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가 쉽지않다. 부처님도 인생은 '고(苦)'라고 하지 않았는가. 누구에게나 힘든 일도 있고, 고민도 있다. 소리소리를 지르는 사람부터 춤추고 노래하면서 기분을 바꾸려 하는 사람, 누구하고든 밤새도록 원을 풀어내는 사람, 하염없는 눈물로 참회하면서 한을 푸는 사람이 있다. 무엇이든 풀어내면 좋겠지만, 심하게 풀면 나도 다치고 남도 다치는 것이다.

 내가 기분이 나쁘다고 친구에게 놀러 가자고 하면서 내 기분 풀어달라고 하기도 쉽지 않고, "내 이야기 종일 들어줘!"라고 말하기도 쉽지가 않다.

 그래서 우리 조상님들은 푸는 것만이 만사가 아니라며 삭히는 것에 더 후한 점수를 주었다. 삭히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삭아서 나오는 그 맛과 멋은 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임이 틀림없다.

 한 예쁜 사범이 "오늘은 왠지 기분이 나빠요. 뭔가 손에 잡히지도 않고…."란다. 
 "그러면 내가 풀어줄까?" 물으니 멀뚱거린다. '저 말이 참말인가 거짓인가?' 계산하는 눈치.
 "네가 옆에 있어 늘 풀어주면 좋겠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닐 터, 내가 늘 풀어줄 수 없으니 비법을 하나 전수해주마. 내가 불던 피리인데 이걸 한 번 불어봐라."

 내가 늘 풍류 피리를 들고 다니는 것은 풀어내고 또, 삭히기 위해서다. 사람에게 내 기분을 풀어내기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고 이야기해봐야 서로 속만 아프니 안 하는 것이 더 좋을 듯해서 나는 친구를 하나 사귀었다. 이 피리가 내 친구다.

 이 친구는 밥 달라고 하지도 않고, 영화구경 가자고도 안 하며, 돈 벌어오라고 잔소리도 안 하는 참 좋은 친구다. 이 친구를 데리고 불고 소리 내고 하다 보면 내 기분이 풀어지고 좋은 해답도 들려주곤 한다. 그래서 풍류도인은 피리 하나 들고 다니면서 사람에게 안 풀고 피리에게 풀면서 삭히곤 했다. 그것이 거듭되다 보면 정말 멋진, 삭은 맛의 피리 소리가 들리게 된다. 그것이 좀 더 깊어지면 피리 하나로 사람의 기분을 풀어주고 또 원도, 한도 풀어주는 진정한 살풀이의 멋진 도인이 된다.

 "요즘 내 피리 소리가 좀 멋지지 않냐? 그만큼 내 한이 깊기도 한 것이다. 내가 밝게 웃을 수 있는 힘은 잘 풀고 잘 삭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분이 울적할 때 내가 준 피리로 네 마음을 실어서 불어라."

 피리를 잘 불기 위해서는 먼저 피리와 놀아야 한다. 이것저것 만져도 보고 불어도 본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가지고 이리저리 놀면 된다.

 손가락이 잘 놀면 배를 가지고 이리저리 놀면 된다. 당기고 밀고 당기고 밀고 아랫배 장운동 하듯이. 더 고수가 되면 중심을 잡고 위아래로 기운을 올리고 내리기도 한다. 절대 악보를 보고 부르면 안 되고 그냥 밀고 당기고 돌리면서 소리를 내면 된다. 숨이 끝까지 갈 때까지 밀어내기를 여러 번 반복하면 기분도, 한도 풀어진다.

 하루에 5분씩 불어 일주일 지나면 들을 만한 소리가 된다. 1년이 되면 고수의 반열에 오를 것이다. 어떤 형식이 없이 부르는데 한참을 부르다 보면 어떤 곡을 불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또 듣게 된다. 자기만의 리듬이 만들어진다.

 배우지 않아서 좋다. 배울 것이 없어서 좋다. 내가 숨 쉬듯, 피리가 숨 쉬면 된다.

 이렇게 연주를 하다 보면 작곡가가 된다. 늘 창조하는 기쁨을 늘 갖게 된다. 율려의 세계는 창조로써 그 기쁨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