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전국 초중고에서 '일제고사' 가 치뤄졌다. 일부의 소수 선생님과 학생들은 일제고사 대신 체험수업을 하기도 했고, 또 일부 지자체의 교육감들의 각기 다른 교육가치관으로 인해 학생, 교사 모두가 혼선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논란과 논쟁은 우리나라의 학생들,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싸움이 아닐까한다. 과연 꼭 우리의 아이들을 성적순으로 줄을 세워놓아야만 할까?

정말 성적이 해당 학생들의 인생 전체에서의 행복과 비례하는 것일까? 정말 높은 성적으로 상위 대학에 들어가면 그들의 인생이 활짝 펴지는 것일까? 아마도 공부하는 학생 본인은 물론이고,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질문을 가졌을 것이다. 이 질문의 답을 필자 역시도 ‘그렇다’, ‘아니다’ 라고 확실히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확실하게 하고 싶은 말은 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것이다.

90년대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글의 제목을 보고, 현실과 떨어진 순진한 발상이라 비난 할지도 모른다. 또 당사자인 학생들 마저도 ‘성적순서가 바로 우리행복의 순서가 맞아요!’ 라고 할지도 모른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당연하다. 성적의 하락은 부모님과 선생님의 압박을 부추기고 자기 스스로도 상심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이다. 좋은 대학을 가고 난 후에 그때도 정말 행복할까? 그럼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또 어떨까?

오늘날 사람의 평균 수명을 70세정도로 잡고 보았을 때, 고3까지는 19년 1/3이 채 되지 않는다. 남은 2/3의 행복은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제발 학교 교과성적만이 인생을 결정짓는 것처럼 교육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교육과정 역시 수능에만 촟점을 맞추지 말았으면 좋겠다. 학생 개개인의 다양한 개성을 살려주는 교육과정으로 재편되었으면 좋겠다. 결코 학교에서 우등생이 사회에서 우등생이 된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그리고 학교성적이 우수한 '우등생’ 만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특권을 가진 것도 아니다.

행복은 열정순이다. 이 열정의 대상은 학교공부 뿐만 아니라, 운동, 예술, 기계, 문화등 무한하다.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건 간에 그 분야에 열정을 쏟아낼 수 있는 사람, 그 사람만이 진정 행복한 사람이다. 다른 어떤 누군가가 떠밀지 않아도, 반대로 가치가 없는 일이라고 세상사람들이 비난을 쏟아 내더라도, 그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사명감을 가지고 스스로 도전하고 그 과정 속에서의 크고 작은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며 웃을 수 있고 용기를 얻고 교훈을 찾아내는 사람이야 말로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그러한 사람만이 진정한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서 오래전에‘캐넌 변주곡’ 기타 연주 동영상으로 사람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던 당시 22세의 무명의 기타리스트 ‘임정현’ 라는 사람이 있다. 아마도 사람들은 그가 연주하는 모습에만 감동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 정도로 연주하기위해 오랜시간 쏟아낸 땀과 노력 그 열정에 감동하는 것이다. 자기가 선택하고 좋아하는 일을 실패와 좌절이 뒤따르더라도 그런 것들마저도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열정을 가진 사람은 개인의 행복뿐만 아니라 이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진정한 ‘인재’가 되는 것이다.

덧붙여서 열정은 새로운 가치창조이다. 스스로 그 가치를 만들어 내는 창조의 에너지이다. 남들이 알아주지 어떤 한분야가 있다하더라도, 그 열정을 쏟는 본인은 더없이 소중한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들만의 가치’가 이 세상을 움직이는 우리 모두의 가치로 발전한 예는 수도 없이 많다.

가치 창조를 할 수 있는 사람에게 행복이란 자연히 따라 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영어단어나 수학공식과 같은 지식도 좋지만, 많은 지식을 가진 학생보다 많은 열정을 가진 학생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우리나라 학교교육의 초점 역시 그렇게 바뀌어지기를 바란다.

세상은 눈에 보여지는 것만이 모두 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학원 전문위원 강사 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