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일, 국학원 주최로 타슈켄트 세종한글학교에서 "국학을 통해 바라본 한민족의 전통문화"란 주제의 국학강의가 열렸다.

“세계적인 언어학자로부터 전 세계의 문자 중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글자로 인정받은 글이 한글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우리나라 휴대폰에 쓰이는 천지인 한글 자판은 세상 어느 나라도 따라오지 못할 첨단 자판입니다. 한글 창제에 배어 있는 천지인 사상은 한민족이면 누구나 다 아는 아리랑 노래에도 들어 있습니다. 아리랑의 참의미도 첨단자판 못지않은 어마어마한 의미이겠지요?”

우즈베키스탄 국립 사범대학교 한글어과 학생들은 이같은 말에 숙연해지며 진지하게 경청했다.
지난 11월 28일부터 12월 2일까지 우즈베키스탄에 머물면서 수도인 타슈겐트의 국립 사범대학과 가장 큰 규모의 세종한글학교에서 2차례 행한 ‘사랑해요 대한민국’이란 주제의 국학강의는 이곳 조선인들에게 상당한 감동을 전하고 민족 동질성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한국에 오려고 한글을 배우는 사범대생들에게 나는 장구한 한민족의 역사를 잘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영광스런 역사는 물론 수난의 역사, 왜곡된 역사 등으로 나누어 설명해줬다. 

한민족은 반만년을 넘는 유구하고 위대한 역사가 있고,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인 ‘천지인사상’ 이 있으며, 이것이 우리 민족고유의 철학원리로서 홍익인간이고 바로 오늘의 국학이라고 말하자 같은 한민족으로서 자긍심을 느꼈다며 큰 박수를 쳤다.

그러나 홍익정신이 단절되어 나라의 위세가 꺾이고 외침을 겪게 돼 이 과정에서 사서들도 사라져 역사마저 단절됐지만 다행인 것은 천지인사상이 우리말과 글속에 고스란히 살아있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휴대폰의 자판으로 조목조목 짚어 주며 설명했다.    

이들은 일제 강점기에 우리 사서가 불태워지고 역사가 왜곡되고 독립투사들이 수난당하는 독립운동사를 언급할 때는 분개하는 표정이 역력했고 민족혼이 꿈틀꿈틀 되살아나는 듯 보였다.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은 일제시대에 연해주에서 이곳까지 거의 한달 간 화물 열차에 짐승처럼 태워져 강제로 이주돼 온 사람들이다. 그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병사하거나 사고로 죽었으니 일제강점기란 말만 들어도 저절로 주먹이 불끈 쥐어질 것이다.

한국전쟁의 폐허에서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일어선 기적 같은 조국의 모습과 한국인의 자랑스러운 면을 전했다. 그들은 일견 공감대도 느끼지만 조국과 단절됐던 오랜 시간 탓에 시공간이 갑자기 밀어닥치는 충격에 얼떨떨해 하기도 했다.
경제개발에 대한 신념의 고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 광부들과 간호사들에게 한 연설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린 실화를 듣고 흐느끼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비록 독립군들로부터 2~3세대가 지나고 환경이 바뀌었어도 한민족의 유전자만이 공유할 수 있는 민족혼은 변하지 않았음을 절실하게 느꼈다 강연 이후 사범대학교 한글어학과의 학과장은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들에게 정말 필요한 교육”이라면서 국학원과 자매결연 하자고 즉석에서 요청했다.

국학의 세계화를 위해 각국에 있는 한민족을 국학정신으로 연결하기 위해 우즈베키스탄에 온 또 하나의 목적이 있었다. 고려인이 집성촌을 이룬 우즈베키스탄 프라우다 지역내에 한국어와 한국풍습을 가르치는 행복유치원(200명)이 재정난에 직면해 있었다. 그 소식에 국학원과 국학평화봉사단, 국학운동시민연합이 공동으로 고려인돕기 운동을 벌여 성금을 모았다. 우리문화와 우리글을 지속적으로 가르칠 수 있도록 그 유치원에 성금을 전달했다.

국학강의나 성금전달은 우리로서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음에도 우즈베키스탄의 블라디미르 신 우즈백 고려문화협회장과 고려인운동본부 황일주 회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고 행복유치원 원장으로부터도 감사패를 받았다.
타슈겐트를 이륙하는 비행기 안에서 창 밖을 보니 가슴을 아리게 하는 알 수 없는 한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우리민족의 끊을 수 없는, 복본의 사명이 담긴 아리랑의 뜻을 전할 때도 그랬고 고려인들과 함께 아리랑을 부를 때도 이 마음이었다.

타슈겐트 박물관 벽화에 실크로드를 오간 고구려인이 떠오른다. 우즈베키스탄에 사는 고려인과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버렸던 독립운동가들이 이중 삼중 겹쳐 보인다. 역사의 인연이란 끊을 수 없는 고리임을 새삼 느끼며 아리랑을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