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사랑’드려요~” 

 “홍익봉사단 '해피브레인'이 스승의 날, 선생님들을 초대합니다~”

 지난 12일 서울 미양중학교 본관 옆 야외에 모인 아이들,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났다. 피켓 들고, 전단 들고 선생님이라도 지나갈라치면 잽싸게 옆에 딱 붙어 말한다. “’사랑’ 드릴게요. 선생님. 얼른 오세요.”

▲ '특제 안마 의자'에 앉은 선생님, 표정만 봐도 이미 피로가 싹 가신 듯 하다. 아이들의 '사랑'을 받고 나서 고마움의 인사를 나누는 선생님과 아이들.

 ‘사랑’을 준다는 아이들의 말에 도리어 선생님이 당황했다. 우물쭈물하다가 어느새 아이들의 손에 이끌려 한편에 마련된 ‘특제 안마 의자’(등받이 없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는다. 선생님이 앉자마자 소라(15)는 선생님 어깨에 살며시 손을 올린다. 그리고 안마에 앞서 마음 속으로 주문을 세 번 외친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 사진 왼쪽부터 김소연, 박연정, 김연진, 박지원, 윤지수, 이소라, 김태경, 반태우, 함형진, 안민정, 박세영, 김희주, 강해인, 윤예성, 최대한 (한 자리에 모인 미양중학교 홍익봉사단 '해피브레인')

 미양중학교(교장 황인) 홍익봉사단, ‘해피브레인’이 5월 스승의 날을 기념하여 12일부터 17일까지(12, 16, 17일) 사흘에 걸쳐 ‘사랑주기’ 캠페인을 진행했다. 지난 3월 동아리가 만들어진 이래 매달 새로운 캠페인을 하는 홍익봉사단. 지난 4월 ‘우측보행’ 캠페인에 이어 이번에는 스승의 날을 맞아 특별한 안마 이벤트를 했다. “사랑 에너지를 듬뿍 담아 선생님들 어깨를 안마하면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는 미양중학교 홍익봉사 동아리, ‘해피브레인’을 18일 점심시간, 학교 미술실에서 만났다.

모든 교사에게 손수 만든 초대장 주고 스승의 날 맞이 ‘사랑주기’ 캠페인에 초대 

▲ 지나가시던 황병근 교감선생님도 자리에 앉아 아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완전 쑥스러웠어요. 저는 홍보를 맡아서 선생님들한테 오시라고 여기저기 찾아갔는데, 선생님들이 더 쑥스러워하면서 안 받으려고 하시고 그래서…” (반태우, 15)
 ‘사랑주기’ 캠페인 어땠냐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태우는 섭섭했던 마음부터 털어놓는다. 생글생글 웃으며 선생님들을 찾아다녔건만, 갑작스러운(?) 아이들의 초대에 적잖이 당황한 선생님들이 기대만큼 안 오셨었나 보다.

 “그래도 많이 오셨는데. 교감 선생님 지나가시기에 막 오시라고 해서 ‘사랑주기’ 했어요.” 태경이가 이렇게 말하자 그제야 태우도 한마디 거든다. “선생님 안마 해 드리니까 엄청 좋아하시던데요. (웃음) 어깨 완전 딱딱한 선생님들 많았어요.”

▲ 선생님들에게 큰 감동을 전한 100% 핸드메이드 초대장, '교원통신문'

 홍익봉사단은 5월 ‘사랑주기’ 캠페인을 하기로 하고 우선 초대장인 ‘교원통신문’을 만들어서 교무실에 있는 선생님들 책상 하나하나에 곱게 올려두었다. ‘사랑’을 받고 싶은 선생님들은 통신문 아래에 ‘사랑’을 받고 싶은 날짜와 시간을 적으면 아이들이 직접 찾아가거나, 선생님이 캠페인을 하는 곳으로 찾아와서 ‘사랑’을 주고받았다. 

 그 많은 선생님에게 100% 핸드메이드 ‘교원통신문’을 직접 만들어 돌린 소라는 “이걸 받은 선생님이 행복해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어요. 그 마음밖에 없었어요”라고 했다. 아, 이 얼마나 예쁜 마음씨인가.

 촌지다 뭐다 말이 많아 슬그머니 사라져버린 스승의 날, 올해는 15일이 일요일이라 일선 교사 중에는 카네이션 한 송이 없이 지나가서 왠지 섭섭하다는 이들도 많았다. 그런데 복 많은 미양중학교 선생님들은 홍익봉사단의 마음 씀씀이에 크게 감동 받았다. ‘사랑주기’ 캠페인 초대장을 받은 황병근 교감은 그 예쁜 마음 두고두고 보고 싶어 봉투 그대로 서랍에 고이 넣어두었다고 한다.

“홍익봉사단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가는 동아리. 내가 즐거우면 남도 즐겁다”

 홍익봉사단의 회장이 누구냐고 묻자 다들 ‘누가 회장이지?’라는 표정이다.

 "홍익봉사단은 동아리 회장이 없어요. 꼭 가입을 안 해도 괜찮아요. 누구든 지나가다가 하고 싶으면 같이 할 수 있어요. 아이들 스스로 매달 무슨 캠페인을 할지 토론해서 정하고 각자 역할을 나눠서 진행해요. 봉사활동 시간은 따로 없고요."

 홍익봉사단을 담당하는 이정임 교사가 한마디 거든다.  봉사시간도 주지 않는 봉사동아리. 아이들은 무슨 마음으로 이리도 열심히 하는 걸까.

 “특별한 이유는 없었어요. 그냥 제가 해야 하는 거로 생각했어요.” (윤지수, 15)

 우문현답(愚問賢答)이 여기 있다. 다른 이를 돕는다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겠는가. 

▲ 스승의 날을 맞아 교내 곳곳에 붙여둔 센스 넘치는 문구들. 종이 카네이션 역시 아이들이 손수 만들었다.

 “평소에 선생님들을 사랑하지만, 표현할 기회가 거의 없잖아요. 그런데 이번에 우리가 열정적으로 막 움직이면서 ‘사랑주기’ 캠페인 하면서 정말 감동 받았어요. 선생님들이 무척 좋아해주셔서 그게 정말 기뻤고, 동아리 친구들 모두가 한마음으로 협동해서 즐겁게 해낸 것도 기뻤고… 다 감동이었어요.” (강해인, 16)

 “맞아요.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하고 싶은데 못하고 있던 걸 홍익봉사단 캠페인 참여하면서 하게 됐어요. 특히,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직접 정하고 해내는 거라서 더 좋아요. 내가 즐거우면 남도 즐거우니까요.” (박세영, 16)

 밴드부지만 함께 ‘사랑주기’ 캠페인을 했던 세영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해인이가 말을 이어받는다.

 “그런데 힘든 점도 있었어요. 우리는 정말 선생님들하고 통하고 싶어서 ‘사랑주기’ 준비했던 건데 선생님들이 막 쑥스러워하면서 안 오시려고 해서 힘들었어요. 진짜 답답해!”

 가슴을 콩콩 치는 해인이를 보며 아이들 고개를 끄덕인다. “올해는 처음이라 그랬을 것”이라며 이정임 교사가 “내년에는 선생님들 더 많이 오실 것”이라고 말하자 3학년 아이들 일제히 목소리를 높인다.

“내년에는 저희가 없잖아요!” (좌중 폭소)

4월에는 ‘우측통행’,  5월에는 ‘사랑주기’,  오는 6월에는 ‘프리허그’ 캠페인 준비 중

 홍익봉사단은 올해 3월 만들어졌다. 매달 한 가지 캠페인을 하기로 정한 아이들, 4월에는 ‘우측통행’ 캠페인을 했다. 남들보다 더 빨리 급식을 먹기 위해 무질서하고 위험하게 달리는 것을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 지난 4월에 진행한 '우측보행' 캠페인. 홍익봉사단이 아니라도 누구든지 동참하고 싶은 아이들은 함께 했다.

 “‘우측보행’ 캠페인은 끝났지만, 지금도 복도를 걷다 보면 무심결에 왼쪽에서 걷다가도 오른쪽으로 가서 걷게 돼요.” (안민정, 16)  

 “급식 먹을 때, 질서를 잘 지키게 됐어요. 전에는 점심시간 되면 정말 난리였었는데, 요즘에는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반태우, 15)

 아이들의 변화는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나타났다.

 “5월 ‘사랑주기’ 캠페인 준비하면서 이정임 선생님께서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안마하면서 사랑을 주는 건지 알려주셨어요. 그러고 나서 아빠한테 해 드렸어요. 항상 새벽 일찍 출근하셔서 서로 마주칠 시간이 거의 없었는데, 아빠한테 ‘사랑주기’ 하면서 정말 처음으로 30분 넘게 이야기했어요. 기뻤어요.” (소라)

 모든 사람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작은 것부터 실천하겠다는 미양중학교 홍익봉사단 ‘해피브레인’. 오는 6월에는 ‘프리허그’를 할 예정이다. 이 역시 아이들이 함께 고민하고 내린 결정이다. 다음 달 캠페인 이야기에 벌써 아이들 눈이 반짝인다.

“홍익 정신은 당연한 것. 홍익봉사단을 통해서 학생도, 선생님도 행복한 학교를 만들겠어요.”

▲ 홍익봉사단 담당교사인 이정임 선생님

 선생님들과 통하고 싶어서 이번 행사를 준비했다는 홍익봉사단 아이들에게 ‘스승’이란, ‘선생님’이란 어떤 의미일까? 

 “말과 행동이 하나인 사람, 언행일치!” (태경)

 “학생들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분. 우리가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 (세영)

 교권(敎權)이 바닥에 떨어졌다며 걱정하는 교사들이 많다. “선생님들과 통하고 싶다”는 아이들을 보며 스승으로서의 권위 이전에, 아이들과 통하기 위해 교사들은 얼마나 고민하고 또 행동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모두가 행복한 ‘홍익인간’ 정신은 당연한 거예요. 특별한 게 아니에요. 홍익봉사단을 통해서 우리는 물론이고 선생님도, 우리 학교도 더 행복한 곳이 되었으면 해요.” (소라)

 홍익봉사단의 말처럼 이 아이들이 자라난 세상 역시,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홍익의 정신이 당연한 세상이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