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우 ㅣ 이화여대 석좌교수

‘선비’하면 흔히 조선시대 유학자를 떠올린다. 올해 3월 <한국선비지성사>를 출간한 한국 사학계의 원로 한영우 교수는 이 같은 통념에 반박하며 여러 기록을 토대로 선비의 연원을 고조선으로 끌어올렸다. 선비정신의 핵심으로 홍익인간·천지인합일사상을 강조하는 한 교수를 만나보자.

<한국선비지성사>를 출간한 목적은
오랫동안 우리 역사를 연구하면서 호소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죽기 전에 한국인의 정신이 무엇인지 정리해놓아야 했다. 적게는 한국인의 아이덴티티(Identity:독자성)를 높여주고 크게는 좀 건방진 이야기일지 몰라도 우리의 장점인 상생공동체 문화인 홍익정신과 서양의 발전을 가져온 갈등문화의 장점을 융합한 제3의 문명으로 전환하자는 문명전환선언을 하고 싶은 것이다. 20세기를 주도한 서양문명은 평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21세기는 생명을 아끼는 제3의 문명이 나와야 한다. 홍익인간 이념을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인류가 공유하는 날이 왔으면 한다.

선비사상의 핵심을 홍익인간과 천지인 합일사상이라 했는데
자연과 생명을 무시한 20세기 반문명적인 행태에 대한 대안이 될 것이다. 요즘 녹색성장, 지속가능 성장을 말하는 데 철학이 없고 웰빙산업 등 상업적으로 왜곡되는 측면이 있다. 천지인 합일사상은 쉽게 말하면 천지인을 하나로 묶어 생명공동체로 바라보면서 생명체 상호 간 상생하는 ‘우주생명 공동체 사상’이다. 동서양 누구도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인 것이며 미래 모든 인류가 가져야 할 철학이라고 본다.
전 지구적인 상생공동체가 와야 비로소 평화가 정착된다는 점에서 만민의 행복을 함께 추구하고 만민을 통합하는 홍익의 큰 공동체가 지금처럼 필요한 때가 없다. 홍익은 좌우 이념의 갈등을 높은 차원으로 극복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

교수님이 말하는 선비란 어떤 개념을 말하는 것인지
공자와 맹자는 중국을 이끌어 가는 하나의 지식층, 정치적 주도층, 요즘 말로 리더그룹을 사(士)라고 했다. 유교가 들어오며 이 사(士)를 우리말로 번역하려다 보니 예부터 정신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주도하며 문무를 겸비한 지도자를 뜻하는 ‘선비’란 말로 번역한 것이다. 16세기 천자문에는 도사 사로 나오는 데 선비가 도사와 비슷한 성격이다. 유(儒) 불(佛) 무(巫)가 통합된 실체가 선비이며 조선 유학자만 가리키던 말이 아니다.

이 책에서 단군을 ‘최초의 선비’라고 했는데 어떤 뜻인지
신채호 선생이 선비가 순수한 우리말 ‘선배’에서 왔으며 이두문자로 ‘선인(仙人 또는 先人)’이라 했음을 밝혔는데 탁월한 지적이다. 유학자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에 보면 “평양은 선인(仙人) 단군의 집(宅)”이란 말이 나온다. 역사기록에 나오는 첫 선비인 셈이다. 그러나 지적하고 싶었던 중요한 핵심은 유교에서 표방하는 윤리가 공자 이전, 고조선 때부터 고유하게 있었다는 점이다.

유교 윤리가 이미 고조선에 있었다는 것은 어떤 뜻인지
‘선비’는 원래 무교(巫敎)에서 출발한 것이다. 단군은 선비이자 제천을 주관하던 제사장, 즉 최초의 무당이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천손의식에서 나온다. 우리 민족에게 하늘이란 하늘인 동시에 부모인 것이다. 효의 시작은 바로 제천에서 시작된다. “하늘에 대한 제사는 근본에 대한 보답”이라는 제천보본祭天報本이란 하늘이 근본, 즉 부모란 말이다. 유교가 들어와서 비로소 효를 안게 아니다. 충과 효, 홍익정신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의식 등 고조선 때부터 그런 윤리를 발전시켜왔다. 그래서 논어에 나오듯 공자가 우리나라를 부러워하고 군자국이라 했던 것이다. 유교사상의 뿌리가 이미 고조선에 있었다.

 

해석한 한영우 교수의 책

선비가 우리 역사에서 어떻게 계승되어 졌는지
고구려의 조의선인을 키우던 선배제도, 신라의 화랑제도가 있었다. 백제에도 선비계층이라 할 수 있는 무사도가 있었을 텐데 삼국사기에는 기록이 없다. 근대에 들어 일본강점기 항일운동은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라 의병운동의 연장선에서 나왔다. 의병은 화랑의 계승이다. 선비들인 것이다. 그게 고려 때는 재가화상으로 나온다. ‘대~한민국’ 외침에 하나 되는 붉은 악마도 의병정신의 계승이다. 이들이 나라가 위태하면 나가 싸울 의병이 될 사람들이다. 그래서 선비정신을 문화적 DNA(유전인자)라고 보는 것이다. 우리가 의식은 못 해도 피 속에 있다. 한국인이 앞으로 살아가는데 엄청난 생존능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지금 홍익인간·천지인 합일정신이 중요한 이유는
홍익이란 말은 종교적 윤리적 이념에서 나왔지만 나는 홍익정신이 국가를 운영하는 데 있어 ‘공익’으로 진화 발전한 것을 더 강조하고 싶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순도 높은 공익정치를 운영한 역사가 있었다. 홍익인간이란 말은 대단히 아름다운 말인데 추상화되었다. 젊은 세대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인간을 널리 이익되게 하는 것인지 당연히 질문한다. 나는 거기에 답변할 책임이 있다. 이 책에서 정말 백성을 위한 정치를 어떻게 했는지, 공익정치로써 토지제도, 신분제도를 어떻게 만들고 정치운영은 어떻게 했는지 이야기했다. 그래야 국민에게 홍익인간이 무엇인지 피부에 와 닿는다.

국학에서도 삶의 패러다임을 사익에서 공익으로, 소유에서 관리로 전환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서양은 소유 개념이 엄격하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재산을 사고 팔고 상속 모두 가능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사유가 없었다. 공유, 공개념으로 봤다. 특히 가장 큰 재산인 땅에 대해서 공개념으로 봤다. 그러니까 국가가 토지를 회수해 토지개혁을 통해 빈부 격차를 줄일 수 있었다. 나도 재산을 살아 있는 동안 일시적으로 관리하는 권리지 죽을 때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현실적으로 홍익정치가 이루어지려면 어떤 형태가 있어야 하는지
조선시대까지 인재를 발탁했던 엘리트 민주주의가 접목되어야 한다고 본다. 현재 선거제도하에서는 학식과 덕망 있는 사람이 참여하기가 어렵다. 실제 국민이 존경하는 사람들을 국가가 불러들여야 한다. 형식적인 자문기구가 아니고 정책을 결정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기구가 하나 있어야 한다.

앞으로의 과제는
설교하듯 “홍익인간 합시다!” 해서는 안 된다.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 홍익정신을 현대에 어떻게 구현해야 하느냐가 과제이다. 홍익정치를 하려면, 홍익경제를 하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국민에게 답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모두 답해줄 수는 없다. 우리 지식인들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국학원이 홍익정치, 홍익경제, 홍익문화, 홍익사회 이런 분야에 연구하고 실제적인 대안을 제시했으면 한다. 우리나라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 본다. 누군가 노력해서 앞장서서 뚜껑을 열어주면 후배들이 많이 따라올 것이다.                

■저자소개 : 대표적인 한국사 통사로 부동의 위치를 고수하는 <다시 찾는 우리 역사>의 저자 한영우는 한국의 대표적인 국사학자이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울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장, 미국 하버드대학 객원교수, 한국사연구회 회장, 서울대학교 규장각 관장,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위원장,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장, 한림대 특임교수를 역임하고 현 이화여대 석좌교수, 서울대 명예교수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