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나 뿌리가 멀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잘 찾아보면 우리 근처에서 민족의 뿌리와 국혼을 지키고 있는 명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칠곡에 살고 있는 기자는 지인과 함께 국혼의 현대적 발자취를 담고 있는 경북 칠곡군 왜관에 위치한 국조전을 방문하였다.

▲ 경북 칠곡 국조전 들어가는 입구에 세워진 비석.

 

입구 비석에 '국國조祖전殿'이라 쓰여져 있고 무궁화 위에는 '칠漆곡谷단檀민民회會'라고 되어있다. 나라를 사랑하여 국혼이 살아 숨쉬는 고장임을 느낄 수 있다.

 

▲ 국조전으로 올라가는 입구

 

▲ 국조전 안내문

 안내문에 따르면 "우리지역에서는 '단군'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 광명이세 숭고한 이상을 구현코자 1951년 전군민의 참여하에 모곡과 성금의 기금으로 1961년 국조전을 건립해 단민회 어르신들이 대를 이어 국조전을 지키고 매년 개천숭봉대제를 군민들이 참여하고 있다."라고 한다. 

 국조전은 국조이신 단군성조의 위패와 영정을 봉안한 성전으로서 매년 10월 3일 개천절숭봉대제와 음 3월 15일 춘향제를 봉행하고 있으며, 매월 삭망일에는 분향을 올리고 있다. 우리 민족의 오랜역사를 살펴보면 단군성조께서는 서기전 2333년 이 땅에 오셔서 홍익인간의 건국이념으로 조선을 건국하였다.

 그 정신이 우리겨레의 맥박속에 면면히 흘러서 신라 때에는 화랑도로 고려 때에는 민족융합으로 조선시대에는 강직한 선비정신으로 승화되었다. 왕조가 바뀌어도 전국에 산재한 국조봉안의 묘우와 제단들이 잘 수호되어 왔으며, 특히 조선조에서는 국가의 여러움이 있을 때마다 국왕이 만조백관을 거느리고 단군묘를 찾아 나라의 융성과 가호를 빌었고 국호마저 거룩한 전통을 이어 받아 조선이라 하였다.

 공맹의 도인 유교와 문묘의 전래에도 단군묘의 제례는 국가에서 봉행하였으니, 한민족의 기백과 자주의식은 한 치의 동요도 없었다.

 그러나 잡다한 개화사조와 일본이 조선을 강제로 침탈한 뒤에 자행한 36년간의 민족정신 말살정책으로 인하여 국조숭봉과 단국제 봉행이 소홀해지고, 광복과 더분어 밀려오는 외래 문물로 우리 고유의 전통과 민족혼이 날로 퇴조되자 우리 고장에서는 전군민의 정성을 모아 단군묘를 건립코저 1951년 3월24일 이수기 선생, 조용승 선생을 1961년에 국조전 건립계획을 세우고 전군민의 참여하에 모곡과 성금으로 1961년 석전리 573의 18번지에 국조전을 건립하고 매년 개천숭봉대제를 봉행하여 오던 중, 협소한 부지와 건물의 노후로 1989년 국조전 이건을 추진하여 조병윤 씨 소유의 현 부지 일부의 기증과 도비, 군비, 전 국조전의 매각대금, 군민성금 등 6억5천만원의 사업비로 1993년 현재의 위치에 국조전을 이건하게 되었다. 고 쓰여져 있고, 현재 1994년 12월 국조전을 칠곡군에 기증되어 운영되고 있다.

이어 안내첩에는 '개천절의 의미와 민족혼의 중요성, 남북통일 시대에 한민족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공통분모가 개천절'이라 쓰여져 있다. 책자만 봐도 우리의 높은 문화사상과 철학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길 수 있다.

 

▲ 국조 단군 할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들어가는 입구 홍弘익益문門

 

 

▲ 국조 단군할아버지 영정을 모시는 곳 국國조祖전殿

 

 기자는 국조 단군 할아버지께 예를 올리면서 홍익인간을 가슴에 새기고, 단민회 어르신들의 나라사랑과 고장의 충을 본받아 홍익인간으로 우리 고장을 사랑하고 홍익하는 삶을 살아야 겠다고 느꼈다.

 한편, 국조전은 경북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산 1의 2번지 외 1필에 위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