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9일 개최한 세계국학원청년단의 첫 역사탐방에서 오영섭 교수(연세대 한국학연구소)가 왕산 허위선생과 독립운동상황을 냉철하고 현실적으로 설명했다. 

 

제92회 삼일절을 앞두고 젊은이들이 독립운동가들의 꺾이지 않은 의지와 발자취, 생생한 숨결을 찾아 역사탐방을 했다.

세계국학원청년단(단장 임종일)은 지난 2월 19일 ‘대한민국을 깨우는 세계국학원청년단 역사탐방’의 첫 행사로 독립운동가 허위 선생 특강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방문을 실시했다. 이번 역사탐방은 국학운동시민연합과 홍익이스트가 주최하고 세계국학원청년단과 사단법인 국학원 주관으로 이루어졌다.

오전 10시 30분 대한출판문화협회(서울 종로구 사간동)에서 오영섭 연세대 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를 초청해 ‘독립운동가 왕산 허위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서’특강이 열렸다.

왕산 허위 선생은 명성황후 시해사건인 을미사변 이후부터 을미의병운동, 을사늑약 항일운동을 비롯해 서울에 주둔한 일본군을 쫓아내기 위해 13도 창의군을 이끌고 서울진공작전을 펼쳐 1908년 교수형을 당한 대표적인 유림 항일의병장이다. 그 후손들은 일본 경찰의 추격을 피해 만주, 러시아로 쫓겨 갔으며,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에 거주하던 손자들이 2005년과 2007년 우리나라 국적을 취득한 바 있다.

오영섭 교수는 보부상으로 재산을 일군 집안에서 전통적인 유교 교육을 받았던 왕산 허위 선생의 일화와 대한제국 말기의 시대상황, 국가위기를 맞은 유림들의 인식과 의병활동 전개에 대해 냉철하고 현실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했다. 

 

오영섭 교수의 강의에 집중하는 세계국학원청년단 서울지부 젊은이들.

유교적 전통사고방식과 독립자금 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던 의병활동의 실체와 이미 일본군의 동학 농민군 학살을 통해 확인한 현격한 한일 간 군사력의 차이로 모두 순국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재산을 팔아 독립자금을 보태고 의병으로 나서 서울로 진격했던 허위 선생과 의병들의 가슴에 살아 있던 충(忠)과 국혼을 이야기했다.

오영섭 교수는 "인간은 20세 이전에 어떤 공부를 했는가에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 전통 유교교육을 받은 허위에게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는 것은 평생의 과제이자 신념이었다."며 그가 전개한 항일운동이 가진 성격을 분석했다.

또한 국제정세에 대한 당시 고종과 유림, 지도층의 일반적인 인식과 치열한 국내외 독립 투쟁에 대한 강의를 통해 기존 국사교육으로 인해 외세에 의존한 무능한 인물로만 평가된 고종이 유림과 함께 전개한 국권수호전략, 헤이그밀사 사건과 국내 의병 항일활동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강의를 마치자 세계국학원청년단 젊은이들은 허위 선생의 동양평화론, 고종황제에 대한 재평가 문제, 의병활동이 독립전쟁으로 재평가받아야 하지 않는지에 대해 열띤 질문을 쏟아냈고 오 교수의 명쾌한 답변에 힘찬 박수를 보냈다.

점심을 먹으면서도 허위 선생에 대한 강의내용과 서대문 형무소역사관 방문에 대한 대화를 나눈 청년들은 오영섭 교수와 헤어져 역사관으로 향했다.

 

   
독립운동가 허위 선생의 발자취를 되돌아본 특강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 세계국학원청년단은 강의 후 오영섭 교수와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