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은 초복이다. 복날에는 복달임이라 하여 영양식으로 몸을 보충한다. 올 여름 얼마나 많은 닭과 개가 인간을 위해 희생될지. 서울시는 복날을 앞두고 위생지도를 강화했다.

봄부터 여름까지 보리를 베어내고 모를 심고 김매기를 하는 동안 몸은 고된 일에 시달려 힘이 부친다. 무더운 여름을 날나면 잘 먹어두어야 한다. 헌데, 여름철 먹을 것이 풍부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턴가 복날에는 삼계탕, 보양탕이라고 하는 개장국 등을 먹는 날이 되었다.

인삼에다 대추, 마늘, 찹쌀을 넣고 통닭을 함께 끓인 삼계탕. 여름 음식으로 제격이다. 여름은 양(陽)의 계절이요, 화(火)의 계절이다. 불꽃처럼 화려한 계절이다. 여름은 젊고 화려하나 겉만 그럴뿐이다. 속은 비고 차다. 밖이 뜨거우니(熱) 우리 몸은 음(陰)기운을 원하고 한(寒)기가 강해진다.

그래서 여름철에는 음인 보리밥을 먹는다. 여름철에는 보리밥에 된장 고추만 먹어도 맛있다. 그 입맛으로 겨울에 한 번 먹어보라 도저히 먹을 수 없다. 보리는 음이요 고추는 양이다. 음 속에 양을 집어넣으면 음양이 조화가 되어 맛있어 지는 것이다. 우리 음식은 양 속에 음, 음 속에 양을 넣어야 맛있다. 동치미가 그렇고 버섯에 파를 넣어 끓인 것이 그렇다.

속에서 한(寒)기운으로 밖의 열(熱)에 대항하니 찬 것을 먹으면 속이 너무 차져 배탈이 나기 쉬운 때가 여름이다. 그래서 속이 너무 차면 안 되니까, 열을 내는 음식을 먹어주는데 그게 삼계탕이다. 삼도 양이니 열을 내고, 대추도 열을 내는 음식이고 마늘도 그렇다. 닭도 열을 내게 한다. 모두 열을 내는 음식. 더운 여름에 삼계탕을 먹는 이유가 다 있다.

그런데 개장국은? 우리가 언제부터 복날 개고기를 먹었나? 서양사람들이 시비를 걸어서가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들은 좋아하지만 어쩐지 먹기에 개운하지만 않은 개고기. 내 자랄 적에 개고기는 수술을 한 사람들만 먹었다. 수술을 하여 기운이 빠져 밥만으로는 기운을 차릴 수 없는 사람들에게 특식으로 먹였다.

조선시대 홍석모의 `동국세시기'를 보면 복날에는 보신탕, 삼계탕, 육개장, 임사수탕, 민어탕을 먹었다고 한다. 보신탕은 주로 머슴이 먹었고 양반들은 민어탕을 먹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식량이 부족하고 고기가 없던 시절, 7월 백중 때 머슴들에게 뭔가 고기를 먹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머슴들은 양반집 개를 끓어다가 잡아먹었고 양반들은 그것을 못 본체 한 것이다. 18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복날 머슴에게 보신탕을 먹인 전통은 머슴을 부리던 전통이 남아 있던 20세기 중반까지 이어진 것 아닌지.

그게 궁금하면 『boka늑대의 왕국』(주정은 지음, 주채혁 추천, 운주사)를 볼 일이다. 개를 둘러싸고 민족의 정체를 밝혀낸 책. 개에 대해 문화마다 다르게 접근했다. 농경민족이었던 중국인들은 늘 고기가 부족해 개를 식용으로 즐겼다. 지금도 북경이나 상해에 가면 개고기를 쉽게 먹을 수 있다. 돼지고기 먹다가 개고기를 주문하는 것을 주문하는 것을 몇 년 전 항주에서 보았다.

반면 우리 민족은 고구려인들은 개를 신성시 했다. 고구려의 벽화에 보면 개가 많이 나오는데 그 많은 개들이 사냥감을 쫓거나 반가운 치구로 나온다. 사냥을 하여 늘 신선한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유목민들은 개를 잡아먹을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개는 사냥을 도와주기까지 하니 오히려 신성시해야 할 존재였다. 그런 전통은 고려때까지 쭉 이어져 온다. 그 유목민들은 스키타이, 흉노, 고구려, 돌궐, 몽골 등으로 불렀다.

이들은 하늘 등 자연 현상을 의인화한 신들을숭배하는 알타이 샤면과 동물을 숭배하는 토테미즘을 믿었다. 한민족과 관련이 깊은 이 알타이 샤면에서는 전통적으로 개를 영혼인도 동물로 여겼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하늘을 숭배했는데 한민족 최초의 하늘 사상은 하늘에서 무리를 이끌고 땅에 내려와 고조선을 세운 단군이었다. 고구려는 하늘 사상과 함께 고조선을 이어받았음을 천명했다. 모든 유목 기마민은 하늘을 숭배한 단군 신앙 아래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단군 신앙이라 해서 거창할 건 없다. 단군은 곧 하늘이다. 하늘을 믿고 따르는 유목민의 신앙을 단군 신앙으로 보면 된다. 하늘, 자연, 그리고 말, 이들이 유목민의 삶을 지탱해준 성스런 요소였다. 고구려의 벽화에 말과 개가 자주 나오는 이유를 알것같지 않은가?

조선으로 들어오면서 유교를 국교로 받아들이면서 바뀌기 시작한다. 유교, 농경민족인 공자가 창시한 유학을 근간으로 하는 유교는 조선유생들로 하여금 유목민임을 부정하고 농경민임을 애써 강조하도록 했다. 그래서 개의 운명도 바뀌었다. 공자는 개고기를 제사상에 올리라고 했다. 개고기를 식용으로 하는 중국민족으로서는 당연했다.

제사상에 개고기라니…, 지금도 상상을 못할 일이다. 시골에서 지금도 조상님께 제사를 지내는 어머니는 제사가 있는 달에는 몸 조심을 한다. 함부로 고기를 드시지 않고 슝헌 곳, 좋지 않은 곳에는 가지 않는다. 조상의 신령을 모시는 달인데 어디를 함부로 가서 부정을 탓까 두려웠다.

행여 누가 개를 잡은다면 그 소문을 듣기가 무섭게 제삿날을 꼽아보시고 피하셨다. 그 이유를 물으면 이렇게 말하셨다.

"개는 똥을 먹는디, 똥 먹는 것을 어디 조상님 제삿상에 올린다냐."

그래도 밖에 다니시는 아버지는 개고기를 먹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아버지는 제삿날, 안방에 들어오지 않으셨다. 그 뿐만 아니라 젯상에 올리는 모든 음식에 손을 대지 않으셨다. 개고기를 먹어 제사를 올리 자격이 없다며 스스로 밖으로 나가셨다. 그 이유를 이 책에서 찾았다. 왜 개고기를 먹으면 그렇게 떳떳하지 못했고 조상님께 제사도 드리지 못했던지를….

유교를 신봉한 조선에서는 중국인이 되지 못한 것이 한이었다. 그래서 우리의 역사서를 스스로 불사르고 우리의 문화를 부정하고 왜곡했다.

저자는 몽고제국과 고려의 관계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고려는 부마국이었다. 원나라가 황제의 딸을 고려왕에게 시집 보낸 것이다.이것을 우리는 치욕스럽게 생각한다. 그런데 원나라에서는 왜 고려에 공주를 시집보냈을까? 몽고는 전쟁에 패해 항복한 나라나 지역이 다시 반란을 일으키면 초토화시켰다. 그 지역의 모든 사람을 다 죽이고 불을 질러 다시는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했다. 항몽시기 고려는 자주 반란을 일으켰는데 몽고는 고려왕실을 없애지도 않고 오히려 공주를 시집보냈다. 황제의 딸을 시집 보내려면 상대가 그만한 자격이 있어야 하는데, 고려왕실은 원제국 황제의 사위로서 격이있었을까. 저자는 원나라가 고려를 유목기마 민족의일원으로 끌어안으려 한 몽골의 특별한 감정이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고 했다.

우리 민족이 개고기를 상용하는 것처럼 왜곡한 것은 일본이다. 자기네 보다 문화가 우수한 민족을 식민지로 다스리려면 문화적으로 열등감을 조성해야 하는데 개고기가 그에 활용되었다. 머슴들이나 복날에 먹는 것을 모두 먹는 것으로 야만인으로 여기도록 해서 조선의 지배를 정당화하려 했던 것이다.

일본이 개최한 동경 박람회에는 조선인이 출품됐다. 1907년 5월 동경의 만국박람회 조선관에는 살아 있는 조선인 남녀 한 쌍이 전시됐다. 파리 박람회에 흑인이 전시됐다는 책을 보았는데 이건 처음 보는 내용이라 충격이 컸다. 이처럼 일제는 조선을 야만인으로 취급하고 민족정신을 말살했다.

해방 이후 많은 사람들이 조선을 개고기 먹는 나라라고 비난한 것은 명백한 문화적인 탄압이라고해석하면서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고 저자는 본다. 그들은 반만년 역사 이래 한민족은 대대로 농경민족이었고 개는 가축이었으며 농경민족의 민족적 자긍심을 되살리기 위해서라도 개고기 식용문화는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늘 사상을 가지고 당당히 초원을 달리던 유목 기마 민족의 역사나 그런 고규려인이 사랑하던 신성한 개에 대한 기억은 머릿속에 완전히 지워진 탓이다. 중국 한족이 자랑하는 중화사상의 승리이자 일제의 식민사관이 이루어낸 승리다.

당신은 과연 한국인인가?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지켜야 할 전통은 중화 사대주의자들과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자기 부정적이고 패배주의적인 역사가 아니다. 중국 대륙을 호령하던 고구려의 기상이다. 유목민의 신앙이던 단군의 하늘 사상이다. 그러나 한국이면서 한국인의 이야기를 모르는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한반도와 한국인의 과거와 현재는 암울해 보인다. 거렇다면 우리의 미래 역시 암울할까? 그러나 절망하기에는 이르다.

우리의 미래에 대한 해답은 유목 기마정신에서 찾을 수 있다. 진취적인 기상이 넘치전 고구려의 정신, 개방과 교규라는 유목민의 정신을 되찾는다면.... `내'가 누구인지, 진정한 한국인의 모습이 무엇인지, 이제껏 한국인이 모르던 한국인의 이야기를 알아낸다면...우리에게 분명 희망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