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튀니지에서 소셜네트워크(SNS)를 통해 시작된 거센 민주화 물결이 이집트를 거쳐 리비아로 퍼져나갔다. 이와 같은 일이 92년 전 3월 1일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다.

“힘 앞에 정의가 무너져 장차 5대국이 우리 영토를 마음대로 하게 될 것이다. ……조선인들은 독립운동을 하면서 부르짖었다. ‘독립을 하지 못하면 죽음이 있을 뿐이다.’라고”


이것은 1919년 5월 4일 중국의 5‧4운동 때 베이징 학생 톈안먼 대회 선언문의 일부이다.

우리 국민이 일본 제국주의 무단통치에 항거하여 외친 삼일만세운동은 아시아 전역에서 제국주의 식민지 지배 하에 신음하던 나라들에게 새로운 독립의 희망과 자신감을 주었다. 인도의 간디가 시작한 비폭력‧불복종(사티아그라하)운동과 반제국주의‧반군벌을 내세운 중국의 5. 4운동, 필리핀의 반미 독립운동 등이 바로 그것이다.

한일강제병합 101주년인 올해에는  우리 역사뿐 아니라 세계사적으로도 뜻 깊은 삼일절을 재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3‧1운동의 직접적인 계기에 대한 국사교과서의 공통적인 기술은 미국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제창한 민족자결주의, 동경유학생을 중심으로 한 2.8독립선언, 서거한 고종황제의 독살설로 인한 국민의 분노 등을 들고 있다.  삽시간에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져가 200만 명이 넘는 국민이 참여한 3‧1만세운동은 외세에 의존해 고종황제의 장례 예행식인 3월 1일을 기점으로 갑자기 준비된 사건이었을까? 3‧1운동 이전의 상황을 살펴보자.

1917년 '대동단결선언'으로 국민주권 천명, 임시정부 수립의 기초

동학농민운동, 13도창의군을 비롯한 많은 의병활동, 고종의 외교독립운동에도 불구하고 1910년 국권을 상실한 이후 애국지사들은 국내 및 만주, 연해주, 미주지역 등에서 독립운동을 위한 기지와 군자금 모집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3‧1운동을 주도한 천도교 의암 손병희 선생은 1911년 삼각산 아래 봉황각을 짓고 전국 각지의 지도자 483명을 모아 양성하여 거사를 위해 10년을 준비했다.

 

▲ 대동단결선언<출처=미래앤컬쳐 고교 한국사>

1917년 7월 신규식과 박용만 등 14인은 ‘대동단결의 선언’을 발표했다. 국내외 독립운동단체의 단결을 호소하고 황제의 주권이 국민에게 선양되었음을 선언했다. 조소앙 선생이 기초한 이 선언의 내용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기초가 되었다. 독립의 방향이 왕정복고가 아닌 국민주권국가의 탄생이란 점을 명시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우리에게 기회는 없었다

1918년 1월 세계1차대전 종결 후 윌슨이 민족자결주의를 선언하자 나라 안팎의 우리 민족은 독립에 세계열강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는 희망에 고무되었다. 제국주의가 지배하던 세계의 흐름이 변화되었다고 인식한 것이다.

조선인의 피압박 상태를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 상해 신한청년단은 김규식을 파리강화회의에 대표로 파견키로 결정하고 미국에서는 이승만이 3개조 청원서를 윌슨에게 제출했으며 동경에서는 유학생들이 웅변대회를 가장해 우리나라의 독립을 일본 정부에 청원할 것을 결의하여 청년독립단을 결성했다.

그러나 윌슨의 ‘민족자결’은 일본을 포함한 1차대전 전승국이 지배하는 식민지를 뺀 일부 패전국의 식민지 또는 1차 대전에 이바지한 일부 약소민족에만 국한시킨 것이었다. 실상 제국주의의 연장선상에서 밝힌 이 선언은 우리에게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 파리강화회의에 파견한 김규식(앞줄 맨 오른쪽) <출처=미래 앤 컬쳐 고교 한국사>

 
무오독립선언 우리나라 건국의 기치를 밝히고 육탄혈전 촉구

1919년 2월 1일 중국 길림성에서 만주와 러시아지역 항일 독립운동지도자 39명이 ‘대한독립선언서’를 통해 조국의 광복과 독립을 선포했다. 조소앙 선생이 기초한 이 선언서는 음력으로 1918년 무오년에 선포되었다고 해서 무오독립선언서라고도 하며 우리나라 최초의 독립선언서이다.

참여한 지도자들을 살펴보면 단군정신을 구심으로 독립운동을 주도한 대종교 2대 교주 김교헌을 비롯해 김규식, 김좌진, 이동녕, 이동휘, 이상룡, 이시영, 이승만, 박은식, 신규식(신정), 신채호, 안창호, 윤세복 등 독립운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들이었다.

우리나라의 완전한 자주독립국임과 민주의 자립국임을 선포하며 우리 독립은 민족을 스스로 보호하는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지 결코 사사로운 원한의 감정으로 보복하는 것이 아님을 밝혔다. 일본의 사기와 강박, 불법적인 무단통치를 준엄하게 꾸짖고 “섬은 섬으로, 반도는 반도로, 대륙은 대륙으로 회복하라”고 하였다.

또한 세계의 평화와 평등하게 사해인류를 감싸 안는 것이 건국의 기치임을 선포해 인류평화와 상생을 바탕으로 하는 홍익정신을 이어받았음을 천명하고 2천만 동포에게 국민된 본령이 독립인 것을 명심하여 육탄혈전으로써 독립에 임할 것을 선언했다.(2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