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일, 정부는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천절 기념식을 했다. 같은 날 오전, 세계국학원청년단의 주최로 미국, 캐나다, 독일, 러시아, 일본, 중국 등의 외국인 400여 명, 한국인 600여 명, 총 1천 명이 ‘HAPPY BIRTHDAY KOREA’를 외치며 광화문에서 시청까지 흥겨운 퍼레이드를 벌렸다. 연도의 시민과 특히 서울을 관광 중이던 외국인들이 환호하였다. 잠실주경기장에서는 전국에서 모인 10만 명의 국민들이 이 나라의 생일을 열렬하게 축하하는 신명나는 날이었다. 또, 강화도 마니산을 필두로 지역별로 개천절을 기리는 행사가 자발적으로 개최되었다. 미국의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는 '조선의 왕 뉴욕에 가다.'라는 문화행사가 열렸다. 해가 갈수록 개천절에 대한 국민과 국제적인 관심이 커지는 이때, ‘단기연호 함께 쓰기’ 범국민 서명운동이 벌어졌다. 단, 47일 만에 100만 서명을 돌파하더니, 9월 30일까지 115만 명의 국민이 기꺼이 서명하였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100만 국민서명이 가장 짧은 기간 안에 달성된 기록이다.

왜 국민은 ‘개천절과 단기연호 함께 쓰기’ 국민운동에 열광하는가?

그것은 많은 이들이 ‘안철수' 씨에게 열광하는 것과 같다. 이제 국민은 기존의 기득권의 세력에 의한 정치, 종교, 문화와 같이 기존의 사회, 역사, 교육에 넌덜머리가 났기 때문이다. 한류 드라마와 K-POP과 같이 전 세계가 대한민국에 열광하는 이 현상을 누구보다 정치권과 대다수 리더가 잘못 읽고 있는 현상이다. 최근의 통계에 의하면 초·중등학생 50% 이상이 ‘단군과 개천절 모른다.’라고 조사되었다. 기존의 가치관과 교육으로는 미래가 없다는 의미이다. 국민의 깊은 마음속에는 이대로 가다가는 100년 전의 나라 꼴을 다시 겪을 것 같다는 두려움과 함께 ‘위대한 대한민국으로의 진화’를 위한 새로운 중심 가치를 절절히 요구하기 때문이다.
 
1592년 10월 6일(음) 1차 진주성 전투가 시작되었다. 이 전투는 임진왜란 조선군의 첫 대첩이었다. 충무공 김시민 장군(천안 목천 출생)의 젊은 목숨을 바친 지휘로 기적의 승리를 이룬 1차 진주성 전투의 왜군 희생자 수는 엄청났다. 후일 일본은 “진주성 전투에서 장수의 사망자가 삼백 명, 군병의 사망자가 삼만 명이었다.”라고 말한다. 결국, 왜군은 군량미가 절실한 전라도 진격을 땅과 바다에서 모두 포기해야만 했고 이때부터 완전한 승리는 가망이 없어진다. 김시민, 이순신, 류성룡, 권율 등등 많은 유무명의 장졸, 백성들과 명나라의 힘으로 천우신조, 가까스로 일본을 패퇴시킬 수 있었다.

그로부터 303년 후, 1895년 10월 8일 아름다운 조선의 가을 새벽, 술과 살기에 취한 일본 낭인들의 무리가 경복궁 성벽을 넘어 지밀내전을 급습한다. 그들은 거침없이 칼과 총을 휘둘러 가로막는 궁내부대신 이경직, 홍계훈 등과 나인들을 살해하면서 마침내 명성황후를 찾아 건청궁의 옥호루에서 처참하게 시해했다. 황후의 시신마저 향원정의 녹원에서 불살라 버리니 돌이킬 수 없는 을미사변을 일으킨 것이다. 이토록 무참하게 근세조선의 최초, 최후의 명성황후는 비명횡사하신다. “왕후는 가냘프고 미인이었다… 눈은 차고 날카로워서 훌륭한 지성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명석하고 야심적이며 책략에도 능할 뿐 아니라 매우 매혹적이고 여러 가지 면에서 매우 사랑스러운 여인이었다.” (19세기 말 비숍 여사, 영국) “그녀는 일본을 반대했고 애국적이었으며 조선의 이익을 위해 몸을 바치고 있었다... 그녀는 아시아의 그 어떤 왕후보다도 그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여인이었다.” (선교사 언더우드의 부인)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 낭인들조차도 그녀를 동양의 호걸, 여장부로 평가했다.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작전 이름은 “여우사냥’이었으니 나라를 잃어가던 불쌍한 조선 백성은 졸지에 모두가 여우취급을 받게 된 것이다. 이 작전의 지휘자는 일본 정부의 지시를 받은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였다.

명치천황과 고종황제는 동갑이지만 한 사람은 자신의 나라와 후손들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고, 한 사람은 부인을 잃고 그 백성이 한갓 들짐승이 되어 망국의 길을 닦는다. 국격이 비할 바 없이 훼손된 것이다. 이제 백 년이 지났으나 용서를 할지라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의 경제력은 그때와는 다르다고 하지만 오히려 남북은 분단되었고, 나라의 각 지역과 있는 자와 없는 자, 소위 좌파와 우파, 사용자와 근로자들은 쪼개지고 갈라서고 있다. 이러한 국가적 위기에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라는 인류 최고의 정신이 스며 있는 ‘개천(開天)’은 우리가 아끼고 키워가야 할 최고의 국가 브랜드이다. 모든 이들 속에 하늘과 땅과 인간과 뭇 생명의 조화를 이루어 하나로, 곧 ‘하나님으로 존재’한다는 한민족의 사상과 문화는 곧 세계 지성인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 곧 신이 이미 내 안에 계시니 바람처럼 일어나니 신(神)바람이요, 밝아지면 신명(神明) 나는 것이다. 내 안의 신을 찾은 사람은 정신(精神)을 차린 사람이고, 잃은 사람은 등신이다.

임진왜란에 나라를 구하기 위한 위대한 전투가 있었고 그에 못지않게 위대한 예술이 탄생하니 하나(一)님이란 단어를 한글로 처음 표기 한 시가 태어난 것이다. 그 시는 임진왜란의 장수이자 시인인 노계(蘆溪)· 박인로(朴仁老, 1561~1642)에 의해 쓰인다. 박인로는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스스로 의병활동에 가담했다가 무과에 등용되어 수군이 된다. 지금의 구조라 해수욕장이 있는 거제도에 만호로 부임해 선정을 베풀다가 전쟁이 끝난 뒤 고향인 영천으로 돌아온다. 평생을 청빈하게 살면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82세로 삶을 마감한다.
왜군에 쫓겨 북방을 떠도는 주군인 선조에 대한 무장으로서의 강직한 마음을, 문인으로서 간절하게 표현한다. 나의 이 일생에 걸친 이 뜨거운 충심을 -오직 하나님-은 알아주실 것이라는 간절함이다.

“때때로 머리를 들어 북쪽 임금이 계신 곳을 바라보고 남모르는 눈물을 하늘 한쪽에 떨어뜨리는 도다. 일생에 품은 뜻을 비옵니다, 하나님이시어!”

하나님 즉 신이라는 말은 GOD, 여호와, 야훼를 하나님으로 번역한 지금의 교회에서 사용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미 아득한 오래전부터 이 땅에서 사용되던 한민족의 하나(一)님이시다. 세종대왕께서 창제하신 한글에 의하여 내 안에 존재하는 하나님, 즉 신은 모두의 뇌 안에 이미 내려와 계신다(降在爾腦). 이제 국민 전체가 신을 밝게 찾아야 하고, 온 민족과 인류에게 그 신명을 전해야 한다. 지금이 절호의 기회이다. 인도네시아 코리아위크 행사에서 우리 K-pop 가수들이 몇천 명의 젊은이들을 휘어잡고 유럽의 젊은이들은 K-pop을 보게 해 달라고 데모까지 한다. 스마트폰, 각종 전자제품, 선박, 애니콜, 승용차 등 세계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상품으로 대한민국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이제는 대장금, 태왕사신기 등 드라마 작품을 넘어 문화, 정신 컨텐츠로 우리의 영혼과 철학을 알려야 할 때이다. 그러나 매년 개천절이 돌아올 때면 이 모든 것이 사상누각으로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뿌리 깊은 우려가 생긴다. 뉘라서 이 찢긴 신뢰를 씻어줄 것인가?
정부와 정치권, 교육계, 문화계, 경제계가 앞장서서 남과 북을, 국민과 국민을 하나로 이어야 한다. 4대 국경일, 특히 나라의 생일인 개천절은 반드시 대통령이 식장에 참석해야한다. 지금의 국민은 그러한 홍익 대통령을, 홍익 리더를 간절하게 원하고 있다.

그러므로 개천절의 국민 합심은 결국 나와 민족과 인류를 살리는 지름길이다.

                 사)국학원 원장(대), 한민족역사문화공원 원장 원암 장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