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왕검 4380돌 탄신을 축하하는 세계국학원청년단. 단군 47대를 상징하는 47명의 청년단과 어린 단군이 모여 생신 떡 케이크를 잘라 시민들과 함께 나눴다.

 

올해 음력 5월 2일(6월 3일)은 국조 단군 왕검의 4380번째 탄신일이다. 국조 단군 왕검 탄신일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촉구하고 바른 역사 정립을 위한 행사가 6월 3일부터 5일 사이에 열렸다.

세계국학원청년단은 지난 6월 3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단군 왕검 탄신일 기념잔치 및 ‘단군 왕검 탄신일 국경일 제안’ 서명행사를 했다. 젊은이들은 일제에 의해 신화로 전락한 단군 왕검 역사를 2007년이 되어서야 국사 교과서에 회복하고도 국민 다수가 신화로 배우고 있는 현실을 창작연극으로 재치 있게 풀었다.

먼저 1부에서는 영화 ‘쿵푸 팬더’를 패러디하여 어린이용 동화책에 나오듯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고자 동굴에서 쑥과 마늘을 먹으며 수행했으나 사람이 되지 못했다. 청년들은 ‘간 때문이야’ 광고 송을 패러디해 “왜곡하지 마. 왜곡하지 마. 단군은 신화 아니야.” 라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추었다.

2부에서 웅족과 호족의 공주 웅녀와 호녀가 깨달음의 수행에 들어가 웅녀가 드디어 깨달음을 얻고 아름다운 선녀춤과 옛 선조의 수행법인 기공을 선보였다. 환웅의 청혼을 받은 웅녀가 부부가 되고 단군 왕검이 탄생하는 순간, 참석자들과 함께 축하와 환호를 보냈다.

이어 고조선 47대 단군을 상징하는 47명의 젊은이가 함께 탄신축하 떡 케이크 나누기 퍼포먼스를 했다. 이날 청년단은 “단군 왕검 탄신일을 국경일로 하자.”는 제안 서명판을 만들어 시민의 서명을 받았다. 이날 행사를 지켜보던 시민들은 기꺼이 서명에 동참하고 함께 모여 “단군 47대 역사를 올바로 세우자!”고 결의를 다졌다.

웅족의 공주 웅녀와 호족의 공주 호녀의 역사이야기로 풀어낸 단군왕검 탄생

이날 두 아들과 그 친구들을 데리고 온 주부 이지숙 씨는 “예전에 나왔던 책들 중 ‘단군신화’라고 적힌 책들이 많다. 우선 공공기관에 게시된 책만이라도 정비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재미교포 2세 정미영 씨는 “딸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국에 왔다. 단군 왕검 이야기를 딸아이에게 이제 알려줘야겠다.”고 했다.

한편, 전북선도문화연구원은 이날 오전 10시 선도명상의 메카 모악산에서 단군 왕검 탄신잔치와 홍익정신을 실천하는 경로잔치를 개최했다. 마을 어르신들을 모시고 탄신기념 공연, 고조선 역사 소개, 제천행사 등을 펼쳤다. 이외에도 단군 왕검 탄신을 축하하는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렸다.

 

국학원은 6월 4일 한민족역사문화공원서 단군왕검 탄신축하 천제를 했다.

 

사단법인 국학원은 다음 날인 4일 오후 4시 세계 최고 높이의 단군 왕검 입상이 세워진 한민족역사문화공원 천단에서 탄신축하 천제를 올렸다. 천안시민과 서울 대구 대전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온 국학강사 및 국학후원회원 300여 명은 신명 나는 민요와 풍물놀이를 하며 지신밟기를 했다. 쑥을 태워 주변을 정화하는 번시례에 이어 천부경 봉송과 함께 천손민족의 의례인 전통 천제를 올렸다. 천제 주관자는 단군 할아버지께 축원문을 올리고 참석자들은 홍익정신을 널리 알리는 사명을 다지고 민족통일과 인류평화, 가정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했다.

또한 민족종교 선불교는 5일 충북 영동군 양산면에 위치한 국조전과 제주 애월읍에 있는 제주도원에서 각각 단군탄신대법회를 개최했다. 충남국학원도 같은 날 천안 시내 거리에서 시민홍보 형식으로 단군 왕검 탄신일을 알리는 행사를 했다.

우리나라의 비약적인 경제성장과 함께 국제사회에서의 역할이 중요시되는 시점에 정체성 확립과 그 기반이 되는 바른 역사 정립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국조 단군 왕검은 탄신일과 하늘로 돌아가신 어천절(음력 3월 15일)등이 밝혀져 있다. 그러나 달력을 보면 외국의 성인을 기리는 성탄절과 석가탄신일은 있어도 국조 탄신일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 반만년 역사의 시작인 국조 단군 왕검의 역사를 바르게 세우지 못하고 진전된 역사 연구가 부족하여 신화차원에 머물고 있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때 단군왕검 탄신일을 기념하며 국민적 관심을 촉구하는 움직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학신문 7월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