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사학, 특히 국사학은 일제식민사학에 의해 크게 훼손되었다. 중국과 타이, 그리고 일본 등 세 나라를 제외한 거의 모든 전 식민지 국가(前植民地 國家)들은 서구 제국주의 열강에 의해 그 역사가 훼손되고 말았다. 우리나라를 식민지화하여 자기나라 역사를 600년이나 늘린 일본도 지금 그 역사가 망가져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

 한 번 훼손된 역사는 바로 잡기 힘들다. 우리는 일제의 교활한 역사왜곡 정책에 분개하고 반세기간 역사독립운동을 감행했고 다행히 그 결과 우리 역사의 몸체는 살아남았으나 머리와 사지는 잘리어 장애인이 되고 말았다. 그 중 가장 크게 상처 난 부분이 역사의 머리 상고사였다. 머리가 없고 손발이 없으니 그런 역사를 가지고 어디 힘을 쓰며, 누구하고 싸운단 말인가.

 일제는 1930년대에 소위『조선사』35권을 간행하여 우리 역사를 박혁거세의 신라 건국부터 시작한다고 선언하였고 무기력한 우리 학계는 그에 따랐다. 그러고 보니 단군은 물론 혁거세 이전의 상고사와 중고사는 불에 타 없어져 버렸다. 지금도 그 연기와 잿더미가 남아있다.

 여기에 일조한 것이 우리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였다. 다름이 아니라 상고사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일제의 소행에 대해 반항할 힘이 없었던 것은 상고사, 즉 『환단고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삼국유사가 단군만은 살려 냈고, 제왕운기는 단군 이후의 삼한사를 모두 우리 역사라는 말 한 마디로 약간의 공로를 세웠으나 그 이상의 공은 세우지 못하였다. 교활한 일제는 환국시대와 신시시대를 신화처럼 꾸민 『삼국유사』를 빌미 삼아 환단시대를 모조리 없애고 말았으니 우리의 상고사는 이중 삼중으로 타격을 입어 땅에 쓰러지고 만 것이다.

 역사학은 물론 민속학과 언어학, 그리고 고고학이 모두 일제의 농간에 놀아나 삼국시대 초기를 원原 삼국시대라 하면서 역사가 아니라고 못을 박았다. 그러니 2,000년 역사가 그나마도 잘리어 1,500년으로 축소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그런 변질된 한국사를 다시 가르친다면 우리 국사 교육은 하나마나 한 교과목이 되고 말 것이다.

 가장 통탄할 일은 오늘날 우리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데 있어 모든 사실이 삼국 이전으로 소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역사가 없어졌으니 문화가 살 수 있는가. 심지어 사회주의자들까지도 <고대노예제>, <중세봉건제>, <근대자본주의>라는 공식적 시대 구분에 따라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좌우익 가리지 않고 사회, 경제, 문화, 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민족문화는 보잘 것 없는 꼴이 되고 말았다. 역사의 왜곡은 이처럼 인문 사회 모든 분야에 영향을 주어 우리 민족문화는 민족 고유문화라는 버틴 목이 없는 식민지 문화가 되고 말았다.

 우리 문화의 주체성이 훼손되어 삼국시대에 들어온 유, 불, 도 외래삼교가 민족문화의 전부가 되고 밖에서 들어온 사랑방 손님이 안방을 차지하고 말았다. 도무지 환단 시대의 민족문화는 입 밖에도 내지 못하게 되었으니 국학이 있을 자리가 없고, 이 나라에 식미지학과 일본학日本學만 남게 되었다.

 광복 후에도 우리의 인문학계는 일제강점기의 인문학을 그대로 계승하여 그 이름이 한국학이 되어 참다운 우리 국학, 우리 문화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런 현상을 문화식민주의라 하며 일본제국주의주의 역사학이라 한다.

 일제 식민사학 이외에도 우리나라에는 고질적인 문화식민주의가 이미 조선시대에 있었으니 민족사와 민족문화를 단절시키는 양귀비 꽃나무의 뿌리가 길고 굵었다. 우리나라가 온전하려면 역사와 문화부터가 온전해야 하고 정신부터 제대로 잡혀야 하는데 모두가 들떠서 국풍은 온데 간 데 없고 외풍外風만 이 나라 학계와 문화계를 휩쓸고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국민 모두가 감기 들어가고 있다. 아니 자칫 잘못하면 안락사 하게 되었다.

 지금 우리나라는 경제와 정치문제에만 매달려 정신문화의 중요성을 잊고 있다. 영어공부에만 시간을 낭비하는 차세대를 어떻게 믿고 100년 뒤의 이 나라를 맡길 것인가. 10년 뒤도 못 보는 위정자들이 나라의 미래를 망가뜨릴 것을 그냥 보기만 할 것이 아니다.

 

박성수 한국학중앙연구소 명예교수,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명예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