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영동군에 위치한 학산가공공장을 찾아가는 길은 시속 60km의 차 안에서도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느껴졌다. 2차선 도로 위에는 마주오는 차도, 사람도 보이지 않고 이 세상에 마치 홀로 존재하는 것 같았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천모산유기영농조합 학산가공공장은 폐교를 고쳐 공장으로 쓰고 있었다. 강을 끼고 넓게 펼쳐진, 한때는 학교 운동장이었을 들판에는 들꽃이 활짝 펴 있다.

 "방사능이 무섭긴 무서운가 봐요. 예전에는 저 앞 들판(한때는 운동장이었을)에 쑥 뜯으러 오는 어르신들이 많았는데 올해는 한 명도 오시지 않네요."

 서글서글한 인상에 한 눈에도 사람 좋아 보이는 황정선 팀장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천모산유기영농조합에서 판매하는 제품 중 40%정도를 이곳 가공공장에서 생산한다. 직원은 본인 포함 단 두 명.

 충북 영동군에 있는 천모산유기영농조합은 친환경 농법으로 청정 농산물을 생산하는, 지속 가능하며 미래지향적인 공동체를 꿈꾸는 곳이다. 천모산 자락에서 자란 작물들을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으로 만드는 것이 학산가공공장이 하는 일이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된장, 고추장, 간장 장(醬)류 및 포도, 배 등으로 만든 과일즙, 그리고 천마진액, 죽염 등이다.

 황 팀장은 서울대학교 졸업 후 대전 대덕연구단지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던 공학도였다. 그런 그가 농촌으로 내려와 11년 동안이나 친환경 먹을거리를 만들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 천모산유기영농조합 학산가공공장 황정선 팀장(오른쪽)과 고민정 씨

 “한 방울의 물이 컵에 가득 찬 물을 넘치게 할 수도 있다.”

 단 두 명이 모든 제품을 다 만든다는 것이 놀라움을 넘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이전에는 5명까지 함께 일하기도 했다. 천모산유기영농조합이 만드는 제품이 많다보니 인력이 부족하다. 그렇지만 사람이 자꾸 바뀌면 제품의 맛이 변하기에 고용할 때 신중해진다. 한편으론 식품마다 만드는 시기가 정해져 있어 시간 관리가 가능하다. 배즙, 포도즙은 딱 그 철에 만들면 되고, 배즙 끝나면 메주 쑤고, 죽염 만들고, 중간 중간 천마진액 만들고, 봄 되면 장 담그고 하다 보면 1년이 지나간다.

 11년간 한결같이 일한 원동력은 무엇인가?

 사람이 먹어야 살 수 있다는 건 누구나 안다. 나는 그 사람이 무얼 먹느냐가 그 사람의 성격이나 생활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요즘 탄산음료나 패스트푸드 등을 많이 먹어 ADHD나 아토피가 많이 생겼다고 하지 않나?

 반대로 생각을 하면 잘못된 것을 먹어 그런 질병이 생겼다면 올바른 먹거리를 통해 질병이 줄어들고 건강해질 수 있고, 그 사람의 마음과 정신도 바로 서지 않을까 싶다. 사람이 무언가 하고자 하는 뜻을 세울 때는 그 바탕이 몸이고 음식이라고 본다.

 몇 년 전 크게 유행한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을 보면 사람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그 안에 에너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처럼 내가 만든 먹거리로 아주 작더라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면 보람을 느낀다. 컵에 물을 따를 때 처음 한 방울은 별 영향이 없지만, 컵에 물이 가득 차 있을 때 딱 한 방울이 컵 안에 들어 있던 물을 넘치게 할 수 있다. 정성 들여 만든 식품을 먹은 소비자들이 생활에 도움이 되었다든지 아무튼 그런 말을 들으면 보람을 느낀다.

 내가 먹은 먹을거리를 통해서 에너지를 얻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냥 입으로 들어가서 배만 부른 것이 아니라 1% 아니 단 0.1%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 학산가공공장에서 생산하는 먹을거리들.
 제품의 질과 이익은 불가분의 관계인 것 같다. 천모산유기영농 제품이 전국으로 소문이 나 주문량이 폭주하게 된다면?

 많이 팔리면 이익이야 많이 남겠지만, 제품에 대해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까지 생각한다. 내가 이 재료에 대해 얼마만큼 확인했고 검수를 했는지, 제품의 질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다. 내가 혼자 다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 대신 나와 유사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간장, 된장 등의 장류는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상품가치가 더 높아지기에 재고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일하면서 어려움을 느꼈거나 슬럼프를 겪은 적은?

 좀 더 좋은 상품을 만들고 싶은데 안될 때, 시행착오도 필요하지만, 그럴 때 답답함을 많이 느낀다. 장은 6년 정도 담그다 보니 이제야 아~, 하고 느낌이 온다.

 집에서 요구르트 만드는 것만 봐도 쉽게 하면 쉽게 된다. 집에서 내 입맛에 맞춰 만들던 요구르트가 제품화되면서는 복잡해진다. 내가 원하는 어떤 수준, 미묘한 맛의 차이, 일관된 맛을 내고 일관된 상품이 나오기까지가 어렵다. 맛이라는 것이 취향이기에 사람들의 취향은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공통분모를 찾아서, 많은 사람이 수긍할 수 있는 범위를 찾는 것이 관건이다. 내가 이걸 먹었을 때 만족스럽게 느끼는 맛과 사람들이 느끼는 맛, 큰 틀에서는 같을지 몰라도 작은 틀에서는 선호하는 부분이 다르기에 그 차이를 줄이기 어렵다.

 특히 포도즙, 배즙, 천마진액 등은 유통기한 내에서는 큰 문제가 없는데, 장 종류는 발효식품이다 보니 항아리 안에서 끊임없이 변해 더 까다롭다.

 만드는 제품군이 꽤 많은데 언제 쉬는가?

 직장인처럼 주말에 쉬는 건 없지만, 피치 못하게 쉬어야 할 때가 있다. 날씨가 안 좋을 때 말이다. 장 담그려 하니 황사가 온다거나 하면 쉰다.

 
 매일 정성을 들이고 수행하는 마음으로 

▲ 황정선 팀장의 정성이 담긴 각종 장 종류들
 우리 조상은 ‘음식 맛은 장맛이다.’, ‘집안이 망하려면 장맛부터 변한다.’ ‘말 많은 집이 장맛도 쓰다.’ 등 장맛을 통해 그 집안을 봤다고 하더라. 장 전문가에게 그 의미에 대해 물어보고 싶다.

 집안에서도 거실, 뒷방에 햇볕이 들어오는 것과 바람이 부는 것이 다르다. 뒷방은 환경에 신경을 더 써줘야 한다. 환기를 자주 시켜주고, 청소를 자주 하든지 관리를 잘해야 한다.

 '작물은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큰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관리를 해주고 정성을 주면 잘 자란다는 말이다. 장 종류도 혹시 벌레가 들어가거나 물이 들어가지 않게 끊임없이 신경을 써야 한다.

 장맛이 변하는 것이 발효과정 때문에 이상해질 수도 있지만, 서로 싸우고 화가 나 있을 때 장을 담근다면 부정적인 에너지가 그대로 들어가 맛이 잘 나올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매일 수행하고 정성을 들인다는 마음으로 산다.

 우리 조상은 장 담그는 날은 기일을 택하고 최대한 정성을 들였다. 그렇게 하는 것이 미개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막상 해보면 우리 조상이 장을 담근 방식을 따르면 장맛이 더 좋다. 과학이라는 것은 내가 하는 과정들을 수식으로 표현하는 것일 뿐 합당한지는 결과를 보면 명확히 나타나는 것이다.

 정성이라는 건 결국 에너지다. 내가 어떤 에너지로 만들고 대하느냐에 따라서 좋은 균도 잘 발효가 일어나게 할 수가 있는 거고, 화가 나서 왔다 갔다 하면 항아리 속에서도 뿔이 나고, 그걸 먹은 사람도 입안에서 뿔난 맛이 느껴진다.

 

▲ 오늘은 된장 담그는 날

 
지금 현재의 이익보다 다음 세대를 생각해야

 최근 동일본 대지진으로 시금치에서 방사능 물질이 검출되고, 식품 안정성에 대한 관심이 많다. 유기농, 친환경 재배, 무농약의 차이는 무엇인가?

 대개 농약이라든지 화학비료를 사용하면 관행 농법에 따른 농산물이라고 한다. 대신 국산이냐 아니냐를 따진다.

 저농약, 유기농, 무농약으로 재배한 작물을 친환경 농산물이라고 한다. 농약이라든지 화학비료를 줄이거나 아예 사용하지 않은 작물이다. 저농약은 최소한도로 농약을 사용하는 것이고, 무농약은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지만, 화학비료는 사용한다. 유기농은 화학비료조차 사용하지 않고 퇴비를 만들어 쓴다.

 농사짓는 대부분이 연로하신 어르신들이라 힘에 부친다. 농약이라든지 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일정 부분의 수확을 하기가 쉽지 않다.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수확량이 유지되려면 인력이 더 필요하다. 아니면 수확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그런데 농부가 ‘올해까지만 농약 비료 쓰다가 내년부터 유기농으로 지어야지.’ 마음먹는다고 그렇게 되지 않는다. 이미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했기에 각종 병충해로 그 땅에서는 작물이 자라지 않는다. 유기농 재배를 위해서는 몇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그동안 수입이 없으니 선택이 쉽지 않다. 소비자들은 친환경 농산물이 비싸다고 인식하지만, 관행 농법보다 친환경 농산물은 들인 수고에 비하면 이익이 너무나 적다.

 농약이나 비료를 사용하면 지금 당장은 수확량이 많으나, 일정 시간이 지나면 수확량이 줄어든다. 땅의 지력이 소모되었기 때문이다. 농약이나 비료는 모두다 석유를 기반으로 한 석유에너지이다. 따라서 세계금융위기로 석유 가격이 폭등하면 비료 값도 덩달아 오르게 되고, 생산성은 더 악화하는 구조이다.

 선진농업국이라는 미국이나 유럽이 경쟁력이 있다고 하지만 정부 보조금이 모두 있다. 정부 보조 없이 유지되기 어렵다. 따라서 유기농 재배를 하는 농부들은 장기적으로 본다면 오히려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석유 가격은 계속 오를 것이고, 농약을 쓰면 쓸수록 생산량은 떨어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옛날 농사 방식으로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면 마치 마법의 가루처럼 보인다. 몇 배씩 수확량이 나오고, 힘도 안 들지, 속된 표현으로 눈이 뒤집힌다. 그렇지만 그 사람이 사는 세대까지는 그 방식이 유지가 될 지 모르지만 30, 50년이 지나면 수확량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화학 농법으로 일군 땅은 결국에 지력이 고갈되고 만다. 현재 많은 나라가 그런 위기를 맞고 있고, 땅 넓은 나라들은 거기다가 농사 안 짓고 다른 땅을 쓰고, 회복되면 다시 농사짓는 방법을 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사회 이슈다. FTA가 통과되면 많은 농작물이 수입될 건데 그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가?

 미국이나 유럽에서 우리나라로 수입된다면, 당장에는 싸게 느껴질 것이다.
 나는 가격 자체를 떠나서 과연 그만한 거리를 이동하는 것이 어떤 영향을 미칠까 싶다. 그만큼 안 써도 되는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이고 그게 결국 지구환경에 미래 세대에 부담된다. 단순히 가격만 비교했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고려하지는 않은 정책이다. 장기적으로 얼마나 갈수 있느냐, 지속 가능하나를 문제의 본질로 봐야 할 것이다.

 최근 영국에서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자 ‘월요일은 고기 안 먹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고기를 먹지 않고 채식을 한다면 지구환경 오염을 막을 수 있을까?

 무게당 석유 소비를 보면 소가 1등이다. 소 방목을 위해 아마존 우림이 사라지고 있고, 쇠고기 생산 과정에서 방출되는 온실가스 비중은 18%로 교통수단에서 생기는 13%보다 많다는 것이 유엔의 분석이다.

 그렇다고 채식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본다. 다국적 농업기업 M사와 같은 다국적 기업들은 가격이 폭락한 작물들은 버릴지언정 절대 싼 값에 팔지 않는다. 일부 농부들은 내가 먹을 것과 파는 것은 따로 재배한다고도 한다.

 결국, 의식의 문제인 것 같다. 나와 지구, 땅이 하나다 생각한다면 달라질 것이다. 나와 땅이 별개의 존재로 보기 때문이다.

 

▲ 장독 안의 간장에 영동의 푸른 하늘이 비친다.

 친환경 먹을거리로 이야기를 시작해 지구 온난화, 환경오염, 인류의식까지 범주가 커졌다. ‘나와 땅이 하나’임을 자각할 때 지구 환경이 훨씬 나아질 거라는 그의 말에서 진정 사람을 생각하고 땅을 생각하는 지구시민의 정신이 느껴졌다.  

 황정선 팀장은 현재도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제품을 개발 중인데 비밀이란다. 전직 연구원 아니랄까봐 항상 공부하고, 연구하고, 시도하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왜 이 일을 하느냐고 물어보니 “재밌거든요.”라며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