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항쟁기 시절 독립운동가들이 나라를 되찾고자 무력 항쟁을 펼치던 때, 한글학자였던 주시경 이극로 김두봉 최현배 등이 정음이나 언문에 지나지 않던 우리글을 되살리고 지켜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먼저 우리글의 명칭을 ‘한글’이라고 처음 만든 주시경 선생을 만나보자.

주시경 선생이 한글을 통한 언어 민족주의와 한글 대중화를 위해 1914년 7월 27일 평생을 헌신한 공로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유명한 일화가 있다. 배재학당 졸업 당시에 받은 예수교 세례를 과감히 버리고 대종교로 개종한 것.

“선생은 종교가 예수교였는데, 이 때 탑골승방에서 돌아오다가 전덕기 목사를 보고, ‘무력침략과 종교적 정신침략은 어느 것이 더 무섭겠습니까?’하고 물었을  때에 전 목사는 ‘정신침략이 더 무섭지.’하매, 선생은 ‘그러면 선생이나 나는 벌써 정신침략을 당한 사람이니, 그냥 있을 수 없지 않습니까?’하였다."

그리고 조선어학회를 조직하여 한글의 연구와 보급에 앞장섰던 이극로 선생은 1920년 유럽 유학 생활 중 수 백년간 영국의 압제를 받은 아일랜드가 모국어 대신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한 현실을 보고 일본의 식민 지배에 있는 한국도 한글이 말살될 것을 예견하였다고 전한다.

이에 대해 김동환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한글운동은 일제하 독립운동중에 문화항쟁의 한 형태이다.”라며 “특히, 주시경, 김두봉, 이극로, 최현배 등의 한글운동을 하게 된 정신적 배경이 중요하다.”라고 말하였다.

김 교수는 “주시경의 한글운동을 하게 된 배경에는 홍암 나철이 대종교를 일으키면서 내세운 ‘국망도존(國亡道存: 나라는 망했으나 정신은 있다)’과 연결되는 것으로 그 도가 무엇인가? 바로 단군정신이었다. 그 정신의 언어적 구현이 한글운동과 직결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따라서, 주시경과 그의 제자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화한 조선어학회의 한글운동은 단순히 한글 연구를 넘어 조국광복을 위한 문화항쟁이었던 것이다.

조선어학회의 회원이었던 안재홍의 전기에 따르면, “국가적 의미에서 개천절이요. 민족문화적 의미에서  ‘한글날’이니 한글날은 국경절 아닌 국경절이다”라고 중시했다고 전한다.

지난해 10월, 직장인 516명을 대상으로 <공휴일로 지정했으면 하는 날>을 설문조사한 결과 ‘한글날’이 1위로 나타났다.

‘한글날’이 조선시대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반포와 같은 역사성을 기리기도 하지만, 삼일절과 광복절처럼 나라를 되찾기 위해 항일운동을 펼친 한글학자들의 정신을 기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