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의 <Today.KZ> 2010년 7월 15일자 신문기사를 보면,

“기원전 4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스키타이 쿠르간’이 카르카라린스크 (Каркаралинск)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이 지역을 발굴한 고고학자는 각종 보석, 무기 및 의류조각을 발견했으며 이러한 유물들은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스키타이족에 대한 생각을 바꿀 수 있는 귀중한 자료들이다. 상감기법으로 금을 입힌 보석, 무기, 의류가 다수 발견 되어 이 쿠르간의 주인공들을 (황금인간)이라 부르게 되었다. 현재까지의 보도에 의하면 5개의 쿠르간이 발굴이 되었으며, 현재 이 유골들에 대한 수집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라고 보도되었다.

이들 황금인간 미이라는 우리 한국 고대사 기록과도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 각각 5개의 쿠르간에서 발굴된 유물과 그 의미를 살펴보자.

황금인간 1호

 

제1호 황금인간 .

 

1970년 카자흐스탄에서 높이 6m 직경 약 60m에 달하는 쿠르간 (이식 쿠르간: Issyk Kyrgan)을 알마티에서 약 50km 떨어진 지역에서 발견했다. 학자들은 이 지역에서 최초의 미이라(황금인간)을 발굴했으며 미이라는 남성으로 약 18세의 인물로 추정됐다. 이 무덤에서는 의류, 신발, 모자뿐만 아니라 금고리, 인형, 청동검, 황금검 등등 각종 화려하게 수놓은 물품 4,000점 이상을 발굴했다. 그러나 아직도 학계에서는 이 미라가 남성인지 여성인지 군인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논쟁 중이다.


 


황금인간 2호

 

제2호 황금인간 .

 

1999년 10월 아랄토베 (Araltobe)발굴 작업 중, 아트라우 (Atyrau) 초원에서 사르마티아 지도자와 그의 아내를 발굴함으로 인해서 이식 쿠르간의 황금인간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게 되었다. 고고학계에서는 의심의 여지없이 이 쿠르간을 지도자의 무덤이라고 판정했다. 쿠르간에서 발견된 이 무사의 복장에는 많은 양의 황금접시와 다른 쿠르간의 황금인간에서도 발견되었던 상감기법의 물품들이 다량 발굴되었다. 특히 이 쿠르간에서 발견된 청동 검으로 인해 사르마트인들이 기존에 학자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 전에 카스피해 동부 지역에 거주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황금인간 3호

 

제3호 쿠르간 동물문양유물 .

 


2003년에는 깜짝 놀랄만한 고고학적 발견이 이루어졌는데, 학자들은 칠릭신스크 (Чиликтинск) 계곡에서 황금 및 보석 수십 점을 보유한 쿠르간을 발견했다. 제3호 황금인간과 제1호 황금인간의 차이는 제1호 (이식 쿠르간)의 황금인간은 체인처럼 얽혀 만들어진 사슬갑옷을 입은 전사였다면, 제3호 황금인간은 그냥 왕이었다. 그의 옷 모든 장식은 황금주물로 만들어 졌으며 모두 최고의 품질을 자랑했다.

이외에 상감기법으로 황금을 녹여 터키석에 장식한 액세서리 등등이 발굴되었다. 쿠르간의 일부는 약탈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자들은 6m 깊이에 있는 석조구조물 안에서 표범, 산악염소, 사슴의 이미지로 만들어진 8종류의 황금접시를 발견했다. 아브데쉬 토레이케노프 (Абдеш Толеукенов)의 주장에 의하면 묘지의 입구에 기록되어 있던 날짜를 근거로 추측한 결과, 쿠르간은 기원전 7세기에 건설된 것으로 보이며 더 오래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그 전까지 카자흐스탄 영토에서 발굴된 가장 오래된 쿠르간은 기원전 3~5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베렐 (Berel) 쿠르간이었다. 칠릭신스크 (Чиликтинск) 계곡에 쿠르간을 만든 스키타이인들은 다양한 형태의 동물모양의 장신구를 제작할 줄 알고, 화려한 황금의상을 만들 줄 알던 수준 높은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었다고. 톨레우케노프 (Толеукенов)는 말했다. 옥, 조개껍질과 터키석, 청동 제품, 화살촉, 숫돌, 구슬 등등 250여 점 이상의 유물이 발견되어 학자들은 이식 쿠르간에 버금가는 대발견이라고 말했었다.

황금인간 4호

 

제4호 쿠르간 발굴현장.

 

2007년에는 고고학자들이 아스타나 외곽지역 고속도록 건설지역에서 왕의 것으로 추정되는 쿠르간을 발견했다고 2008년 '엑스프레스 K' (Экспресс К)라는 잡지는 말했다. 이 쿠르간은 2007년 가을 도로공사를 하던 공사인부에 의해서 우연히 발견되었다. 기원전 3~4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데 제1호 황금인간과 전체적으로 동일한 양식으로 매장이 되어 있었다. 이 쿠르간에서 여덟 명의 여자시신과 개, 화살촉들을 발굴했다.

황금인간 5호

 

제5호 황금인간

 

카르카라린스크 (Каркаралинск) 지역에서 카라간다 市로부터 300km 떨어진 지역에 기원전 6세기의 것으로 보이는 스키타이족의 쿠르간 (탈드: Талды)이 발굴되었으며 그 속에서 각종 보석, 무기 및 의류조각이 발견되었다고 카자흐스탄 TV 방송 하바르 (Хабар)는 전했다.

쿠르간의 일부가 도굴을 당했지만, 그래도 많은 양의 유물을 발굴 할 수 있었다. 이 쿠르간의 주인공은 젊은 지배자 또는 귀족 소녀로 추정되며 제1호 황금인간 이식 쿠르간과 비교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이 쿠르간에서 발견된 유물양식들은 원뿔모양의 유물, 얇은 금박장식으로 만든 각종 제품들로 보아 훈족계통의 유물이라고 카라간다 주립대학 빅터 역사박사는 말했다.

 

 

 

 

황금인간과 날개 달린 눈표범

 

제5호 황금인간을 발굴하는 탈드 프로젝트는 이 지역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중심으로 대형 박물관을 건설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현재 카자흐스탄의 상징으로 쓰고 있는 날개 달린 눈표범과 황금인간은 여기서 발굴된 유물을 기본으로 해서 만든 것이며 알마티시의 공화국 광장의 한가운데 독립 기념비로 조각되어 있다.

이 유물들의 발견 뒷얘기와 필자의 견해를 밝히자면, 중앙아시아인들이 아직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시키지 못하고 경제난에 허덕이느라 유물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현재까지 발견된 5개의 쿠르간에는 각종 애달픈 사연과 안타까운 일들이 발생했다.

먼저 제1호 쿠르간의 경우는 미이라가 없다. 현재 러시아 학자에 의해 발표된 건축연대는 서기 전 7~9세기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건축연대는 이보다 더 오래 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제1호 쿠르간은 다른 쿠르간과는 다르게 소련의 통치시절 발굴되는 바람에 러시아인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조성연대가 짧게 만들어져 버렸다.

이에 터키, 카자흐역사학자들이 항의하며 탄소연대측정법을 써서 조성연대를 과학적으로 밝히자고 하자, 갑자기 멀쩡히 잘 있던 미이라가 사라져 버렸으며 지금도 그 미이라의 행방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운 좋게도 당시 소련이 파기한 데이터 중에 일부가 간신히 파괴를 모면했는데 그 자료에 의하면 조성연대가 서기 전 3,800년이라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제4호 쿠르간은 비교적 최근에 발견되었는데 2008년 아스타나 지역에 고속도로를 건설하면서 파괴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많은 학계와 시민단체들이 쿠르간의 보호, 발굴을 요청하였으나, 아스타나 시장은 이를 묵살하고 도로를 건설하기로 단행했다. 이 지역 정치인들의 역사인식 수준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제5호 쿠르간은 한국인에게도 굉장히 중요한 쿠르간이다. 이 쿠르간의 특징은 이 무덤의 주인공이 훈족계통이라는 것이다. 카자흐인들은 스키타이를 ‘사크’라고 불렀는데 이들이 바로 한단고기에서 말하는 ‘색족’이다. 따라서 카라간다에서 발견된 쿠르간은 우리민족이 어떻게 유럽으로 진출했는지를 증명해줄 중요한 유물적인 증거이다. 고구려인이 아바르인 (유연)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카자흐스탄의 역사학자들은 유적을 발굴해놓고도 제대로 된 해석과 분석을 내놓지 못해 너무나도 안타까운 실정이다. 예를 들어 제4호 쿠르간에서 나온 미이라를 보고 “이 미이라의 주인공은 태양 왕이었던 것 같다.”라는 결론을 내리고서 왜 태양 왕처럼 묘사가 되었는지를 모르고 있다.

탱그리 사상을 보면 왕이 곧 태양의 아들임을 알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중앙아시아인들에게는 갈 길이 먼 것 같아 답답할 뿐이다.


글. 김정민 카자흐스탄 카즈구대학 국제관계학과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