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신도의 나라다. 신도의 나라답게 일본 곳곳에는 사당이 많고 사람들도 신사참배를 습관처럼 당연시한다. 일본 황실에서도 해마다 11월23일 밤이면 ‘신상제新嘗祭’를 올린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제10대 스진 천황(崇神·BC 97∼30 때 미와산(三輪山) 대신신사(大神神社)에서 처음으로 천제를 지냈다는 기록이니 일본의 천제 역사는 참으로 오래되었다. 그러나 신상제를 비롯해 많은 사당의 전설과 역사의 진실을 파헤치면 일본문화 속에는 우리 고대사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

천황이 제를 지낼 때 입는 붉은 옷에도 그 흔적이 있다. 옷의 왼쪽 어깨 부분의 삼족오와 오른쪽의 두꺼비 문양은 놀랍게도 백제왕의 곤룡포와 똑같다. 1926년 일본 왕실보물 창고에서 나온, 백제의 곤룡포 그림이 이를 증명한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신상제날 초혼해서 청하는 신이 ‘한신’(韓神)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말미에 ‘아지매, 오게 오,오,오,오 오게’라는 고대 신라어가 그대로 나온다는 사실, 이는 일본 천제가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것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신상제의 시작이 스진 천황이라 했는데 그는 신라사람이다. 일본의 ‘고사기’와 ‘일본서기’ 두 사서의 “신라 천일창(天日槍)왕자가 곰신단과 옥, 칼, 양날 창, 청동거울 등 일곱가지를 가지고 왔다.”는 기록과 스진 천황이 미와산 대신신사에서 처음 천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국학신문 8월호 게재>

오늘날 미와산의 신궁터 등은 천일창이 곰신단을 모시고 천부경(天符經) 이념으로 시작된 국가 제사이다. 일본 신도의 시작이었으며 그 제사가 오늘까지 계승된 것으로 본다. 이 시기를 일본은 서기 1세기경으로 보고 있으나 이는 일본이 역사를 늘이면서 조작한 것이다. 우리나라 ‘연오랑과 세오녀’란 전설과 일본의 천일창이야기가 동일인물로 짐작되는바 3세기로 본다.

이렇게 짐작되는 이유는 초대왕 진무의 발자취가 바로 고구려 주몽의 일대기와 흡사하고 규슈의 슈겐도(修驗道수험도)가 단군의 선도문화가 건너가 정착된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 고대사, 일본 황실에 고스란히 들어있어

또 한웅의 신상을 모시는 사당 그리고 신라의 수도 경주와 마주하는 일본의 이즈모 지역 사람들이 사당에 둥근 돌을 신주로 모시고 지금까지도 달걀을 먹지 않는 풍습으로도 알 수 있다. 이처럼 계림의 난생설화인 신라개국신화 등 우리 고대사의 신화가 그대로 전수되기 때문이다.

사실 일본사에서 1대 천황 진무(神武)부터 9대 개화(開化)천황까지가 존재하지 않는 역사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니 스진천황이 일본의 첫 황제가 되는 셈이다. 이러한 역사를 파헤친 사람은 일본의 대표적 민족학자인 도쿄도립대 교수 오카 마사오(岡 正雄)다.

그가 1933년 박사학위 논문에서 “일본민족의 뿌리는 단군 천손 문화”임을 밝히고 중국 중원에서의 고구려 발자취와 신라 박혁거세, 가야 김수로왕의 역사를 규명했다. 당시 독일어로 발표된 논문은 일본 군국주의에 위배되어 밝히지 못하다가 1945년 이후에야 일본어로 번역되었다.

또한 그는 천부인 ‘3종 보기’(寶器)를 갖고 나라를 세웠다는 한국 신화를 본 뜬 것이 일본 신화의 ‘3종 신기’(神器)라고 단정한 연구논문도 발표한바 있다. 그 이후 많은 학자들이 바른 역사를 연구하며 천일창을 스진천황으로 보는 학자들이 생겨났다. 필자도 천황궁의 제사담당관 아베 스에마사(安倍季昌)악장을 직접 면담한바, ‘아지매’가 일본에선 천지인天地人임을 알았다. 우리 천부경 철학이 일본 황실에서 존재하는 증거다.

이 외에도 유전자 검사나 혈액형 분포도, 인골연구, 일본 개의 원종이 진도견과 제주도견이며 일본인의 78%~92%가 한반도 도래인이라는 통계가 이를 증명한다. 그뿐이랴! 일황이 직접 “자신의 몸에도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고 했으니 이보다 더한 증명이 필요할까.

48자의 일본문자도 일본왕실대학의 오노스스무가 발표한 바, 백제왕자인 왕인박사나 아직기 왕자 등 백제 사람들이 계속 일본으로 건너가 500여 년 간 이루어낸 결실이라고 했다. 이두를 구체적으로 분석해서 카다가나와 히라가나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렇듯 일본문화는 우리 천손 문화의 전래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천일창이나 연오랑에 대한 연구를 하지 않고 배우지도 않는다.

역사는 앞을 향해 쓴다. 역사연구는 숨겨진 사실을 찾아내는 것이다. 우리 역사학도들의 과제는 그동안 찾아내지 못한 우리의 눈부신 발자취를 밝혀, 바른 역사사실을 규명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