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1일, 서울시교육청(교육감 곽노현)은 서울시 초중고교 모든 체벌을 전면 금지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학생 인권 조례를 발표했다. 체벌이 아닌 사랑과 믿음을 바탕으로 자율적 민주교육을 확립하기 위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그로부터 반년이 지나 맞게 된 스승의 날, 각종 매체에서는 ‘갈수록 낮아지는 교사들의 직업 만족도’, ‘무참히 떨어진 교권’ 등 듣기만 해도 답답해지는 우리 교육 현실에 대해 토로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정말 교사와 학생들 사이의 신뢰나 존중은 더는 떨어질 곳이 없을 만큼 떨어져 버린 걸까.

▲ 미양중학교 이정임 교사

 쉬는 시간 종이 울리자 학교 본관에서 아이들이 밀물처럼 쏟아져 나온다. 사진을 찍기 위해 홍익봉사단 ‘해피브레인’을 기다리고 있는 이정임 교사(41) 주위로 아이들이 몰려든다. “선생님, 저 오늘 수학 시간에요…” “선생님! 있다가 애들이 선생님하고 이거…” 눈길 한 번, 고갯짓 한 번 더 받고 싶은 아이들, 초롱초롱 반짝이는 두 눈에 선생님을 향한 사랑이 가득하다.

 사랑 가득한 아이들의 저 눈빛에 괜한 궁금증이 생긴 기자, 같이 ‘해피브레인’ 동아리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민정이(16)에게 물었다. “이정임 선생님 어떠셔?” “완전 좋아요. 항상 좋은 말씀 많이 해주시고. 우리 입장에서 생각해주세요.”

 동아리 회장도 따로 없고 봉사활동 시간을 주지도 않는다. 그런데 전교에서 25명의 아이가 모여서 매달 ‘널리 모두를 이롭게’ 하기 위한 홍익 봉사 캠페인을 한다. 스승의 날을 맞아 선생님들에게 특별한 ‘사랑’을 전한 홍익봉사단, ‘해피브레인’ 담당 이정임 교사를 18일 미양중학교에서 만났다.

▶ 아이들이 선생님을 향한 사랑이 흘러넘친다. 비결이 뭔가.

 비결이 있다면, 아이들을 만날 때 나를 비운다는 것이다. 내가 슬프거나 기쁘거나, 우울하거나 즐겁거나 어떤 것이든 내가 감정에 가득 차 있으면 아이들의 상태를 마음을 읽을 수가 없다.

 너무 기쁜 것도 나만의 기쁨이고, 너무 슬픈 것도 나만의 슬픔이다. 내 감정으로 가득 차 있으면 아이들의 감정이나 상태를 받아들일 공간이 부족해진다. 나를 비울 때 아이들과 통할 수 있다.

▶ 힘든 것과 슬픈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런데 기쁜 감정도 비워내야 하나.

 그렇다. 내가 아주 기쁘면 쉽게 오버하게 된다. 그래서 아이들이 불편하게 느끼게 된다. 아이들은 공감할 수 없는 나 혼자의 감정, 기쁨이기 때문이다.

▶ 내가 비워졌을 때 아이들과 통할 수 있다는 말, 참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참 어려운 말이다.

 예를 들어 가령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짜증 나는 일이 있어서 그 감정에 빠지면 아이들을 만나서 웃을 수 없다. 교사의 에너지에 아이들은 금세 공명(共鳴)한다. 그래서 나는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보면서 크게 웃거나 미소 지으면서 긴장을 이완시키고 아이들을 만난다. 나라고 처음부터 알았겠나. 아이들을 만나면서 항상 고민하다 보니 조금씩 알게 되는 것 같다. 뭐든 연습이 필요하다.


▶ ‘해피브레인’은 봉사활동 시간을 주지 않는 봉사동아리다. 그런데 아이들이 정말 적극적이다. 아이들이 직접 캠페인 주제를 정하고 기획하고 준비하고 다 알아서 한다. 무엇이 아이들을 이렇게 움직이게 한 건가.

 아이들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이유는 스스로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해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다’는 마음을 이끌어 냈다.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을 돕고 싶고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나는 아이들이 ‘홍익’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준 것뿐이다.

 여기서 좀 더 바람이 있다면, 아이들이 홍익봉사단 활동을 하면서 느낀 것들을 스스로 성찰하고 자신의 삶을 더 풍부하게 만드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그리고 이런 활동이 남아 미양중학교의 자랑스러운 학생 문화로 남게 되기를 바란다.

 

▲ 이정임 교사와 홍익봉사단 '해피브레인' 3학년 아이들 (왼쪽부터 박세영, 안민정, 강해인, 김희주)

▶ 이정임 교사가 생각하는 스승, 선생님이란 무엇인가.

 요즘 내 인생 가장 큰 화두다. 교사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스승이란 무엇인가.

 지식을 전하는 사람? 요즘에는 인터넷만 켜면 웬만한 정보는 다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상담을 잘하는 사람? 학교마다 거의 상담교사가 따로 있다. 아니면 행정적으로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잘할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인가? 아니면 보육의 차원에서 생각해야 하나? 정말 끝이 없는 고민의 연속이었다.

▶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질문을 보니 얼마나 고민이 많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다가 내 인생의 스승은 나에게 무엇을 주셨는지 돌이켜 보게 되었다. 나의 스승은 나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주셨기에 나는 인생의 나침반을 손에 넣게 되었을까.

 질문의 결과, 내가 나의 스승으로부터 받은 것은 내 안에 순수한 영혼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내가 이정임이고 여자라는 것, 한국인이라는 것을 모두 떠나서 그저 내 안에 순수함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신 것.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어려움과 난관 앞에서도 이겨낼 수 있게 나를 지켜주었던 힘이었다.

 스승이란, 아이들 안에 정말 보석같이 아름다운 영혼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 어떻게 ‘아이들 안에 아름다운 영혼’의 존재를 일깨워 줄 수 있는가.

 교사는 수업이든 상담이든, 동아리 활동이든 아이들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영혼의 울림을 느낄 수 있게 해줘야 한다.

 5월 스승의 날 캠페인으로 ‘사랑주기’(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하는 안마)를 배운 아이들이 집에 가서 가족들에게도 ‘사랑’을 주면서 많이 기뻤고 또 감동했다고 말하더라. 특히 2학년 소라는 항상 새벽같이 출근해서 얼굴보기도 어려웠던 아빠에게 ‘사랑주기’를 하면서 처음으로 30분 동안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며 너무나 기뻐했다.

 그 느낌이다. 홍익을 실천하면서 느끼게 되는 조건 없는 행복, 기쁨이 바로 보석같이 빛나는 영혼이다. 누구에게나 있다. 교사는 항상 아이들이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 있어도 그 보석은 언제나 밝게 빛나고 있다는 것을, 그 자체만으로도 온전한 존재임을 자각할 수 있게 항상 노력해야 한다.

 혼자서 고민하기에는 많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이러한 뜻을 같이하는 교사들의 모임인 홍익교원연합에서 함께 고민하고 또 함께 답을 찾아간다. 이를 통해서 진짜 교사가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중이다.

 

▲ 이정임 교사

▶ 교사로서 이정임 선생님의 꿈은 무엇인가.

 예전에는 꿈을 물어오면 혼란스러웠다. 꿈이라면 거창해야 할 것 같고, 근사해야 할 것 같은데 뭐라고 말할 수 있을지를 몰라서 “홍익세상을 만들겠습니다”는 식으로 얼버무렸다.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짜 내 꿈은 무엇일까.

 내 꿈은 아이들 가슴 속에 잠자고 있는 영혼을 깨우고, 그 영혼의 울림이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잘 이끌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꿈들이 자라나 세상에 나갔을 때 정말 평화로운 세상이기를 바란다.

 많은 교사가 학생들을 무서워한다. 그리고 많은 학생이 교사를 존경하지 않는다. 이정임 선생님도 처음에는 아이들을 대하는 것이 무서웠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피하지 않았다. 피하지 않는 대신, 그녀는 모든 아이 안에 보석과 같은 존재가 있음을 발견했다. 그녀의 스승이 그녀 안에 빛나는 보석을 알려주었듯이.

 이정임 선생님은 급하게 뛰지 않는다. 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또박또박 걷는다. 그리고 그 발자국이 남은 자리를 그녀의 제자들이 따라 또박또박 함께 걸어간다.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은 허황한 이야기가 아니다. 적어도 미양중학교 홍익봉사단 아이들 마음속에서 홍익이란 이미 현실이다. 그리고 당신의 삶에서도 홍익은 현실이 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이 보석과 같이 빛나는 존재임을 인정한다면 당신이 있는 곳은 이미 홍익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