼을 굳건히 세워 우리는 아직도 정신이 살아있다는 교훈을 전 세계에 알린 계명이었다.

천안은 앞으로 세계인이 찾아오는 명소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세계사적으로 가장 어려운 식민지가 많아 약소국이 너무도 힘들었던 때이고, 평화가 절실했던 때였다. 만세운동이후 미국은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고 맞추어 민족자결주의라는 선택이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

천안시는 다른 시와는 격조 높은 역사적 자료들이 많은 곳이다. 보이는 것, 화려한 것이 창궐하는 지금, 그래서 너무도 감각적으로 변하는 우리의 심성에 오감깊이 내재되어 있는 만인에 의한 만인의 행복을 위해 온 몸을 던진 그 분을 혼은 새롭게 조명하어야 하고 인식되어야 한다. 역사책에서는 몇 줄 다루지 않는다.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아우내 장터에서는 유관순 열사의 동상이 하나정도 기상높히 섰으면 하는데 중심에는 그런 곳이 없다. 그저 식당 창문으로 새어나오는 순대냄새만 진동을 하게끔 해서는 절대로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