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유전자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우리 인류의 깊은 무의식의 바다 속에는 초원의 들판에서 사냥하고 채집하던 습관이 남아 있다. 바로 그 기억이 우리를 푸른 잔디의 골프장과 축구장으로 이끈다. 들짐승 대신 사냥감이 된 공을 이리저리 쫓으며 개인, 또는 부족끼리 사냥경쟁을 한다. 그러다 한 쪽이 잡으면 포기하기도 하나 감정이 격해지면 전투가 벌어지기도 한다.

1970년 ‘100시간 전쟁’이라는 축구전쟁이 있었다. 월드컵 예선 때문에 벌어진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간의 전쟁으로 전사자 3000명, 부상자 1만 2000여 명, 이재민 15만 명이 발생하였다. 남한 면적의 1/5의 크기인 승전국 엘살바도르도 넘치는 인구와 실업자 문제로 경제난에 시달렸고, 승전국의 6배 크기인 온두라스도 패전으로 막대한 피해를 보고 연이은 군사반란이 이어졌다. 이를 비난하던 로메로 대주교조차도 군인들에게 살해당하며 세계적인 빈민국으로 추락한다. 그 와중에 적은 수의 인도인 이민자들이 어부지리로 경제권을 잡아 지금도 두 나라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이 전쟁은 공이 불러온 인간의 사냥본능이 감정과 탐욕으로 비화된 참화이다.

지난 25일은 공놀이가 아닌 사상 갈등으로 증폭된 비극적인 6·25동란 60년이 되는 날이었다. 무려 37개월에 걸친 동족상잔의 참극은 한반도 전체를 폐허화했고, 많은 외국 참전군들도 사망하니 이때 한반도에 쏟아진 폭탄의 수는 1차 세계대전의 투하된 폭탄수와 거의 맞먹는다고 한다.

남한의 사망자는 백만 명이 넘고 그 중 85%는 민간인이며 북한은 113만 명이 사망하니 모두 250만 명이 죽었다. 80%의 산업시설과 공공시설과 교통시설이, 정부 건물의 3/4이, 가옥의 절반이 파괴되었다. 아직도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남아 있으니 한을 품은 이산가족은 또 몇명 인가.

그러나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우리는 피부색과 사상의 차이, 지역의 갈등, 빈부의 격차를 넘어서 순수한 게임과 놀이를 통하여 희망과 꿈을 보아야 한다. 나만의 쟁취와 승리만을 위한 공놀이는 결코 피를 부르는 사냥 본능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우주의 사랑의 본성에 기초한 놀이는 인류 모두의 성장과 평화를 이루어 낸다. 불과 십 수년 전만 해도 악명 높은 인권 사각지인 남아공에서 희망봉처럼 솟아오른 인류의 평화의 꿈을 우리 모두 하나되어 창조해 내야만 한다. 넬슨 만델라도 오랜 수감생활 중에서 축구를 하였다니 모든 갈등을 축구공으로 상징되는 자유와 평화, 본성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본능의 축구인가? 본성의 축구인가? 어디로 굴러갈지 공은 알 수가 없다. 단지 공을 찬 사람의 꿈과 의지가 공의 자취를 결정할 뿐이다. 우리는 우리 모두가 진정한 승리의 주인공이 되기를 기대한다. 기억의 바다, 저 깊은 곳에 홍익의 꿈이 살아 꿈틀대는 한민족에게 월드컵은 전쟁이 아닌 평화창조의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국학원 원장(대) 및 한민족역사문화공원 공원장 원암 장영주