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서울역이 KTX가 생겨나면서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되었다. 혹자는 일제의 잔재니 허물어 없애야 된다고 했고 또 다른 이는 그것도 우리 역사라며 서울역의 새로운 탄생을 말했다.

▲ 스가와라 아츠시 씨가 서울역 중앙홀에 전시된 작가 이불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얼굴이 클로즈업되는 사진은 부끄럽다고 하여 멀리서 그의 모습을 찍었다.

 옛 서울역이 '문화역서울284'로 일반에 공개된 첫 날인 11일 스가와라 아츠시 씨는 "그래서 기대를 안고 왔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일제의 흔적일수도 있는 서울역을 어떻게 복원했을지가 궁금했다. 그런데 예상 외의 모습에 놀랐다. 그는 뭘 기대하고 온 것일까. 

 "그로테스크하고 무서울 거라고 생각했어요. 독일의 홀로코스트 박물관처럼. 한국이 원치 않았던 식민지 시대에 세워진 건물이니까요. 그런데 정말 예상 밖이예요. 정말 깨끗하고 예쁘기까지해요. '문화공간'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네요."

 스가와라 씨는 다른 관람객과는 달리 전시 중인 조형물보다는 건물의 벽과 천정, 조명 등 전체적인 시설에 더 관심을 보였다. 벽을 만지고 천정의 유리 마감을 보면서 "키레이데스네. (깨끗하네요)"를 연발했다. 평범한 고등학교 교사인 그가 문화역서울 284의 개장일에 맞춰 와서 옛 서울역을 찬찬히 뜯어보는 이유는 바로 그가 하는 활동 때문이다.

 "홋카이도(북해도)와 혼슈(본주, 일본의 가장 큰 섬)를 잇는 해저터널이 생기면서 이 사이 바다를 오가던 연락선이 사라지게 되었어요. 더 이상 수요가 없으니까요."

 그는 '세이칸 연락선 모임(語りつぐ青函連絡線の会)'이라는 비영리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세계 최장 길이(53km)를 자랑하는 세이칸(青函) 터널이 만들어지면서 이 곳을 오가던 배가 유명무실해졌다. 홋카이도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이 연락선은 큰 세상과 통하는 통로였던 것이다. 스가와라 씨는 여기서 한 번 더 힘주어 말했다.

 "새 것이 생겼다고 해서 그 역사까지 다 없어지게 둬선 안 되죠.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 남기고 또 후세에 알려야 합니다. 역사는 그냥 옛날이 아니라, 언젠가 다시 올 내일이기 때문이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곳으로 탈바꿈한 옛 서울역에서 스가와라 씨는 홋카이도와 혼슈를 이어주던 세이칸연락선의 미래를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