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국학원 김현규 본부장 등 회원들이 27일 무등산 천제단 방문에 나섰다. 장마철에 접어들어 비가 오락가락하지만 비를 맞고서라도 무등산 산행을 하기로 했다. 김현규 본부장을 비롯, 채영재 님, 최강례 님, 오경교 님, 기필수 님, 신동섬 님, 김지인 님, 김효정 님, 이훈 님, 심맹희 님, 김미숙 님, 김향계 님, 오명희 님과 두 따님 등 19명이 참석했다.  

오전 9시 30분께 무등산 입구에 모여 기필수 님의 지도로 간단한 몸풀이 체조를 하고 새인봉-새인봉삼거리-중머리재- 천제단- 증심사 코스로 산행을 하기로 했다. 흐렸지만 비는 그쳤고 덥지 않아 산행하기 좋은 날씨였다.

새인봉으로 오르는 길은 잡고 올라갈 줄을 옆으로 가설했고 경사진 곳에는 나무 계단을 만들어 쉽게 올라가게 되어 있다. 김밥과 물이 든 배낭을 메고 모두 힘차게 출발했다. 새인봉은 임금님의 도장인 옥쇄와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멀지는 않지만 경사가 급해 이 길로 가면 출발한 지 얼마 안 돼 땀이 비오듯 하고 숨이 가파진다. 아이들은 힘든지 칭얼대기 시작한다. 중간 쉼터에 올라 물을 마시며 무등산의 명칭 등 무등산의 역사, 유래를 배우면서 휴식을 취했다. 

"무등산은 옛날에 무진악, 서석산이라고 했습니다. "

무덤이 많아서 무덤산이라고도 했대서 무등산이라고 했다는 설이 있고 무정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즉위하면서 팔도의 산신을 불렀으나 무등산신령만 가지 않았다. 그래서 무정하다 하여 무정산이라고 했다고 한다. 불교 반야심경에 나오는 '무무등주'라는 말에서 무등을 따와 무등산이라고 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또 무등산은 정상인 천왕봉이 우뚝 솟아 다른 봉우리와 차이가 나는 산이 아니다. 그래서 등급이 없다는 뜻으로 무등산이라고 불러다고 전한다. 등급이 없는 세상,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꿔서 광주가 민주화의 성지가 됐다고 한다.

땀이 식자 다시 출발하여 새인봉 정상으로 향해 간다. 무등산에는 무당골이 있었다. 그만큼 기도하는 곳이다. 수 십년 전 그 무당골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일명 '무등산 타잔'이라는 청년이 철거공무원을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오경교 님이 산행시 위험한 곳을 건널 때 손을 잡아주는 방법, 걷는 법, 쉬는 시간 등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하는 산행시 주의할 점에 대해 간간히 알려주어 더욱 안전하고 재밌는 산행이 되었다.

두 번째 쉼터에서 운기차에 김밥을 먹었다. 여러 길 되는 나무가 하늘을 다 가려 시원한 숲 속에서 나무 향이 진동한 가운데 묵은 김치에 한 모금 맛보는 막걸리 운기차 맛이 기가 막혔다. 나무가 우거진 아래쪽으로 내려가 풍욕을 하면 몸과 마음이 깨끗해질 터였다.

새인봉은 정상 부근에 가면 돌출하여 급경사를 이룬다. 도장 손잡이와 같은 모양이다. 이곳도 이미 계단을 만들어놓아 오르기가 쉬웠다.  아이들과 함께 온 오명희 님은 되돌아서 내려갔다. 아이들이 종주하기에는 너무 힘들다. 새인봉에 올라가니 사방 5미터를 벗어나면 온통 안개로 덮혀있어 풍광을 전혀 볼 수 없다. 안개가 자욱히 끼어있어 바위에서 아래를 보니 구름위에 떠 있는 선남선녀였다.

"경상도 지역 회원들과 함께 이 산행을 하면 참 좋겠다." 무등산 경치에 감탄한 김현규 본부장이 이렇게 말했다. 함께 산행하여 수련도 하고 비전도 공유하고 결의를 새롭게 한다면 좋을 게다.

11시께 새인봉 정상에 올라 기념 촬영을 하고 새인봉삼거리를 지나 중머리재로 향했다. 무등산 산등성이 중봉, 장불재로 가는 곳에 평평한 지대가 나온다. 스님의 머리와 같이 생겼다 하여 중머리재라고 한다. 나무가 없고 풀만 있는데 가을에는 억새가 많이 피어 풍광이 좋은 곳이다. 중머리재로 가는 길에는 비가 많이 내렸다. 비옷을 꺼내 입고 옷을 둘러입어 비를 막았다. 중간중간 힘들게 올라가는 곳이 있어 평상시 산을 찾지 않은 이들은 힘들어했다.

힘들게 올라서니 일순 눈 앞에 평평한 들판 같은 것이 펼쳐진다. 중머리재다. 짙은 연무로 둘러싸여 중봉,장불재,서석대 등이무등산의 명승이 보이지 않는다. 비가 오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산에 올라 중머리재에서 식사를 한다. 그렇지만 다른 때보다는 사람이 많지 않다. 

넓게 자리를 깔고 가져온 배낭을 모두 열었다. 김밥, 밥, 막걸리, 삶은 달걀, 이훈님은 돼지고기볶음에 상추, 밥, 깻잎, 된장 등 쌈을 할  재료를 모두 가져왔다. 배가 고프기도 하여 모두 맛있게 먹었다. 쌈을 싸서 옆 사람 입에 서로 넣어주는 모습이 마음을 포근하게 했다. 힘들게 지고 온  막걸리 운기차 두 병을 꺼내  한 잔씩 돌리고….

식사후 기념 촬영을 하고 천제단으로 향했다. 내려가는 길이라 수월했다. 백운암터를 지나 20분 정도 내려 가면 천제단이 나온다. 무등산에서는 신라시대에 작은 제사(小祀)를 지냈고 고려시대에는 격상하여 국사(國祀), 국가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조선시대에는 지방관이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천제를 지낸 후 봉화대에서 봉화를 올려다고 하는데 봉화대의 명칭이 지금은 봉황대로 바뀌었다.

천제단에는 돌로 쌓은 재단이 북쪽을 향해 있고 그 서남쪽으로 넓은 공터가 있어 사람들이 모일 수 있게 했다.  이 천제단은 1965년부터 광주민학회가 관리를 하면서 매년 개천절에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 천제단 옆에는 '天祭壇 미술원 연진회 '라는 푯말이 세워져 있다.

모두 자세를 바르게하고 천부경 1독을 하고 하늘에 삼배를 하였다. 우리의 뜻을 하늘에 고하고 광주국학원의 비전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이 천제단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날이 빨리 오기를 마음 속으로 기원했다. 심맹희 님은 천제문화, 우리 조상들의 문화를 살려야 하는 사명이 느껴졌다고 했다.

천제단 앞에서 이번 산행을 계기로 산악회를 결성하기로 하고 명칭을 정하기로 했다. 오경교님이 '소도산악회'를, 심맹희 님이 '신바람산악회'를 제안하여 의견을 모아 소도산악회로 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소도의 의미, 천제의 의미, 산에 대한 조상들의 생각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산행도 하고 서로 소통하여 하나가 되고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비전을 실현해가는 산악회를 꿈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