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택 국학교육원 수석국학강사

아직도 ‘백의민족’하면 우리 민족의 염색기술이 발달하지 못해 항상 흰옷만 빨아 입었기 때문이라 믿는 사람들이 많다. 식민사관에 물든 왜곡된 역사를 진실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병택 씨(50, 국학교육원 수석국학강사)는 이처럼 우리 역사를 잘못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바른 역사를 전하기 위해 국학을 교육하는 사람이다. 헬기를 타고 바다 위 하늘을 누비던 해군 헬기 조종사에서 수석 국학강사로 변신한 그를 만나보았다.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해군 헬기 조종사로 근무하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주해 환단고기(註解 桓檀古記)’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고 그 계기로 우리 역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우리의 상고사를 접하며 역사가 아닌 소설이라고 여겨 책을 집어던질 정도로 거부감을 가졌지만, 관련 자료들을 공부하면서 허황된 것이 아님을 알게 됐다. 게다가 학창시절에 배운 역사가 식민지시대에 날조된 역사라는 사실을 알았다 한다. 이후 그의 역사공부는 가속도가 붙었다.
“속고 살았다는 걸 알면서 울분이 느껴졌습니다. 평생 우리의 바른 역사를 알리자는 생각도 하게 되었죠. 처음엔 닥치는 대로 책을 보고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봉급이 15만원이던 중위시절엔 한달 봉급을 다 털어 역사책을 사서 배에 싣고 근무를 나가버린 적도 있었는데, 집에 있던 아내가 많이 고생했을 겁니다”

그렇게 독학을 하던 그는 1998년, 우연한 기회에 지금의 장영주 국학 교육원 원장을 알게 된다. 그 인연으로 당시 그의 생활터전이던 경남 지역에서 ‘우리 얼 바로 찾기 역사교실’을 열게 되었고, 일주일에 한번씩 그와 같은 사람들이 모여 6개월 동안 매주 강의 리허설과 강도 높은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강사로서의 자질을 만들어갔다.

“새벽 한 두시까지 리허설하고 점검해보니 강의에 자신이 생겼어요. 그래서 역사교실강좌를 열어보자고, 사람들을 모아 매주 수요일 저녁에 세 시간씩 8주짜리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강사를 하겠다는 분도 생기고, 그분들을 대상으로 심화과정도 이어졌죠. 아직도 경남지역에서는 그 교육과정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처음 강의를 시작하던 1998년부터 지금까지 그는 약 600여 차례 국학강의를 진행했다. 무려 1200시간이라는 그의 강의 시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강의와 수강생을 물어보았다.

“어떤 회원분이 강의 중에 큰소리로 “빨리 끝냅시다” 그러시더라고요. 처음에는 강의 기법도 모르고 오로지 열정만으로, 아는 것을 폭포수처럼 쏟아내고 있었으니 얼마나 지루했겠어요. 그 때 아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만이 강의가 아니라는 걸 느꼈어요. 또 경남지역에서 강의를 듣고 감사의 편지를 주셨던 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 그 분이 지역에서 2세대 강사가 되셨어요. 덕택에 저는 눈길에 첫 발자국을 낸다는 마음으로 꾸준히 강의하고 있습니다”

그가 수석강사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강의를 위해 쏟는 열정과 성실한 강의준비였다. 강의기법 연구는 물론 유명한 강사들의 TV특강을 모니터링하면서 재미 요소를 살리는 법도 배웠다. 또, 민족혼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기억에 가장 오래 남는다는 무명 독립투사의 사진은 그가 헌책방에서 구한 책에서 발견한 자료사진이었다.

“여러 가지 강의 준비 중에서 가장 도움이 많이 되는 것은 ‘머릿속 강의’입니다. 잠자리에 누워서 첫 인사말부터 마지막 인사까지 꼼꼼하게 상상해 보는데, 제가 강연장에서 할 농담과 그에 대한 청중들의 반응까지 그려봐요. 그게 실제 강의에 제일 도움 됩니다. 상상 속에서 웃던 청중들이 실제 강의에서 웃지 않을 때는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지만요”

9년 가까이 강의를 해 온 그는 처음 강의를 듣던 사람들과 지금 강의를 듣는 사람들의 역사에 대한 관점에 큰 차이가 있다고 한다.

“2002년 월드컵 전후로 우리 국민들의 의식에 많은 변화가 있었던 거 같아요. 그 이전에는 단군시대의 역사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신화가 아니라는 이야기부터 시작했고 기초 자료도 많이 준비했는데, 요즘은 단군시대는 당연히 역사라는 인식을 가지고 오셔서 예전 자료를 보여드리면 시시하다고 생각하십니다. 확실히 역사의식이 많이 달라지셨어요”

그는 교육을 받으러 온 사람들이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는 사상과 철학이 인류의 미래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라는 확신을 가지고 돌아간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는 말을 전하며, ‘우리 민족과 인류의 평화로운 생존과 공존을 위해서’라고 국학교육의 필요성을 정리했다. 밤늦게 지방에서 강의를 하고 돌아오는 새벽에도 오히려 힘이 난다는 그를 만나고 나니 우리의 바른 역사가 한 사람의 강의를 통해 생생하게 되살아나고 있음이 느껴졌다.   <서혜진 희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