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의 도가니라는 말처럼 온갖 인종이 다 모인 미국에서 아시아의 대표국가는 중국이라고 여겨진다. 역사가 제일 오래된 나라로 이해되고, ‘아시아’하면 곧바로 중국을 지적한다. 심지어 영어의 ‘Chinky eye’는 아시아 인들의 작으면서 긴 눈을 비하해 부르는 단어이다. 아무리 비속어라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아시아 인의 대표 자리에 중국인이 있는 셈이다. 또 만화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헐리우드의 영화에서 아시아 하면 먼저 보여주는 것이 중국의 고색창연한 건물과 중국식 전통의상이다. 한마디로 아시아 하면 중국을 먼저 떠올린다는 말이다.

일본의 경우 어떠한가. 2차대전의 전쟁 상대였던 일본은 미국에게 당시의 적대감을 넘어 태평양 연안 반대편에 눈부신 기술강국으로 미국에 버금가는 부를 가지고 언제나 전략적 파트너로 삼을 수 있는 예의 바른 사람들의 나라로 인식된다. ‘동양의 예의’를 거론할 때에는 언제나 일본의 예의를 보기로 든다.

일본 자본은 미국 전역에 연결되는 케이블 채널 가운데 어린이용 만화채널을 아예 운영하고 있다. 이름도 Toonami, 즉 일본어의 해일을 뜻하는 쯔나미와 영어로 만화를 뜻하는 카툰(Cartoon)을 섞어 만든 일본식 특유의 ‘섞은 영어’이다.  ‘사무라이 잭’, ‘포케몬’, ‘Fullmetal alchemist’, ‘나루토‘ 등 이루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일본 만화가 무차별로 보여진다. 이처럼 일본식 이름을 갖고 일본글자가 마구 보여지는 만화영화를 보는 미국의 어린이들에게 일본의 사무라이는  아시아에서 존경받는 무사의 대명사이다. ‘아시아의 검객’하면 미국 아이들은 주저 없이 닌자를 말한다. 주변국들엔 무지몽매한 주정뱅이 칼잡이들만 난무한다는 선입견도 짙다. 닌자를 무술과 무예가 뛰어난 아시아 무인(武人)의 대표자로 인식하면서 자라나는 것이다. 게다가 아이들은 일본 음향기기와 TV를 틀어놓고 일제차를 타고 다니면서 크는 것이다.

한국, 올림픽 · 월드컵 등 특정단어 중심으로 알려져 중 · 일에 비해 모호한 이미지로 인식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미국에서는 한국이 중국과 일본 사이에 존재한다는 사실도 최근에 와서야 많이 알려졌다. 그것도 한국은 88서울올림픽과 한일월드컵, 그리고 ‘악의 축 나라인 Rogue state(양아치 나라) 북한’ 등과 연관돼 ‘널리’알려지고 있다. 좋고 나쁨이 섞인 채 보여진다는 사실을 떠나 일단 한국이라는 나라 이름을 들으면서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국가 이미지가 단편적인 단어의 나열처럼 드문드문하다는 말이다. 게다가 부시 행정부 들어 더욱 두드러진 북한 핵문제는 연일 CNN 등 주요 메이저 방송 뉴스의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이미지가 곱고 아름답다는 것보다 골치 아프고 미운 상황이 더 많다.


한민족이 중국에서부터 유래한 것으로 소개한 미교과서 내용

미 동부 메릴랜드주 몽고메리 카운티의 로베르토 클레멘테 중학교는 영재학교이다. 시험을 치러 한해에 50명만 선발하는 이른바 Gifted Talent(신이 준 선물을 받은 아이라는 의미의 영재를 일컫는 말)School이다. 그런데 이 학교의 역사과목 교과서에서 한국은 제대로 다뤄지지도 않는다. 학생들이 들고 다니는 하드커버의 두터운 역사책은 인류의 기원과 역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자세한 지도와 그림을 곁들여 보여주는 훌륭한 책이지만 한국과 관련해서는 장르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한국은 역사책에서 ‘보이지 않는’ 나라이다. 

심지어 일부 미 역사교과서에는 한국의 기원이 중국의 상나라에 연계돼있다고 하거나 국가형태가 중국에 영향을 받았다고 기술된다. 심지어는 일본과의 교류에 영향을 받아 문화가 이뤄졌다는 표현도 있는 실정이다.

고유의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에서 마치 중간국가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는 점은 단순히 유치한 경쟁의식에서 나오는 허탈감이 아니라 사실이 부정되고 있다는 점에서 분노가 치민다. 국가의 홍보가 그만큼 덜 됐다고 지적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 더 내면적인 고찰을 해본다면 스스로 우리 자신을 내세울 것이 없도록 만들었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우리 스스로 학문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한국의 상고사를 미국에서 인정할 리 없다. 우리 역사가 삼국시대부터 소개되는 것만도 다행인 셈이다. 우리는 중국과 일본이 국가형태를 띠기 이전부터 ‘천부경’을 가지고 국가 정체성을 가졌던 문화국가였음에도 이 같은 역사를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 아니 신화이기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는 주장이 더 과학적이고 학문적인 자세라고 버티는 풍토에서 한국은 그저 ‘조용한 나라’ 그 자체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미국 내에서 한국은 아직도 주변국에 묻혀있는 나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