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화점에 쌍화(雙花) 사라 가고신, 회회(回回)아비 내 손모글 주여이다.(만두를 사러 갔더니 아랍인이 내 손목을 쥐더라) "
이 노래는 고려 충렬왕(재위 1274~1308)시기 궁중 잔치 때 부르게 한 고려 가요의 첫 마디이다. 남녀상열지사를 노래한 이 가요에 등장한 회회아비는 원(元)간섭기에 고려에 진출한 아랍인으로 당시 국제 관계를 볼 때 위구르인일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5월 20일, 네 번째 세계인의 날을 맞았다. 우리나라는 올해 1월로 귀화인 10만 시대를 맞이했다. 유엔도 2007년 대한민국을 이민을 받는 나라(受民國)으로 선포했고 3월 말 현재 국내 체류 외국인이 130만 명을 넘었다. 또한 2004년 이후 매년 결혼하는 한국인 10~14%가 외국인 배우자를 선택한다. 취업, 결혼, 유학 등 다양한 이유로 우리나라는 다문화, 이민사회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국민이 가진 '단일민족'이란 의식이 다문화사회를 저해하는 요소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과연 원래 우리가 다인종 다문화를 배척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었을까?

지난 4월 국방부는 장교 임관선서, 병사 입대 선서 등 軍선서문에 '민족'이라는 단어를 삭제하고 '국민'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대한민국의 군인으로서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고":라는 문구에서 나날이 증가하는 다문화가정 출신을 배제한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이라 발표했다. 
 

▲우리의 창세기라 할 수 있는 <부도지>에서 최초의 인류가 살았던 마고성이 위치했다고 추정되는 파미르 고원. 파미르는 옛 페르시아말로 '미트라(태양)신의 자리'를 뜻한다고 한다.

서구의 ‘민족’개념과 한민족의 ‘민족’개념은 서로 달라

'민족'이라는 단어가 배타, 폐쇄적이며 국수주의 의미로 인식된 것은 서구 민족주의가 내셔날리즘의 기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부산대학교 민영현 교수(철학과)는 "서구에서는 중세 유럽이 붕괴하면서 절대왕권을 확대하기 위해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이 내셔날리즘이 호전적 국수주의인 나치즘, 징고이즘, 쇼비니즘으로 변화하면서 '민족'이란 단어가 국수적 용어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동양에서 하나의 민족이라는 개념은 문화를 같이하는 문화 영역권을 의미했다."고 한다. 민 교수는 서양의 ‘민족’용어와 개념이 근대적 학문체계와 함께 들어오면서 오해와 혼돈, 왜곡을 낳았다고 한다.

민 교수는 "특히 홍익인간 정신을 건국이념으로 하는 한민족은 여러 씨족 부족 등을 모두 아우르는 공동체의식이 강했다. 중국의 사서 중 조선(고조선을 일컬음)에 관한 내용을 보면 배달족 동이계열은 예족, 맥족 등 9한족이라 하여 여러 민족이 함께 이룬 나라였다. 그 이전  <부도지(符都誌)>에 기록된 우리의 창세기 기록은 인류 전체를 하나의 세계 시민으로 보는 '사해동포주의'가 나타난다."고 강조했다.

신라 박재상이 쓴 <부도지>를 보면 최초의 인류는 마고성에서 1만 2천의 무리를 이루어 다함께 이상적인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다. 땅에서 나는 지유(地乳)를 먹고 하늘의 소리를 듣고 만물에 깃든 마음의 본체를 읽는 지혜로운 눈을 가졌다. 그러다 지소씨라는 사람이 포도를 먹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권하면서 포도의 다섯 가지 맛을 알게 된 사람들이 번잡하고 사사로운 욕망과 감성에 휩싸여 다투는 '오미의 변'이 일어났다.

마음이 어두워지고 천성을 잃어버려 혼란해지자 마고성까지 위협을 받았다. 이에 본성을 회복해서 돌아오겠다는 복본의 서약을 하고 마고성을 떠났다. 이때 나간 네 무리 중 황궁씨가 3천 명을 이끌고 가장 춥고 위험한 천산주로 향했다. 또한 청궁씨 백소씨 흑소씨 등이 각각 동, 서 남쪽으로 향했는데 이들이 인류의 조상이며, 황궁씨가 한민족의 선조로 일컬어진다.

우리의 역사를 살펴보면 가야국 김수로왕의 비인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후, 최초의 귀화인으로 사서에 기록된 고려시대의 쌍기(雙冀), 고려 충렬왕으로부터 성을 하사받고 국내에 정착한 '덕수 장씨' 가문의 시조 위구르인 장순룡, 조선 인조 때 귀화한 네델란드인 박연 등 외국인을 수용했던 기록이 있다. 몇몇 인물에 대한 기록뿐만 아니라 민간 설화나 신화, 유물 유적을 통해서도 우리 민족이 폭넓게 세계와 교류하고 문화를 수용했던 흔적들이 발견된다. 몽골은 우리나라를 '어머니의 나라',  청왕조를 세운 누르하치는 '부모의 나라' 터키는 '형제의 나라'라 불렀다.

우리에게는 다인종 다문화를 폭넓게 수용했던 수천 년의 지혜의 역사가 있다. 서로 다른 문화를 존중하며 우리 토양 위에 세계인이 다양한 문화의 꽃을 피워냈던 우리 본래의 모습을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