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대한민국,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냥 힘 센 중국이나 미국에 귀속되면 어떤가. 더 잘 먹고 잘 살 수 있지 않겠나.”

 이런 개념 없는 이들에게 양승태 이화여대 교수(62)는 말했다. “민족의 역사의식, 정체성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국가를 유지하게 하는 것인데 그럴 거 뭐 하러 사나? 대한민국 해체해라.”

▲ 양승태 교수

 저서 『대한민국이란 무엇인가』(이화여자대학출판부, 2010년 6월)를 통해 ‘단기연호를 되살려 국가 정체성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 양 교수를 지난 26일 이화여대에서 만났다. 그는 지금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역사의식의 부재’에서 찾았다.

- 올해 8월 시민사회에서 움직임이 일어났다. ‘단기연호 함께 쓰기 100만 서명 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국민에게 단기연호의 중요성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다음 단계다. 실천적 행동이 제도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론적 정립 과정이 있어야 한다. 수많은 사회 운동이 일어났다가 사라졌다. 반대하는 이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과정, 치열하게 논의해서 이론 체계를 세우는 과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단기연호 서명운동이 일회성 운동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지식인들이 심도 있는 토론을 하고 반대 입장의 사람들을 설득해야 한다. 그 때 단기연호가 실제 사회 제도로, 법으로 정립이 되고 현실이 될 수 있다.

- 책에서 ‘제헌국회에서 단기연호를 공식 연호로 제정하게 된 과정을 보면 굉장히 쉽게 이뤄졌다’고 설명했는데 왜 갑자기 단기연호가 폐지되었는가.

 제헌국회 당시에는 일반 국민들도 ‘단기연호를 써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기독교 인사들도 당연하게 생각했다. 당시 단기연호 사용을 입법한 의원들이 깊이 있는 논의를 통해 이론을 정립했고 합의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5.16 군사정권이 들어서고 1961년에 단기연호를 폐지했다. 군사정권은 단군을 신화로 보고 이를 고수하는 것은 민족주의적이라고 판단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훌륭한 면이 많지만, “단기연호는 역사적 퇴행, 부정의 대상”이라며 진지한 성찰 없이 도매가로 넘겨버린 것은 잘못이다. 나름대로 신념을 갖고 한 일이었겠지만 역사의식이 없었다.

 

"단기연호는 국가의 연속성을 나타내는 최고의 상징,
'단기연호 함께쓰기 서명운동'이 성공하려면 이론적 체계 뒷받침 되야
"

 

- 역사의식이란 무엇인가. 

 개인의 차원에서 보자면 역사의식이란 ‘시간의식’이다. 아이의 인지발달과정을 보면 18개월 즈음부터 시간에 대한 개념이 생기면서 ‘나’를 인식한다. 그러면서 ‘나’와 ‘엄마’ ‘아빠’가 다른 존재임을 알게 되고 자의식, 정체성이 생겨나는 것이다.

 국가도 그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개인의 시간의식을 사회적, 국가적, 민족적 차원으로 확대한 것이 바로 역사의식이다. 한 사람을 알려면 살아온 인생을 알아야 하듯, 한 국가를 이해하고 나아갈 방향을 알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는지, 즉 지난 역사를 알아야 한다.

▲ 양승태 교수

- 개인과 마찬가지로 국가 역시 역사의식을 통해 국가정체성이 생겨나는 것인가.

 그렇다. 국가는 살아있는 존재이다. 끊임없이 변화해온 역사의 산물이다. 요즘 ‘국가정체성의 위기’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역사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정책을 시행하는데 있어서도 부화뇌동한다. A를 하려다가도 누가 B라고 하면 흔들리고, B를 하려다가 누가 C라고 하면 또 흔들린다. 역사의식이 없으니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정책을 추진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단기연호가 중요하다. 역사의 연속성, 역사의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연호이다. 단기연호를 통해서 우리는 이 민족이 언제부터 왔고 어떤 역사적 흐름 속에서 지금에 이르렀는지 알게 된다.

- 그렇다면 앞으로 대한민국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

 대한민국은 1948년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니다. 대한민국이란 한민족의 역사 속에서 헌 옷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것이다. 그래서 현재만 떼어놓고 보니까 왼쪽에서 볼 때 다르고, 오른쪽에서 볼 때 다른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 정치의 문제점이 여기에 있다. 한민족이 시작된 고조선의 역사부터 알아야 한다. 우리 역사의 흐름을 알아야 미래를 위한 최선의 선택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