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평화대학원대학교 평화학 교수 신은희

한국을 떠나 이국의 땅, 캐나다에서 바라본 나의 조국, 한반도. 

분명 멀리서 볼 때 더 잘 보이는 것이 있다. 밖에서 바라본 한반도는 둘이 아니라 하나였다. 내겐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오랜 세월 서양의 물질문명에 젖어 살아온 내게 남과 북의 조국이 하나로 보이기 시작했다. 때론 우리 조상의 한 맺힌 피가 녹아든 고난의 붉은 땅으로. 때론 우리 민족의 평화의 기상이 솟아오르는 희망의 푸른 땅으로. 내가 태어나고 묻힐 조국의 땅은 처음부터 둘이 아닌 하나였다. 그 단순한 사실을 깨닫는 데 30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결코 피할 수 없는 거대한 생명체로 다가온 나의 조국. 힘차게 역동하는 그 생명체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함께 호흡하는 것은 나의 운명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선택한 그 운명을 끌어안고 흔들림 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역사의 무게를 느낀다.

남과 북. 우리는 한민족이었다. 하나의 조국이었다. 수천 년 유구한 역사를 함께 만들어왔다. 민족의 기상을 드높이며 광활한 만주벌판을 함께 달렸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을 축복하고 죽은 넋도 위로할 줄 아는 아름다운 전통문화를 향유하며 함께 살았다. 또한 우리는 우리만의 정서를 노래하는 우리말을 한다. 언어가 승화된 우리끼리의 침묵을 이해한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소망했고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바람에도 번뇌하는 시인의 정서를 함께 느끼며 울었다. 처절한 식민지의 고통과 한을, 그 고난의 세월을 체험하며 함께 절망했고 절규했다. 그리고 그 역사의 아픔을 견디고 해방의 희열을, 조국이 하나 되는 그 벅찬 감동을 더불어 누렸던 민족이었다. 그러나 불행의 늪을 다시 지나야 했다. 서로 증오하고 죽여야 했던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한국전쟁, 그 질곡의 시간을 지나 지금 남과 북, 우리 조국은 너무도 아프게, 너무도 멀리 살아가고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북조국은 여전히 ‘사상적 불륜’으로 남아있다. 남과 북이 함께 만날 수 있는 고대문명의 복원과 단군역사의 신비한 전통은 여전히 ‘역사적 불륜’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원한다. 우리에게 금지되었던 것을. 우리는 찾고자 한다. 잊어버렸던 우리의 반쪽 이야기들을. 잊어버릴 것을 강요받았던 우리 조국의 잃어버린 반쪽의 역사와 그 화려한 영광의 이야기들을.

‘조국’은 우리 민족에게만 영원한 것이 아니고 고유문화와 전통을 사랑하고 보존하는 다른 민족에게도 중요한 존재양식이다. 우리는 민족배타주의를 말하지 않았다. 민족주의의 극단성인 피의 순수성이나 우월성을 말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가 ‘우리’이게 하는 부인할 수 없는 공동체의 정체성과 그 공동체를 유지시켜온 고난의 역사, 치유의 역사, 그리고 고대문명의 역사를 말하고 싶을 뿐이다.

조국은 살아있는 생명체와도 같다. 시간이나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 초월적 영성으로 종족의 집단 속에 살아 꿈틀거리면서 때로는 분노하게도 하고 때론 신명나게도 하는 것이 우리 민족의 혼이며 얼이다.

역사 속에서 일시적으로 국가의 영토나 주권을 상실할 수는 있지만 민족의 혼과 주체성을 상실한 종족은 언제나 역사의 무대 뒤로 비참하게 사라져갔다. 그러기에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조국과 민족의 역사는 너무도 소중한 것”이라는 김수영 시인의 역설적 표현은 아직도 내겐 큰 의미로 남아있다.

21세기 물질문명의 시대. 힘이 진리가 되는 시대. 그러나 결코 사라지지 않고 우리의 뇌리 속에 메아리치는 외침이 있다. 우리는 진정 조국을 아는가. 조국의 땅을, 민족의 얼과 역사를 지키기 위해 만주벌판에서, 항일투쟁에서, 수많은 혁명의 현장에서, 붉은 노을처럼 타오르며 죽어갔던 열사들의 떠도는 혼이, 그 핏발 선 눈빛이, 시퍼렇게 선 칼날의 정신들이 서구 문화적 냉소주의에 빠져 있는 우리에게 또다시 다그쳐 묻는 듯하다. 너희가 조국을 아는가. 너희가 진정 민족의 시원을 아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