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선의 국시 ‘단군중심주의’

1979년에 이유립이 공개한 『환단고기』는 일제식민사관을 비판하였을 뿐 아니라 지난 날 조선왕조의 국시國是에 대해서도 비판하였다. 또한 대종교와도 다른 역사관을 제시하였으니 그 중심에는 신시개천神市開天이냐 단군개천檀君開天이냐 하는 문제가 가로놓여 있었다.

이유립의 단학회檀學會에서는 환웅의 신시개천을 주장하고 단군개천을 반대하였다. 일제의 역사왜곡에 맞서서 대종교와도 의견이 달랐다. 단학회 말고도 대종교에서 갈라선 정훈모의 단군교와도 또한 역사해석에서 달랐던 것이다.

그러니까 1910년의 망국을 전후하여 단군교, 대종교 그리고 단학회가 정립한 것인데 그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이기의 단학회와 나철의 대종교는 교리가 달랐다. 이기의 단학회는 환웅이 태백산에 내려와 신시를 연 것을 개천으로 보았으나 나철의 대종교는 단군 개천을 고집하였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현 대한민국은 단군 개천설을 채택하였고 단군릉을 발굴한 북한정권도 대한민국과 같은 의미의 개천절을 지내고 평양이 통일된 한국의 수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단군 개천은 조선왕조의 국시이자 국정사관이었다. 중종 때 박세무가 지었다는 『동몽선습童蒙先習』은 『천자문千字文』 다음으로 중요한 서당의 필수 교과목이었으며 그 첫머리에 단군 개천설을 명시하고 있다.

“동방에는 처음 군장이 없었는데 신인神人이 태백산 단목 아래에 내려오시더니 나라 사람들이 그를 임금으로 추대하여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하였으니 이가 바로 단군이시다.”

그러나 고려시대에 나온 일연의 『삼국유사』나 이승휴의 『제왕운기』는 『동몽선습』과 같이 신시개천을 주장하였다. 『삼국유사』는 이름을 알 수 없는 『고기古記』를 인용하면서 둘 다 단군이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환웅이 태백산에 내려왔다고 명기하였다.

그런데 그 뒤 조선시대의 교과서인 『동몽선습』에는 단군이 하늘에서 내려온 신인神人이라 하였다. 왕조교체와 동시에 환인과 환웅 그리고 단군에 대한 역사 인식이 변화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연의 『삼국유사』나 이승휴의 『제왕운기』에는 모두 태초에 천자이신 환웅(일명 大雄)이 천주인 환인의 명을 받아 태백산 단목 아래에 내려 와서 개천하였다고 하였다. 그런데 조선왕조가 건국된 후에는 단군이 하늘에서 내려와 동시에 하늘을 열었다고 해석하였다. 그 과정을 약술하면 다음과 같다.

양촌 권근은 그의 『응제시주應制詩註』에서〈시초에 개벽한 동이의 군주>(始古開闢東夷主)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해설하였다.

“옛날 신인이 단목 아래에 내려오시어 백성들이 그를 임금으로 삼았으니 그를 가리켜 단군이라 하였다. 때는 당요 원년 무진이었다.”

『고기』에 의하면 단목 아래로 내려온 분은 환웅이었다. 단군이 아니었다. 그래서 권근은 그 다음에 <증주增註>라 하여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상제上帝인 환인에게 아들이 있었으니 환웅이라 하였고, 그 아들이 단군이었다고 했다. 환웅이 태백산에 내려오셔서 웅녀와의 사이에 단군을 낳았다.”고 하였다. 그런데 끝부분에 가서 다시 ”들리는 설에는 태고에 단군이 나무 아래에 내려와서 동방에서 임금이 된 것은 요순시대라 한다.” 고 하였다.

권근은 하늘에서 내려온 분을 단군이라 하다가 환웅이라 하다가 다시 단군이라 하였는데 그 뒤에 나온 『세종실록지리지』에도 만찬가지였다. 「지리지」에도 단웅(환웅)이 하늘에서 내려 왔다는 고기를 인용하고 있다. 환웅을 단웅이라 한 것이 환웅과 단군 두 분을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서거정의 『동국통감東國通鑑』(성종 15년 1484)에 보면 단군이 천강天降한 것으로 되어 있다.

“동방에 처음 군장이 없었는데 신인이 단목 아래로 내려오시어 나라 사람들이 그를 임금으로 추대하였으니 이가 단군이시다.”

『동몽선습』의 설명과 똑같다. 『동국통감』이외에도 조선왕조 초기의 노사신의 『동국여지승람』(1430), 권제의 『역대세년가』(1436), 『용비어천가』 (1455), 『삼국사절요』 (1476),박상의 『동국사략』 (1474-1530) 등이 모두 그러하다.

이것을 단군중심주의라 부르고 싶은데 조선후기에 가서도 단군중심주의가 그대로 계승되었다. 오운의 『동사찬요』 와 조연의 『동사보유』등이 그러하다.

이렇게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신시개천의 기록을 지우고 환웅 대신 단군을 그 자리에 메운 것은 단군을 우리 역사의 우두머리에 세우려는 조선왕조 건국이념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면 단군 이전의 나라인 환인의 환국과 환웅의 신시까지 모두 역사가 아닌 신화로 치부된 것이며 단군의 조선 건국이 민족사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2) 환웅중심주의

『환단고기』는 이름 그대로 환인 환웅의 시대와 단군시대를 기록한 여러 사서의 모듬이다. 흔히 상고사라고 하면 단군 이후의 역사를 말하는 것으로 알았고 거의 모두가 대종교에서 나온 사서로 알았다. 그러나 『환단고기』가 묘사한 역사세계는 대종교의 그것과 달랐다.

김교헌의 『신단실기』와 『신단민사』 그리고 윤세복의 『단조사고』등 대종교의 상고사는 『환단고기』의 상고사와는 확실히 서로 달랐다. 한마디로 말해서 대종교의 상고사관은 단군중심주의인데 반하여 단학회의 상고사관은 환웅중심주의이다.

대한민국이 건국 초에 개천절을 국경일로 정할 때 “단군개천이냐 환웅개천이냐”를 놓고 토의하다가 단군개천으로 방침을 정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이미 35년 전 한말에 나철과 이기 사이에서 벌어졌던 의견 차이였다. 『환단고기』는 태초에 환국이 있었는데 그 강역이 바이칼호 이동의 남북 동서가 5만리 2만리 땅이었다.

“『고기』에 이르기를 파내류波奈留산 아래에 환인씨의 나라가 있었다. 천해(바이킬호) 동쪽의 나라를 또한 파내류 국이라 한다. 그 땅의 넓이는 남북이 5만 리요 동서는 2만 여리에 이르니 이를 합하여 환국이라 하였다. 거기다 환국의 역년歷年은 3,301년 또는 63,182년이라 하였다. 그리고 또 환국에 소속된 나라는 모두 12국이었다. 국명까지 나온다.
1) 비리국 2) 양운국 3) 구막한국 4) 구다천국 5) 일군국 6) 우루국 (또는 필나국 일명 필나국) 7) 객현한국 8) 구모액국 9) 매구여국 10) 사납아국 11) 선비국 12) 수밀이국”

이렇게 되면 한국사가 아니라 세계사인 것을 알 수 있다. 그 전에 나반과 아만의 이야기가 나오니 더욱 그것은 인류의 역사이지 한국사가 아니다. 위에서 보듯이 우리 역사는 동시에 세계사였다. 단군이 조선을 건국하기 훨씬 전에 환인 즉 안파견이 나라를 세워 7대를 전했다. (삼성기 전 상편) 이어 환웅이 천신인 환인의 뜻을 받들어 백산과 흑수 사이(오늘의 동북삼성)에 신시를 세웠다. 일명 배달이라고도 한 신시는 18세를 전했다. 그런 일이 있은 뒤 비로소 단군이 신인(神人)으로 조선을 건국한 것이다. 단군은 현묘지도를 득도得道하여 백성을 교화(接化群生)하였다고 했으나 현묘지도는 본시 환인이 환웅에게 전한 교시였다. 단군의 조선은 무진년(BC 2333)에 건국하고 47대, 햇수로는 2096년을 헤아렸다.

『환단고기』의 이 기록을 허황하다고 하여 국내 역사가들은 믿지 않았고 지금도 믿지 않는다. 그러나 필자가 알기로는 인류의 역사는 10억년이나 된다고 하며 지금 인류는 그 수명을 다 살아 멸종직전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구는 그 형성과정에서 지형과 지도가 여러 차례 바뀌어 구대륙舊大陸에서 신대륙新大陸으로 모습을 바꾸었다고 한다. 지금의 지도는 신대륙의 지도이다.

구대륙시대에는 오늘의 히마라야(흰머리산) 산이 깊은 바다였다. 또 그 동안 여러 차례 빙하기가 지나고 지금은 간빙기間氷期에 해당하는데 앞으로 기후가 다시 추워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인류의 미래는 매우 불안하다. 이같이 길고 긴 자연사에서 단군의 3000년, 6000년은 일순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상고사의 국맥(上古史의 國脈)

桓國- 神市- 단군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大震國) 
                                              백제
                                              신라 -고려- 조선 -대한제국

<다음편에는 '환단고기 속 치우천왕의 중원 정복과 한민족의 기상'을 게재합니다. 많은 기대바랍니다.>

 

한국학중앙연구소 명예교수.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명예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